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해서 사고, 짜증 나서 산다… 기분이 지갑 여는 ‘필코노미’ 시대
‘필요’보다 ‘기분’이 구매 결정… 사용자 심리 분석 기술도 발달
“감정 숨겨야 유리” 트렌드 속… ‘기분 관리 산업’ 성장세

진짜 있을까 싶은 이 기술은, 사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식품, 주거, 심지어 차가운 기술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기분은 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기분(Feel)이 새로운 시장경제(Economy)를 창출하는 현상을 ‘필코노미’ 트렌드라고 부른다. 구매의 결정적 요인이 필요(Need)와 경험(Experience)을 거쳐, 이제는 ‘기분’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가격이나 기능보다, 기분이 소비의 주요 목적이 되고 있다.
과거에 감정이란 주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인들에게 기분은 마치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시장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무디, 콰블, 마음정원 등 기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는 202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좋음’이나 ‘나쁨’으로 뭉뚱그렸던 감정을 ‘평온한’, ‘뿌듯한’, ‘감사한’ 등 수십 가지의 세밀한 단어로 구분해 데이터화한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기분 관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식생활에서도 필코노미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배달앱 배달의민족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의 32%는 메뉴를 정하지 않은 채 앱을 켠다. 이런 현상에 주목한 배달의민족은 2024년 3월 챗GPT를 활용해 기분에 따라 메뉴를 추천하는 검색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그동안 축적된 리뷰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의 기분과 상황에 맞는 음식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퇴근길 스트레스로 매운 떡볶이를 시켰다”는 사용자 리뷰를 학습한 다음, ‘짜증난 상황’에 처한 다른 사용자에게 해당 메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기분 읽기’ 기술은 웨어러블 바이오센서와 만나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스마트 워치와 링은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인 ‘미세표정’과 피부의 땀 분비(GSR)를 감지해 사용자의 긴장도를 측정한다. 뉴욕대 로런 매카시 교수가 개발한 ‘피플키퍼(Pplkpr)’ 앱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코칭한다. 누군가를 만난 직후 심박수가 긍정적으로 변하면 다음 만남을 권유하고, 불쾌한 기분이 감지되면 연락처 삭제를 제안하는 형태다. 인간관계의 유지 여부조차 기술이 읽어준 기분 데이터가 결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왜 지금 우리는 기분에 이토록 집착하고 있을까? 그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감정 포비아’라 불릴 만큼 감정 표현에 소극적인 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2명 중 1명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며, 특히 2030 세대일수록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강하다. 부정적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다 보니, 아예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관리하려는 욕구가 기분 관리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필코노미는 수요가 정체된 2026년의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다.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읽고, 제품이 그 기분을 어루만지는 시대. 이제 소비는 나의 ‘기분’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기 방어 기제가 될 것이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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