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향기 가득, 명동 길거리 음식 탐방

안녕, 98년생 막내 에디터 유정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먼저 밝히자면 난 명동에 대한 추억이 없다. 내 어린 시절에 ‘명동에 놀러 가자!’라거나 ‘명동에 쇼핑 가자!’라고 말하는 친구는 잘 없었으니까. 내가 쏘다니던 동네는 주로 건대나 홍대, 이대 앞 정도였고 성인이 된 후에는 가로수길, 성수동, 연남동.. 하여튼 명동에 갈 일은 없었다. 명동은 관광객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명동에 취재를 다녀오라는 미션을 받았을 땐 당황스러운 마음에 되묻기도 했다. “…명동을요? 왜요?

에디터B 말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침체됐던 명동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래, 명동의 역사와 지난 명성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코로나 여파로 황량해진 거리 사진을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은 있다. 그랬던 명동이 엔데믹 이후 다시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롯데시티호텔 등 명동 주요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90%를 돌파했고, 그 중 외국인 투숙객 비율이 약 90%에 달한다고.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을 찾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쇼핑, 그리고 길거리 음식. 그래서 명동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길거리 음식에 대한 추억만은 가득한 내가 명동의 먹거리를 섭렵하러 다녀왔다.

‘평일 저녁이라 너무 휑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품고 명동역에 도착했다. 기우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하는 날씨에도 상당한 인파가 골목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 이전의 활기를 완벽히 되찾은 것 같았다. 체감상 명동을 찾은 사람들 비율은 외국인 80%, 한국인 20% 정도. 한국인 중 절반은 그저 이곳을 지나가는 중인 것 같더라.

명동성당, 눈스퀘어, 그리고 명동역 6번 출구를 잇는 모든 골목이 길거리 음식으로 가득했다.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음식 속 내 첫 선택은 ‘치즈김치말이삼겹살’. 저녁을 먹기 전이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던 참이라 가급적 보장된 맛을 먹고 싶었다. 치즈, 김치, 삼겹살. 맛없기가 더 힘든 조합 아닌가요?

‘치즈김치말이삼겹살’ 글자 아래에는 친절히 영어 번역도 적혀 있다. ‘Cheese kimchi roll pork belly’. 김치말이국수를 ‘Kimchi rolled noodles’라고 오역해 김치로 불닭볶음면을 둘둘 말아 먹던 외국인 영상이 생각났다. 김치를 삼겹살로 둘둘 만 이 음식을 보면 김치말이국수에 대한 오해가 더욱 깊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철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대패삼겹살과 이어지는 화려한 불쇼 덕분에 잡생각을 멈췄다.

곧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치즈김치말이삼겹살이 건네졌다. 내용물은 양파, 김치, 치즈. 하지만 치즈 맛은 놀랍도록 느껴지지 않았다. 다 먹고 돌아서기 전까지 ‘김치말이삼겹살’이 아니라 ‘치즈김치말이삼겹살’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정도니까.

김치는 매콤함이 거의 없어서 치즈가 적게 들어간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너어무 느끼해질 뻔했다. 상추에 김치, 쌈장에 푹 찍은 고추와 마늘까지 올려 쌈 싸 먹는 한국인 입맛엔 이미 살짝 느끼했다. 차라리 치즈를 빼고 파채를 듬뿍 넣어주면 좋겠다. 아마도 이런 건 외국인 관광객 입맛에 맞춘 거겠지?

다행히 느끼함을 상쇄시켜 줄 소스가 있다. 철판 앞에 놓인 핫칠리소스, 타르타르 소스, 데리야끼 소스 중 원하는 걸 골라 직접 뿌려 먹으면 된다. 나는 세 가지를 모두 맛봤다. 기름기 있는 삼겹살과 짭짤한 데리야끼 소스의 조합이 1등. 핫칠리소스는 너무 매워서 깜짝 놀랐지만 무난하게 잘 어울렸다.

가격은 한 줄에 1만 원. 관광지로 발달한 곳이라 모든 음식이 전부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 먹는다면 같은 메뉴를 파는 다른 곳을 방문해야겠다. 돌아가는 길에 치즈김치말이삼겹살이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곳을 발견해 조금 슬퍼졌기 때문이다. 같은 메뉴를 같은 가격에 팔더라도 맛과 비주얼은 다르니 웬만하면 한 바퀴를 돌아보고 난 후에 선택하길 바란다.


관광지답게 아이러브코리아가 적힌 티셔츠를 판매하는 트럭도 있었다. 사진 오른쪽을 잘 보면 아이러브김치라고 적힌 에코백도 판다. 애석하게도 관광객들은 이 티셔츠와 에코백보다는 허니버터아몬드에 관심이 훨씬 많아 보였다.부모님 손을 잡고 여행 다니던 어린 시절엔 관광지에서 기념품 쇼핑을 하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건 진짜 현지인이 쓰는 물건이 아니란 말야!’하면서. 어른이 되고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조악한 생김새와 만듦새더라도 그 물건을 볼 때마다 미소 짓게 된다면 값어치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할 땐 야시장에서 산 코끼리 바지를 친구와 맞춰 입고 하루 종일 거리를 활보했다. “우리 완전 현지인 바이브야.”라고 키득대면서 말이다. (물론 그렇게 입고 다니는 현지인은 한 명도 못 봤다.) 베트남 거리 풍경이 그려진 파우치는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고, 미국에서 사 온 병따개로 병뚜껑을 열 때면 그때의 추억을 한 아름씩 펼쳐놓게 된다. 행복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물론 그냥 내가 촌스러워진 걸 수도 있다.


골목골목을 탐색하며 수많은 음식을 맞닥뜨렸지만, 나를 단박에 사로잡은 음식은 단 하나였다. 바로 ‘코코넛 새우튀김’. 수십 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인 거리에서 독보적으로 강렬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고소한 코코넛과 기름진 튀김 냄새에 명동 거리의 활기찬 분위기가 더해지니 몇 해 전 방문한 태국 치앙마이가 떠올랐다. 때는 2019년 크리스마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야시장에서는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었다. 나는 노점에서 산 코코넛 새우튀김과 팟타이, 그리고 병맥주 하나를 들고 공연장 앞에 앉았다. 선선한 날씨, 신나는 음악, 춤추고 마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곳을 채운 모든 게 아직까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음식 냄새 하나로 뭐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냄새로 과거를 기억하는 현상을 일컫는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더라.

아무튼 명동에서 먹은 코코넛 새우튀김은 그때의 그 조명, 온도, 습도… 가 60% 정도 느껴지는 맛이었다. 척 보기에도 통통하고 실한 새우에 튀김가루와 코코넛 플레이크를 묻혀 튀겼다. 먹기 전부터 코코넛 향이 진하게 나고, 앞니가 바삭!하고 부서지는 튀김옷을 가르면 탱글한 새우의 식감이 느껴진다. 칠리소스와 사워크림 중 어떤 걸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튀김 특성상 먹다 보면 느끼하고 물리는 감이 있는데, 맥주가 있다면 선 자리에서 열 개는 더 먹어 치울 수 있었을 거다.

코코넛 새우튀김은 6개에 만 원. 비싸긴 하지만 또 사 먹을 의향이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맥주만 있다면!


명동 물가에 놀라긴 아직 이르다. 이날 먹은 음식 중 최고가인 음식이 지금 등장한다. 삼겹살은 배가 부르기라도 했고, 새우튀김은 맛있기라도 했는데. 이건 둘 다 아니다.

주인공은 무려 하나에 2만 원인 ‘랍스터구이’. 랍스터가 길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이던가? 내가 이 메뉴를 선택한 데에는 약간의 사명감이 작용했다. 명동 길거리 음식의 비싼 물가를 나타내는 메뉴로 가장 화제가 됐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가격보다 중요한 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느냐다. 일단 처음 마주한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먹기 좋게 손질한 랍스터 꼬리에 버터를 슥슥 바르고 레몬즙을 뿌려 구워낸다. 중간에 랍스터 위로 불쇼도 한 차례 펼쳐진다. 명동 거리를 5분만 걸어봐도 알겠지만, 여기서 불쇼는 불맛을 더하기 위함이라기보단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퍼포먼스에 더 가깝다.

치즈를 선택하지 않으면 여기서 완성이고, 치즈를 고르면 피자치즈를 얹어 자이글에 데워 준다. 완성된 랍스터구이에는 타바스코, 스리라차, 소금, 후추, 파슬리 중 원하는 소스를 뿌려 주는데 나는 타바스코만 선택했다.

치즈를 듬뿍 얹은 랍스터의 비주얼을 보고 기대를 약간 품었지만, 2만 원을 주고 사 먹을 퀄리티는 아니더라. 짭짤한 버터 향은 좋았지만 꼬릿한 맛이 나고, 양도 감질나게 적었다. 치즈를 빼고 먹는 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치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눈앞에서 손질되는 랍스터가 보기에는 참 싱싱해 보였는데, 아쉽다.

앞서 맛본 음식은 실제로 우리가 자주 먹는 길거리 간식과는 거리가 있다. 명동에 이렇게 특이한 음식들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익숙한 메뉴인 떡볶이와 어묵부터 닭꼬치, 계란빵 등 실제로 길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음식도 많이 있다.

간판에 적힌 대로라면 ‘명동 “원조” 30년 가마솥 떡볶이와 수제 어묵’을 파는 이곳. 원조임을 표방하는 곳이 많아 어디가 진짜 원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조라는 글자에 붙은 쌍따옴표를 보면 사장님의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클래식하게 꼬불어묵을 먹고 싶었지만 “수제 어묵이 진짜” 라는 사장님 말씀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어 수제 어묵을 택했다.

느끼해진 입 안을 달래기 위해 매운 양념을 골랐는데, 아뿔싸. 너무 맵다. 입을 달래긴커녕 불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내가 매운 걸 지지리도 못 먹는 맵찔이긴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주 고객인 이곳에서 이렇게 매운 양념을 쓸 줄은 몰랐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일까? 근데 이제 한국인한테도 너무 매운…

매운 어묵 국물은 기본 어묵의 멸치 육수에 가마솥 떡볶이 소스를 몇 국자 넣어서 완성된다. 그래서 국물이 깊고 구수한데 감칠맛도 느껴진다.

도미살 100%로 만든 수제 어묵의 식감은 폭신폭신하고 탱글탱글하다. 흡사 빵을 먹는 느낌이기도 하다. 색다르고 맛있었지만 아는 맛인 꼬불어묵보다 더 맛있었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평소 어묵 취향에 맞춰 줏대 있게 선택하길 권한다. 가격은 수제어묵 3,000원, 꼬불 어묵 2,000원.

이쯤 되면 배가 슬슬 부르면서 디저트 생각이 난다. 치즈 구이, 계란빵,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나를 유혹하는 달콤한 간식들은 많고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내 위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허투루 배를 채울 수야 없지.

사실 처음부터 오늘 코스의 마지막 디저트로 점찍어 둔 메뉴가 있다. 바로 ‘크로와상 붕어빵’. 무조건 맛있을 거란 확신이 들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메뉴였기 때문이다. 붕어빵도 익숙하고 크로와상의 변주도 익숙한데 둘의 조합은 처음 봤다. 크로플과 크룽지에 이어 크로와상 붕어빵까지 등장하다니, 크로와상 생지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버터가 듬뿍 든 크로와상 생지에 설탕을 묻히고 붕어빵 틀에 바삭하게 구워내니 이게 맛이 없으면 그게 범죄다. 속에 들어가는 필링은 팥, 슈크림, 누텔라, 크림치즈. 그중 내 픽은 슈크림이다. 팥붕보다는 슈붕파여서이기도 하고, 달달한 빵과 슈크림의 조화는 먹어보지 않아도 예술이니까.

갓 구워진 뜨끈뜨끈한 붕어빵을 천연 손난로(?)마냥 쥐고 호호 불어가며 먹어보니 역시나, 예상 가는 그 맛. 무섭디무섭다는 아는 맛이다. 겉바속촉 크로와상과 달콤한 슈크림이 원래부터 이렇게 태어난 것처럼 잘 어울렸다.

가격은 하나에 4,000원. 붕어빵 모양 밖으로 삐져나온 생지 덕분에 일반 붕어빵보다 약간 크고, 빽다방에서 파는 크룽지가 2,800원인 걸 생각하면 충분히 사 먹을만한 가격 아닌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비싸도 맛있으면 무죄’라는 내 철학에 의거해 이 붕어빵 가격은 무죄다. 땅땅땅.


여러 걱정을 품고 다녀온 명동은 생각보다 좋았다. 터무니없이 비싸고 맛이 없을까 봐, 불친절하거나 지저분할까 봐. (물론 실제로 그런 곳도 있겠지만 그건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막상 가보니 새로운 경험에 상기된 관광객들로 가득 찬 거리 분위기가 나조차도 들뜨게 만들더라.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여행하는 듯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고, 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여행하듯 재미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마저도 하나의 묘미라고 생각하며 즐길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