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여자 아이돌이랑 '모텔 상황극'..해병대의 밤 장기자랑
"선임 한번 못 웃기냐, 했던 것 또 하냐"..매일 밤 폭언에 기합

(춘천=뉴스1) 이종재 기자 = “시작.”
2021년 3월4일 밤 10시쯤. 저녁 점호가 끝나자 선임병인 A씨(22)는 후임병들을 바라보며 이같이 외쳤다.
그리고 일병인 B씨(22)와 C씨(19)는 남‧여 아이돌 춤추기를 시작으로 여자 연예인이랑 모텔 등지를 다니는 상황극, 성대모사, 이름으로 삼행시, 자고 싶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기 등의 장기자랑을 이어갔다.
코로나19 예방적 격리를 위해 마련된 해병대의 한 임시생활반에서 일어난 일이다. A씨 등은 임시생활반에서 지내게 된 첫날부터 ‘심심하다’는 이유로 후임병들에게 장기자랑을 강요했다.
후임병들은 자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선임병들의 강요를 끝내 뿌리치지 못했고, 이때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이들은 매일 점호(밤 10시) 이후 1~2시간씩 장기자랑을 하면서 선임병들이 웃을 수 있도록 만족시켜야 했다. 오직 선임병들만을 위한 장기자랑은 임시생활반에 머물러야 하는 2주 동안 계속됐다.
장기자랑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경우 선임병들은 “넌 XX, 준비 안하냐. 하루 종일 휴대전화 처보면서 선임 한번 못 웃겨?”, “더 없냐, XX. 그게 웃기려고 한 행동이냐?”, “선임에 대한 예의가 없다. 했던 것 또 하냐?” 등의 폭언을 후임병에게 퍼부었고, 기합을 줬다.
폭언을 비롯 폭행, 가혹행위는 임시생활반에서 지내는 2주 동안 일상다반사였다.
이들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이 삼행시를 했으나 웃기지 못하면 너비 31㎝의 철제 관품함(관물대) 의류 수납 공간에 3분가량 들어가 있도록 했다.
또 장기자랑에서 웃기지 못하면 물구나무를 시키고, 물구나무를 할 때 다리를 내리는 등 열심히 하지 않으면 벽을 바라보고 ‘내가 왜 그랬지’라는 말을 약 5분간 소리 내 말하도록 강요했다.
같은해 3월11일, A씨는 피해자 B씨가 자신의 생일 고깔콘 모자를 허락없이 썼다는 이유로 목발로 B씨의 정수리 부위를 5차례 내리쳐 폭행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특수폭행, 강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형사2단독 박진영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자신이 피해자들보다 선임병이라는 우월한 지위에 있음을 이용해 짧지 않은 기간에 피해자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후임병 1명을 폭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들이 느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 수치심과 모멸감 또한 가볍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원만히 합의한 점, 피해자들이 별다른 조건없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후 피고인과 검사 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의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leej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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