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접근성 안내

2025. 10. 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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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 소설가

며칠 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갔다가 재미난 풍경을 보았다. 손에 들어오는 크기에, 여러 개가 나란히 앉아 눈을 반짝이는 털 인형이 티켓 수령처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준비되었으니 자유롭게 이용해 달라는 안내가 함께 적혀 있었다. 3년 전 도쿄의 한 국립미술관에서 과민한 사람을 위한 이어플러그와 피젯토이를 배치해 둔 걸 보았지만 한국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접근성 항목을 묻는 설문지에 매우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사진도 찍었다.

사람들은 왜 공연을 보러 갈까? 나의 경우 모르는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 간다. 미지는 어떤 때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으로, 어떤 때는 놀라운 환희로 나타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표면을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니, 정말로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군가 내 가슴에 손을 쑥 집어넣어 매만진 기분이 든다.

달리 말해 이는 좋은 작품은 침범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많은 관람객과 창작자가 이에 동의할 것이다. 둘은 찌르고, 찔릴 각오로 극장으로 가고 창작자는 이 싸움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손에 쥐지 않고선 견딜 수 없이 불안한 이들을 위해 인형을 배치하는 식이다. 누군가 중요한 장면에서 불안이 도져 집중을 못한다면, 호시탐탐 남의 마음을 주무를 타이밍만 재는 창작자도 기운이 쭉 빠질 거다.

그러나 이런 상호 합의가 물적 조건에 의해 막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라디오 피디에게 공연장의 장애인석 이용이 좀 더 수월해졌으면 한다고 하니 그분이 말했다. 최근 공개방송 날에 낯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는 거다. 들어보니 전화 이벤트로 당첨된 청취자를 방송국의 공개방송에 초대했는데, 찾아온 청취자가 휠체어 이용자라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였다. 공개방송이 진행된 홀은 별도의 휠체어 이용 좌석이 없을뿐더러 휠체어로는 진입할 수도 없는 구조였다. 고심하던 끝에 직원 통로를 통해 청취자를 입장시켰지만, 그 뒤로 계속 그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객석을 채우는 게 누군지 상관없다. 모르는 세계와 마주할 각오를 하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설령 작은 인형을 손에 쥐지 않고는 불안에 떠는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좋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지,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접근성 문제에 주목한 건 실은 아주 이기적인 이유에서다. 그건 우리 창작자에게 가학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창작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종종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다. 그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들만이 느끼는 연대의식을 가진다. 나는 당신을 알고, 당신은 나를 안다. 이렇게 마음이 가닿는 경험을, 누군가와 물적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예술을 통한 웃음을, 슬픔을, 경악과 들끓는 분노와 희열을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가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서운하고 아쉬울까? 내게도 있는 작은 털 인형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이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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