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에서 체력과 균형을 기르는 '씨름'의 매력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 실내 체육관보다 모래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바로 씨름 이야기다. 맨발로 모래를 딛고, 온몸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는 씨름은 겉보기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이다.
씨름은 땀을 흘리는 만큼 몸의 중심을 바로잡고, 순발력과 근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무게를 이기기보다는 흐름을 읽고, 타이밍을 맞춰야 이기는 운동이다. 체중 차이보다 기술과 균형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씨름은 어떤 운동인가… 단순한 힘싸움이 아니다

씨름은 상대를 넘어뜨려야 이기는 경기다. 하지만 단순한 힘싸움과는 다르다. 경기 방식은 '샅바'(허리와 허벅지에 감는 천)를 잡고 승부를 겨룬다. 두 발이 땅에 모두 닿아 있어야 하고, 상대의 신체 중 어느 부위든 땅에 먼저 닿으면 지는 방식이다.
기술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잡기기술’, ‘당기기기술’, ‘걸기기술’, ‘치기기술’, ‘들기기술’로 나뉘며, 각각의 기술에는 수십 가지 응용이 있다.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의 움직임과 반응 속도를 고려해 기술을 즉시 전환해야 하므로 전신을 활용한 반사신경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운동 효과가 입증된 종목… 성장기 체형 교정에도 도움
씨름은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동시에 충족한다. 2021년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씨름협회에서 발표한 ‘생활체육 씨름 프로그램 매뉴얼’에 따르면, 씨름은 다관절 협응을 유도해 하체 근육 발달과 자세 교정에 효과적인 종목으로 소개돼 있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신체 밸런스를 맞추고, 체중 조절과 기초 체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단거리 전력 질주와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이 아닌, 반복적인 저항과 균형 운동이 혼합돼 있어 부상 위험도 낮다.
실제로 전국 초중고 씨름부 출신 운동선수들 중 일부는 씨름을 통해 체중 감량과 자세 개선을 경험했고, 이후 다른 종목에서도 성과를 냈다. 이는 씨름이 단순 전통 종목을 넘어 체력 기반 운동으로 확장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씨름의 전성기… TV 앞을 지키던 국민 스포츠였다

씨름은 한때 전 국민이 즐긴 스포츠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씨름은 명절이면 반드시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1989년 MBC 설날장사씨름대회의 평균 시청률은 44.5%에 달했고, 1990년 추석 대회는 시청률이 무려 61.2%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시청률이 30%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씨름의 위상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만기’, ‘강호동’, ‘김영현’ 같은 스타 선수들이 등장하며 씨름이 단순한 전통 경기에서 대중 스포츠로 진입했다. 씨름은 명절과 주말 안방을 책임지는 콘텐츠였고, 전국에서 씨름부가 운영되며 체계적으로 인재가 육성됐다.
씨름은 왜 잊혀졌는가…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이유
2000년대 들어 씨름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프로씨름단 해체가 이어졌고, TV 중계도 줄었다. 특히 청소년 스포츠 시장에서는 유도, 태권도, 축구 같은 경쟁 종목이 더 큰 인기를 끌면서 씨름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씨름이 재조명되면서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대한씨름협회도 생활체육 프로그램과 아마추어 씨름 활성화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지역 축제, 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군부대 등 다양한 현장에서 씨름 교실이 다시 열리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시작된 ‘씨름의 희열’, ‘씨름의 맛’ 등 방송 콘텐츠는 젊은 층에게 씨름의 매력을 전달하며 인식 전환을 이끌었다.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닌, 기술과 스포츠 정신이 살아 있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씨름의 저변 확대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전통형 운동

씨름은 한국인의 평균 체형과 움직임에 최적화된 운동이다. 고관절을 많이 쓰고, 척추를 곧게 세우는 자세가 기본이다. 관절 부상 위험이 낮고, 특별한 장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
격투기 종목 중에서는 드물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넘기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충격도 적고, 스포츠 매너가 강조된다. 이러한 특성은 어린이뿐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적합하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50~60대 주민 대상 씨름 건강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실제로 씨름은 단순한 관심 회복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활발하게 실천되고 있다. 11일에는 영주시 시민운동장 실내씨름장에서 초·중·고등부가 참여한 씨름왕 선발대회가 열렸다. 장수초, 대영중, 영주제일고 학생들이 각 부문에서 우승하며 지역 전통 씨름의 명맥을 이었다. 울산 울주군에서는 20일 ‘울주 장사를 찾아라’ 씨름 체험 행사가 조선해양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장사급 선수들과 시민들이 직접 모래판 위에 올라 승부를 겨루며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장소와 대상은 달랐지만, 모두가 샅바를 매고 모래판에 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운 여름, 체육관보다 모래판에서 씨름 한판 벌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냉방기기 없는 체력단련소, 땀에 흠뻑 젖는 훈련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강해진다. 전통에 뿌리를 두되, 지금의 시대에 맞는 운동으로 씨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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