한여름 야구. 승부도 끓지만, 체온도 끓는다. 한낮을 피해 시작하는 프로야구도 무더위로 취소되는 혹서기, 야구장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겐 ‘불구덩이’다. 한여름은 아마야구 한 해 농사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지만,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야구장은 더는 땀과 열정만으로 버텨 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라운드를 달구는 선수들의 열정에 열광하기에 앞서, 우린 그들을 더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 자연 아래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버텨야 큰다”라고 다독이며 필드에 나서는 아마야구 선수를 그저 지켜만 보기엔 정말로 위태로운 환경이 들이닥친 것이다. (7월 30일 작성)
에디터 박대은 사진 SSG 랜더스, @rea1stonee
한여름에 접어들면 학교는 방학을 하지만, 야구는 ‘개학’을 맞는다. 주로 학생들로 이뤄진 아마야구의 특성상,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방학에 대회를 치르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전국대회인 청룡기‧대통령배‧봉황대기가 6월 말부터 8월 말에 걸쳐 연달아 이어지고, 대학야구도 7~8월에 전국 대학야구선수권대회와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가 펼쳐진다.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이하 KUSF) 클럽 챔피언십’도 마찬가지.
짧은 기간 내 여러 대회, 수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일정으로 인해 하나의 구장에서 하루에만 서너 경기가 펼쳐지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한 팀이 하루에 두 경기 이상을 치러야 하는 ‘더블 헤더’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선수들의 건강이 절로 염려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오후 6시 이후에 경기를 치르지 못해, 해가 중천에 있을 때 경기해야만 한다면?

#목동야구장에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2023년 여름부터, 목동야구장에서 펼쳐진 주요 아마야구 경기들은 오후 6시 이전에 일정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경기 도중 발생하는 소음과 조명으로 인해 목동야구장 인근 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민원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 체육시설 관리사업소는 목동야구장에서의 경기를 하루 3회로 제한하고, 18시 이전(연장 시 최대 20시)에 모든 경기를 마무리할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시간 제약에 따라 매일 마지막 경기는 14~15시 사이에 시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지난여름, 에디터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목동야구장에 향한 바 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체감 온도에 인조 잔디 특유의 높은 지열이 더해져 차라리 찜질방이 낫겠다 싶을 정도의 폭염이 완성됐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한 뒤 한두 이닝이 지나면, 플레이보다 생존에 관한 생각이 더 커진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선수가 속출하고, 경기는 중단되기 일쑤다. 더그아웃에 선풍기가 있고, 에어컨이 작동 중인 실내 공간이 있으나 경기 중에 이용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에 협회 차원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서울시 산하 목동 사업소와 함께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공원에 그라운드 재정비 사업을 시행했다. 특히 내야 부분에는 인조 잔디 위에 흙을 덮는 혼합형 방식의 잔디를 설치해, 일반 인조 잔디보다 지열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도출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선수들의 만족도도 상당한 만큼 분명 의미 있는 개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여름 내내 진행되는 대회에서 선수들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모든 게 무력해질 만큼, 더워도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동야구장 바로 옆에 있는 목동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프로축구 구단인 서울 이랜드 FC(이하 이랜드)는 어떨까. 우선 이랜드의 야간 홈경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민원과 제약도 없다. 물론 이랜드의 홈경기가 한 달에 2~3경기만 펼쳐지고, 인근 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경기장 한편이 개방형으로 이뤄진 목동야구장에 반해 사면이 관중석으로 막힌 목동종합운동장의 근본적인 구조 차이도 한몫한다.
다만 이랜드의 운영 사례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지역 주민들과의 상생 방안을 추진해, 목동야구장에서의 야간 경기를 향한 근본적인 거부감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비용을 들이더라도 완전히 개방된 외야에 소음 차단막을 설치하는 방안도 있겠다. 이를 통해 야간 경기에 대한 제한이 풀린다면, 더위로 힘겨워하는 선수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아마야구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목동야구장의 사용 제약은 아마야구 선수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돌아올 여름에는 목동야구장에도 선수들의 열정이 스며든 저녁이 찾아올 수 있기를.

#고시엔, 무더위에 맞서 전통을 깨다
해를 거듭할수록 역사를 깨고 있는 무더위는 옆 나라 일본에도 난제로 다가온 터. 일본 고교야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시엔’에서도 선수들의 안전에 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시엔이 위치한 간사이 지역이 일본 내에서도 더운 지역에 속해, 섭씨 35도가 족히 넘는 고온 아래에서 대회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고시엔은 한 세기 넘게 이어온 전통을 과감히 깨고, 작년부터 무더위에 맞서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가장 큰 변화는 ‘2부제’를 도입해, 사상 최초로 야간 경기를 시행한 것이다. 기존의 고시엔은 하루에 4~5경기를 연달아 속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수들은 한낮에도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됐다. 이에 고시엔은 하루당 경기 수를 오전과 오후로 진행되는 ‘2부제’로 줄이고, 전체 대회 기간을 늘려 선수들의 컨디션 회복 시간을 확보했다. 특히 정오 이전에 끝나는 오전 경기와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저녁 경기로 일정을 편성해 ‘한낮 경기’를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고시엔은 다방면으로 혹서기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5회 종료 시 8분간의 ‘쿨링 타임’을 가진다. 경기 전에는 공격 및 수비 연습의 시간(노크)을 최대 5분으로 단축하고, 선수들이 원할 시 해당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다. 여기에 선수단에 미세한 얼음 알갱이가 들어간 젤리를 지급해 체온을 낮출 수 있도록 도우며,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엔트리도 최대 20명까지로 확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시엔은 선수 외 인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심판들의 모자를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바꾸고, 냉방 장비가 갖춰진 응원단 대기 공간을 의무적으로 배치했다. 경기 전날 기상청의 특보 발령 여부에 따른 익일 경기 중단 여부를 대회 운영위원회에서 협의하는 규정 또한 신설했다.
고시엔은 기존의 전통과 상징성은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혹서기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고시엔의 행보와 도전은 우리에게 주요한 참고 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장기적 대안, 인천 SSG 랜더스필드
목동야구장을 야간에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고, 지방 경기를 개최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는 아마야구의 현재 환경을 단기간에 극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선을 보다 먼 곳에 둔다면, 인천에서 아마야구의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SSG 랜더스필드가 있으니까.
SSG 랜더스(이하 SSG)는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에 새집으로 사용할 돔구장을 건설 중이다. 현시점에서 계획이 이렇다 할 암초를 만나지 않는다면, SSG는 2028시즌부터 청라 돔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자연스럽게 SSG 랜더스필드가 ‘빈집’이 되는 것이다.
물론 SSG 구단 차원에서도 수십억이 넘는 비용을 들여 가꿔 온 보금자리인 만큼, 홈구장 이전 후에도 퓨처스 전용 구장으로 사용하는 등의 활용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SSG가 1‧2군 간의 인접성을 고려해 청라 일대에 2군 야구장을 건설하기 위한 부지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문학야구장이 빈집으로 남을 가능성 역시 상당하다.
이 경우, 아마야구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찾아올 리 만무하다. 축구장과 수영장 등이 있는 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해 조명과 소음에서 유발되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며, 무엇보다도 경기장의 인프라도 여타 프로 시설과 견줘 봐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게다가 당장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 고교야구 대회’의 결승전이 SSG 랜더스필드에서 개최되고 있지 않은가. 이곳이 향후 ‘한국의 고시엔’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날씨에게 자비는 없다
온대 기후에서 열대 기후로의 변화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모두가 체감 중이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앞으로 우리가 적응해야 할 영구적인 변화다. 야구를 비롯한 실외 스포츠가 혹서기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필시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시한폭탄을 그저 지켜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규칙은 피로 쓰인다”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야구 또한 누군가의 희생을 겪고 나서야 안전 수칙을 강화했던 뼈아픈 기억들이 또렷하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목표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낙으로 자리 잡아야 할 야구가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종목을 불문하고 아마추어 스포츠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에 취약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아마야구 선수들의 혹서기 안전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와 대응을 역설하는 이유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3호 (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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