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작성자 독립투사인 양’...의사·학부모 줄줄이 모금

의료계 집단행동 불참 의사와 의대생 명단을 소셜미디어 등에 게시한 사직 전공의가 20일 영장실질심사 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들 사이에서 ‘복직 의사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했다가 구속된 전공의 정아무개씨를 돕기 위한 모금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독립운동·잔 다르크 등에 빗대며, 정씨가 ‘돈벼락’ 맞게 해 정부에 대한 저항 동력을 키우자고 주장했다.

23일 의료계와 정부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의사·의대생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지난 20일 구속된 사직 전공의 정씨에게 후원금을 송금했다고 인증하는 게시물이 이어지고 있다. 후원금 규모는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른다.

자신을 부산 피부과 의원 원장이라 소개한 ㄱ씨는 정씨에게 500만원을 인터넷 뱅킹으로 보낸 뒤 그 내역을 갈무리해 메디스태프에 올렸다. 그는 “약소하지만 500만원을 보냈다”며 “내일부터 더 열심히 벌어서 또 2차 인증하겠다”고 했다. ㄴ씨는 100만원 송금을 인증하며 “이것밖에 할 게 없는 죄인 선배”라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썼다. 의대생 학부모 모임인 전국의대학부모연합이 지난 22일 정씨의 변호사 선임 등을 돕겠다며 그의 가족에게 1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씨의 구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은 의대 정원 증원 등 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에 대한 저항이라거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식이다. ㄷ씨는 “생활비를 걱정하는 처지지만, 그래도 옳지 않은 일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송금했다”고 했다.

블랙리스트에 신상이 오른 피해자를 향한 비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 의사 커뮤니티에는 “일제강점기 때도 동료를 팔아 자신만 잘 먹고 잘산 매국노들이 있었다”며 “너네 때문에 숭고한 독립투사 한명이 구속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불법행위 옹호와 피해자 비난 등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일부 있지만, 호응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블랙리스트로 이름이 공개된 동료가 응급실 근무를 포기하기도 했다”며 “피해자 고통은 안중에 없는 의사 사회 분위기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