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추방·폭력… ‘신사의 나라’의 민낯
세계 4분의 1 식민지 삼고 폭력 정당화
고문·살해… 어두운 역사 낱낱이 서술
이·팔 전쟁 등 여러 분쟁 원인 분석도
제국주의가 남긴 후유증 객관적 조망
폭력의 유산/ 캐럴라인 엘킨스/ 김현정 옮김/ 상상스퀘어/ 4만4000원


저자는 4개 대륙 20여개 기록보관소 사료와 수백 건의 인터뷰 등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영국이 오랫동안 제국 영토 곳곳에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법의 허울 아래 어떤 식으로 반대 세력을 잔인하게 탄압했는지 등 영국이 자행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전쟁 등 여러 국제 분쟁의 뿌리도 영제국과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당시 유대인 시온주의자와 이슬람 세력을 교묘히 이간질하며, 오직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했다. 영국은 제국을 위한 계책을 꾸미면서 아랍봉기 당시 동맹으로서 유대인을 육성한 전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아랍봉기는 제국 융합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전환점이자 언젠가 또 다른 팔레스타인 전쟁을 초래할 정치적인 매듭이었다. 이 같은 영국의 행보로 두 세력 사이에 증오와 분노가 싹텄고 결국 오늘날의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이 증오의 씨앗을 뿌린 곳은 비단 팔레스타인뿐만이 아니다. ‘문명화 사명’이라는 기치 아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아프리카 등 수많은 나라에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과 착취, 차별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고, 제국 전역은 ‘합법화된 불법’에 지배당했다. “영국은 처음에는 정복으로, 그다음에는 법치와 적법한 폭력에 대한 독점으로 현지 주민을 통제했다. 법학자 존 코마로프의 설명처럼, 법이 제국을 통치했다. 제국에 평화를 가져오는 ‘식민주의의 칼날이자 낯선 나라의 권력 도구이며 강압 행사 과정의 일부’였다.”(153쪽)
저자는 영제국의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명료하게 풀어낸다. 1000쪽이 넘는 책 곳곳에는 과거 영국의 전 세계 식민지 국가에서 벌어진 엄청난 폭력과 추방, 재판 없는 구금, 살해, 고문, 성폭행 같은 끔찍한 폭력 장면이 가득하다. 물론 저자는 이런 폭력을 까발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품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주력한다. 그의 질문은 이렇다. “(식민지를 넘나들며 폭력을 행사한 주체인) 괴물들은 제국주의의 개혁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어떻게 등장했으며, 또 어떻게 오랜 세월 살아남았을까? 이것이 바로 폭력, 기원, 제도, 관행 등 영제국이 19∼20세기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내가 파헤치게 된 근원적인 질문이다.”
책은 식민지배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회에 어떤 장기적 후유증을 남겼는지 세계사의 흐림 속에서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에게도 공감을 주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대한 분량의 글이지만 제복을 입고 행진을 하거나 전쟁 중인 군인들, 암살당한 적국 지도부, 식민지배를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 등 여러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된 생생한 사례들이 어렵지 않게 읽히도록 해준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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