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딸 대신…영정 품고 졸업식 참석한 아버지
함께 살던 기숙사 방문…“참사 예방 대책 재판 길어져 걱정”
“계속해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면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졸업의 기쁨을 나눴을 겁니다. 그들을 기억합니다.”
15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학위수여식. ‘IT융합자율학부 20학번 유연주와 진세은’이 호명되자 딸의 영정을 든 두 아버지가 단상 위로 나란히 올랐다. 학사모를 쓴 학생 200여명이 영정 속 학우들에게 보내는 박수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성공회대는 이날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씨와 진세은씨에게 명예학사학위증을 수여했다. 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와 세은씨의 아버지 진정호씨가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한 딸들을 대신해 학위증을 받았다. 가족들을 대표해 유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 “새로운 길을 시작하면서 연주와 세은이를 기억해주시고, 살면서 많은 역경이 따를 텐데 그때마다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딸이 졸업할 때 직접 해주고 싶었던 격려는 학우들에게 대신 전해졌다. 유씨는 “그래도 졸업장까지 받으니 딸아이의 마무리를 지어주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 아이들은 사진 액자 틀도 똑같네. 인연이 참….” 진씨가 나란히 놓인 두 영정의 액자 틀이 같은 문양인 것을 보며 말했다. 연주씨와 세은씨는 룸메이트였다.
2020년 봄 대학에 입학한 두 사람은 과 동기로 처음 만났다. 대면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하기 어렵던 차에 만난 ‘코로나 학번’ 두 명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학생회 활동을 같이했고,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가 됐다.
3학년이 된 2022년에는 기숙사 2인실을 같이 썼다. 두 사람은 가족에게도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유씨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영상을 기억하고, 진씨는 이들과 식사를 여러 차례 함께했다.
연주씨와 세은씨는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 갔다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참사 당일 숨진 연주씨의 뒤를 이어 중환자실에 있던 세은씨가 3일 뒤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빈소에 모셔졌다.
유씨는 “그날 연주를 오전 6시에 발인하고 보니 세은이는 오전 8시, 불과 2시간 뒤에 같은 빈소 같은 호실에 영정이 올라왔다고 했다”며 “이 아이들 인연이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진씨는 “세은이는 새로운 것 해보길 좋아했고 연주는 하나를 꾸준히 하는 것 같았다”며 “얼핏 안 맞아 보이는 둘이 이렇게 친해진 것도 참 신기하다”고 했다.
“도저히 못 들어갈 것 같아.” 졸업식이 끝나고 진씨가 딸이 쓰던 기숙사 방에 올라가길 주저하자 유씨가 “그래도 올라가서 애들한테 한번 보여주자”며 북돋웠다. 딸의 영정을 든 두 아버지가 텅 빈 기숙사 방에 들어섰다. 두 아이가 등을 맞대고 앉아 재잘거리던 곳이었을까. 두 아버지는 침대맡에 영정을 놓고 한참을 울었다. 흐느낌 속에 방을 둘러본 아버지들은 방을 나서며 말했다. “연주랑 세은아. 많이 걱정하지 말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 긴 시간은 아닐 테니 가족들 볼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아버지들은 딸들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기숙사 앞에서 영정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딸들을 대신해 할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두 아버지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시청 앞 분향소와 국회, 대통령실 앞을 찾을 때도 함께였다. 참사 관련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유씨는 “조금만 더 빨리 구조를 시작했다면 아무도 안 죽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를 하자는 것인데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했다. 진씨는 “어제 정보보고서를 삭제한 이들에 대해선 실형 선고가 났지만 참사 이전에 예방 대책을 어떻게 세웠는지에 대한 재판은 아주 길어질 것 같다”면서 “올해 안에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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