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전 패배가 부른 나비효과... 그 요르단을 다시 만난다
2024년 2월 6일은 한국 축구에 짙은 암운이 드리운 날이다. 역대 최강 전력이란 평가 아래 64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에 도전했으나 이날 4강전에서 한 수 아래로 본 요르단에 0대2로 완패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요르단전 전날 대표팀 주축인 손흥민(32·토트넘)과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이 몸싸움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성적 부진에 선수단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비난까지 받으며 하차했다.
여진(餘震)이 이어졌다. 후임 사령탑을 뽑는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연달아 헛발질을 찼다. 인선이 길어지자 당장 닥친 월드컵 예선전을 치를 임시 감독으로 황선홍 U-23(23세 이하) 대표팀(올림픽 대표) 감독을 차출했는데, ‘겸직 논란’ 끝에 황 감독이 본업인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40년 만에 한국 축구가 올림픽 무대에서 배제되는 ‘사태’를 맞이한 것. 이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지만, 그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적잖이 드러나면서 현직 축구 대표팀 감독이 국회에 불려가는 망신을 자초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축구협회 일처리에 문제가 많다고 보고 감사를 벌였다. 요르단전 패배가 불러온 나비효과다.
그 요르단을 다시 만난다. 한국 시각 10일 오후 11시 요르단 암만 국제 경기장에서 치르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3차전. 홍 감독은 벼랑 끝에서 사생결단하는 각오로 요르단을 대한다. 한국은 요르단과 상대 전적에서 3승 3무 1패로 앞서 있지만, 지난 아시안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2대2로 비기고 4강전에서 졌다. 그게 요르단에 당한 첫 패배다. 현재 B조 순위도 요르단(1위)에 뒤진 2위. 같은 1승 1무지만 다득점에서 요르단(4골)이 한국(3골)에 앞서 있다.
전력은 한국이 물론 앞선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한국은 23위, 요르단은 68위. 하지만 한국은 감독 선임 잡음에서 불거진 어수선한 분위기에 주장 손흥민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에서 요르단을 상대하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2020년 이후 손흥민이 있을 때 성적(22승 13무 7패)과 없을 때(10승 4패) 성적을 따지자면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상대가 약체일 때 손흥민이 주로 빠져 객관적 분석 지표로 활용하긴 어렵지만 위축될 이유는 없다.
‘캡틴 손’이 없다는 건 경기력뿐 아니라 경기 외적 응집력에 영향을 미친다. 선장 없이 항해를 나가는 선원들 심정인 셈. 홍 감독은 “손흥민이 그동안 대표팀에서 중추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팀워크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 “선수 개인이 그걸 메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팀으로서 메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요르단전에선 일단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가 주장 완장을 대신 찬다. 홍 감독은 “경기 전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포지션이고, 팀 내 영향력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주장이 빠졌다는 게 오히려 선수들 정신 무장에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단 얘기다.
황희찬(28·울버햄프턴)이나 이재성(32·마인츠), 배준호(21·스토크시티) 등이 손흥민 공백을 메울 예정이지만 무게감은 떨어진다. 최근 프랑스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이강인을 중심으로 어떻게 공격을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이강인은 소속 팀 파리 생제르맹에서 오른쪽 윙이나 ‘가짜 9번(false 9·스트라이커 역할을 미드필더가 병행)’을 소화하고 있다.
다행인 점은 요르단도 온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시안컵 4강에서 한국 골망을 갈랐던 야잔 알나이마트(25·알 아라비)와 무사 알타마리(27·몽펠리에), 두 핵심 자원이 부상을 안고 나온다. 갈비뼈를 다친 알나이마트는 9일 훈련에 모습을 보여 한국전 출전 가능성을 높였으나 발목 부상 중인 알타마리는 불참했다.
축구협회는 이번 요르단 원정을 위해 암만행(行) 전세기를 띄웠다. 요르단전 이후 선수단이 곧바로 귀국해 15일 이라크와 벌일 홈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요르단과 한국을 잇는 직항편이 없어 특별히 마련했다. 선수단은 먼저 요르단에 들어갔고, 이 전세기는 붉은 악마 응원단과 한국 취재진, 협회 임직원 등을 태우고 10일 암만에 입성했다.
다른 나라들도 10일부터 일제히 예선 3차전을 치른다. C조에선 신태용(54)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벨기에 등 이중국적 선수 10여 명을 귀화시키며 전력을 강화,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호주를 상대로 2무승부를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 3위에 오른 인도네시아는 11일 바레인, 15일 중국전을 잘 치른다면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월드컵 본선에 나간 1938년 이후 88년 만의 본선행에 가까워진다. A조 북한도 아시안컵 2연속 챔피언 카타르와 2대2로 비기며 선전 중이다. 1무 1패로 4위인 북한은 11일 UAE, 15일 키르기스스탄과 맞붙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