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 KGM 렉스턴 뉴 아레나 시승기

대한민국 1%

20여 년 전 렉스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용한 광고 문구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어쩌면 이제야 렉스턴이 저 문구에 부합하는 차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모노코크 보디 도심형 SUV가 당연한 요즘,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꿋꿋이 고수하는 렉스턴이 대견해 보일 정도니까. 자갈밭 오프로드를 달리며 다시금 렉스턴의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느긋하게 변화해 온 렉스턴이 KG 모빌리티 지붕 아래에서 완성형으로 거듭났다. 렉스턴 뉴 아레나는 쌍용자동차 시절 나왔던 G4 렉스턴의 두 번째 부분변경 모델이다. 1차 변경 올 뉴 렉스턴 시절에는 외모를 집중적으로 다듬었고, 이번 뉴 아레나에서는 실내 디자인을 적극 개선하며 풀체인지급으로 변모했다.

시승차는 더 블랙 트림으로, 4인승 고급형 ‘써밋’을 제외한 최상위 모델이다. 문을 열면 전동식 발판이 스르륵 고개를 내밀며 운전자를 반긴다. 실내는 기존 쌍용차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투박했던 센터페시아 디자인을 싹 뜯어고치고 물리 버튼을 최소화했다. 이제 더 이상 ‘쌍용스러움’은 남지 않았다.

더 블랙에는 대시보드와 시트 일부분을 스웨이드 재질로 덮었다. 솔직히 말해 렉스턴 이미지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오프로드 특화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좋았을 듯하다. 온갖 경고음과 효과음이 너무 많아 성가시다. 소리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심지어는 실내등을 켜고 끌 때도 효과음이 나온다. 과한 친절이 외려 불편하다.

정통 SUV인 만큼, 정숙성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문을 닫으면 생각 이상으로 고요한 실내가 인상 깊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엔진음이 아쉽다. 2.2L 디젤 엔진은 가속할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엔진 방음만 더 신경 썼으면 전반적인 주행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 터다. KG 모빌리티는 내년부터 렉스턴과 렉스턴 스포츠에 디젤 엔진을 대신해 수출형 모델에 사용하던 2.0L 가솔린 터보 엔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얼마나 더 쾌적할지 벌써 궁금하다.

승차감은 보디 온 프레임의 정석이다. 큰 충격은 대 6 글 권지용 사진 한종협 꿀떡꿀떡 삼키지만 자잘한 충격은 다 걸러내지 못한다. 시내에만 머문다면 승차감이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할 운전자도 분명 있을 터다. 하지만 보디 온 프레임 SUV를 타고 잘 닦인 포장도로만 달릴 순 없다. 고민 없이 오프로드 코스로 뛰어들었다. 뒤뚱뒤뚱 험난한 비포장길을 힘차게 달려 나간다. 한눈에 봐도 가파른 둔덕을 사뿐히 넘어선다. 파트타임 네바퀴굴림은 든든한 구원자다. 평소엔 뒷바퀴만 굴리며 연료를 아끼다가, 험지를 만났을 땐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트랜스포머다. 앞바퀴굴림 자동차는 꿈도 못 꾸는 험난한 길을 거뜬하게 넘어간다.

렉스턴은 도심에만 머무는 이들에겐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보디 온 프레임 SUV의 진가를 아는 이들에겐 가성비 훌륭한 선택지다. 비슷한 성향의 기아 모하비는 하반기 단종을 앞두고 있다. 렉스턴은 진정한 대한민국 1%로 남을 터다.

권지용 사진 한종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