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바뀐 투키디데스 함정

이선정 기자 2026. 5. 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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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패권을 놓고 전통의 맹주 스파르타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아테네가 27년간 벌인 무력충돌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이 사태의 본질적 원인을 “부상하는 신흥 강국에 대한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저자는 전쟁 당시 아테네 장군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이 전쟁에선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가 공멸의 길을 걷는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이 책을 바탕으로 개념을 제시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을 견제하다가 함정에 빠져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게 논리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주요 2개국(G2) 시대’가 자리 잡는 과정이었던 지난 10여 년간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현대 미중 관계의 핵심 키워드로 꾸준히 언급돼 왔다. 앨리슨 교수는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이 논리로 지난 500년간 신구 세력 갈등을 분석했는데, 16번의 상황 중 12차례가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고 미중 충돌이 17번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표현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다시 언급됐다.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라며 “이는 역사·세계·인민의 질문이며 대국(미중) 지도자들이 함께 써야 할 시대적 답안”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전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간 무력충돌은 필연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말했으나, 이번 회담에서는 발언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충돌은 없거나 필연이 아니다”던 것이 “뛰어넘자”며 수세에서 공세적 메시지로 바뀌었다. 시 주석은 같은 날 비공개 회담에서도 “대만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충돌할 것이고 양국 관계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 같은 강경 발언은 미국이 이란 전쟁, 일방적 관세 부과, 캐나다·그린란드를 향한 영토 야욕 등으로 국제적 비판을 받으며 패권국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나왔다. 중국이 미국 ‘일강’ 시대에선 평화적 공존을 강조했으나 이젠 미중 ‘양강’ 시대라는 점을 역설하며 대등한 위치에서 경거망동 말라는 경고를 날린 모양새다.

이선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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