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주고받다 보면 RE: re: Re) [RE]…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12. 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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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49] 이메일 제목 앞에 붙는 영어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영어 수업 시간 서신 쓰기 항목에서도 CCBCC는 배운 적 없다. 공교육을 통해 배운 영어를 활용하다 보면, 외국 쇼핑몰에 거칠게 항의 메일을 보낼 때조차 끝에 Best regards, Sincerely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출처=구글 지메일 캡처]
명사. 1. RE 회신, 응답 2. FW 전달 3. CC 참조 4. BCC 숨은 참조 【예문】김 대리, 그 메일 나한테도 BCC로 보내줘.

RE(reply)는 회신, FW(forward, forwarding)는 전달, CC(carbon copy)는 참조, BCC(blind carbon copy)는 숨은 참조를 나타낸다. RE와 FW는 이메일의 제목 앞에 ‘RE:받은 메일 제목’ ‘FW/받은 메일 제목’ 식으로 표기돼 각각 어떤 메일에 답장을 보냈는지, 어떤 메일을 전달하는지 보여준다. 별다른 제목 수정 없이 계속 답장을 주고받으면 ‘RE:RE:RE:RE:RE:RE:RE:RE:RE:받은 메일 제목’처럼 영 괴상한 모양새가 된다. FW는 가을/겨울 시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은 메일을 그대로 제3자에게 ‘전달’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기다.
나도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 5000개라 개추 눌렀다. [사진 출처=Brian J. Tromp, unsplash]
CC와 BCC는 메일을 보내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리송한 단어다.

CC는 메일을 수신할 사람을 정하는 방법의 하나다. 받는 사람(수신인)과 달리 CC는 해당 메일을 ‘참조용’으로 함께 받은 사람들을 뜻한다. 그냥 싹 다 모아서 수신인으로 보내면 되는 걸 왜 굳이 수신과 참조를 굳이 구분할까? 업무에서는 ‘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알고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메일을 보낼 때 누군가를 수신인이 아닌 CC로 지정해 보내는 의미는 “당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업무상 관련이 있으니 참조하시라”가 되겠다. 수신인과 참조의 차이를 알고, 제대로 쓰는 것이 업무의 첫걸음…이겠지만 요즘엔 단톡방에서 뿌린다. 줄어드는 숫자, 적막한 채팅창, 누군가의 “넵” 이후로 줄줄이 달리는 “넵” “옙” “넵!”들…. 트라우마가 도질 것 같으니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그러면 왜 CC가 참조가 됐을까. 캠퍼스 커플 말고 카본 카피의 약자인데 여기서 카본은 카본지(紙),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지’다. 한쪽에 검은 칠이 돼 있는 먹지를 종이와 종이에 끼운 상태로 기계식 타자기로 문서 작성을 하면 여러 벌의 사본을 얻을 수 있는데 카본 카피는 이러한 사본을 뜻한다. 18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종이 서류나 서신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시절, 해당 업무 편지가 누구누구에게 전달됐는지 편지 말미에 명기해둔 것에서 ‘참조’라는 뜻으로 굳어진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CC가 아예 ‘참조로 메일을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굳어져 “CC me, please(참조로 나에게 보내줘)” “I CCed you(참조로 보내놨어)”라고 쓰기도 한다. 한국에도 비슷한 예도 있는데 국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이다. 애플리케이션 이름이지만, 이제는 ‘메시지 보내다’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쓴다. “나한테 (카)톡해줘.” “아까 톡했어.”

이베이에 경매물로 올라온 빈티지 카본지 제품(왼쪽 사진)과 1953년 프랑스 사무용품업체의 카본지 지면 광고. [사진 출처=이베이, periodpaper.com]
BCC는 숨은 참조다. 수신인이 됐든 참조가 됐든, 다수에게 동일한 메일을 발신하게 되면, 받은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가 서로에게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무리 한국에서는 개인정보가 공공재라지만 개인의 이메일 주소가 원하지 않는 타인에게 노출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때 숨은 참조를 활용한다. 또 업무 메일 사본을 누가 받는지를 굳이 알리지 않거나 숨겨야 할 때도 BCC는 유용하다.

CC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융성했던 기계식 타자기의 유산이다. 복사기와 워드프로세서, PC와 이메일의 등장으로 이제 기계식 타자기는 역사 속 유물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타자기가 남긴 흔적 속에서 살고 있다. 우선 쿼티니 두벌식이니 하는 자판 배열 자체가 타자기에서 온 것이고 줄 바꿈에 쓰이는 엔터 글쇠(↵) 역시 타자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엔터키는 원래 리턴키라고 불렸는데 이는 타자기에서 종이를 끼워 넣는 캐리지 부분을 처음 위치로 되돌리는 캐리지 리턴키(줄바꿈키)에서 온 것이다. 애플 컴퓨터에서는 지금도 리턴키라고 쓴다.

이메일의 참조 기능처럼 종종 쓸모를 다해서 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언가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존재는 흔적을 남긴다. [사진 출처=Daria Kraplak, unsplash]
  • 다음 편 예고 : 문에 달린 고리 물고 있는 사자 같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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