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말고 지하철 급행 없는 이유

이 사진을 보라. 모든 지하철에 급행 제도를 운영해 달라는 서울 출퇴근러들의 간절한 외침이다.

서울 지하철 가운데 전 구간에 급행 열차를 운영하는 건 9호선 뿐이다. 1호선, 4호선도 구간별 급행이 있긴한데 제한적이다. 아무튼 9호선 급행 열차를 타면 도착 시간이 30~40%가량 빨라지는 매직이 펼쳐진다. 물론 사람은 미어터지지만.

이렇게 모든 지하철 노선에 급행이 있으면 악몽같은 출퇴근길이 조금은 편해질텐데, 왜 급행열차를 안 만드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왜 9호선 말고는 급행 지하철이 없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과 ‘시간’이 없어서다. 돈과 시간이 있다면 9호선 말고도 다른 노선에 급행을 도입할 수 있는데, 철도 예산 등을 따져봤을때 여건이 안된다는 것. 그래서 급행 지하철이 새로 도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한다.

신기한게, 급행 열차 신설에 그렇게 돈과 시간이 많이 들까? 그냥 멈춰서는 역만 조정하면 되는 거 아닐까 싶은데. 근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첫째, 대피로 건설에 돈이 많이 든다. 먼저 이걸 설명하려면 급행 운행의 기본 원리부터 알아야겠다. 급행 열차를 도입하려면 ‘추월’과 ‘대피’ 방책 마련이 필수다.정차역이 적은 급행은 필연적으로 앞에 가는 완행 열차를 따라잡게 된다. 그러면 완행은 역에 추가로 설치된 대피선에서 일단 대기한다.

후속 급행은 그 역에 정차한 후 완행보다 먼저 출발하거나 아예 통과하는 방식으로 완행을 추월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급행열차를 운영하려면 적절한 위치에 대피선이 꼭 설치돼야 한다

문제는 이 대피선을 새로 건설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것.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2017년 지하철 3호선 총 9개역에 대피선을 만드는 데 약 1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근데 이 금액으로는 턱도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

일본에서 유사하게 공사를 하고 있는 사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요. 다 사이트마다 이제 돌아다니면서 다 합쳐보니까 (한 역당) 3000억 가까이 넘게 들더라고요.

둘째, 대피선 설치를 위한 장기간 공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피선 설치 자체가 대규모 공사인데, 이 기간 동안 지하철을 못 타게 될 시민들의 불편이 말도 못하게 커질 게 분명하기 때문. 특히 상대적으로 깊이가 얕은 1·2·3·4호선보다 더 깊은 땅 속에 위치한 5·6·7·8호선의 공사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손기민 중앙대 교수]

(공사)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예를 들면 야간에만 공사해야 되는 그런 부분도 있고, 실제 영업을 좀 제한을 받을 수도 있고요.

셋째, 일부 노선은 태초부터 구조적으로 급행을 만들기 어렵다. 2호선이 대표적인데, 노선의 기울기 변화가 심하고 순환선인 탓에 곡선 구간이 많기 때문.

이밖에도 급행 정차역을 어느 곳으로 할 건지, 배차 간격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급행 신설로 인한 승객 쏠림 현상이 전 노선에 확대돼 혼잡도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악명 높은 9호선 ‘지옥철’이 전 노선으로 확산되는 ‘대 지옥 시대’가 펼져질 지도. 9호선은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급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취재하다가 알게된 건데, 이런 제약에도 9호선 이외의 다른 지하철 노선에 급행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왔다.서울시가 국토교통부에 정식으로 건의를 하기도 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도 내세웠다.

직접 찾아보니, 노선마다 급행 열차를 도입했을 때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다는 식의 효과 연구도 여러 개였다. 이런걸 보면 급행 도입에 진심이었던 사람들이 과거나 지금이나 엄청 많은 것 같다.

급행 열차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는 정부는 대신 ‘출퇴근 전쟁’의 해법으로 광역급행철도인 GTX 늘리기에 더 집중하고 있는 상황. 수도권 전역을 30분 대 생활권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

지금 이제 트렌드가 GTX라고 광역교통망이 생기는 게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감 있는 그런 정책이 아닌가 그런 것도 싶어요.

지난해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통근 근로자의 평균 출퇴근 이동 거리는 17.3km, 소요 시간은 1시간13분이라고 한다. 취재 결과 서울 직장인들이 출퇴근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급행 도입이 당장 어려운 건 아쉽지만,정부가 더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을 더 많이 개발해 직장인들의 출퇴근길을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