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탄핵 칼끝의 ‘언터처블 김 여사’
부인 문제는 절대 못 건드린다는 尹
도이치 불기소 땐 ‘여론재판’ 혼란만 가중
여사 문제 ‘사법재판’에 맡기고 국정 챙겨야
돈은 권력의 향배에 그토록 민감하다. 필자는 다만 대통령 탄핵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이란 보수층이 늘고 있지만, 아직 박근혜 탄핵 때와 같은 국정농단 물증은 딱히 없다. ‘윤-한 갈등’이란 뇌관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지만 이번에 당선된 108명은 비례 의원을 포함해 대부분 지역구가 안정적인 여당 텃밭 출신들이다. 정치생명을 걸고 그 위험한 ‘탄핵의 강’에 몸을 던질 이들은 현재로선 장담컨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징치(懲治·징계해 다스림)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한다”면서도 “탄핵 얘기를 한 적 없다”고 발을 빼는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섣불리 가속 페달을 밟다간 불확실한 게임에 휘말리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1심 판결 등 ‘운명의 11월’이 다가오고 있어 내심 초조하고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지층의 탄핵 분위기는 부추기면서도 직접 발은 담그지 않으려는 고도의 줄타기인 셈이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론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선택도 같이 탄핵되는 것이다. 그만큼 엄격한 근거에 따라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보편적 이익에 부합할 때라야 가능하단 얘기다. ‘방탄용’ 탄핵은 그래서 위험하고 야권 내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
한데 요즘 용산 돌아가는 걸 보면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큰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탄핵 공세의 칼끝은 주지하다시피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탄핵은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지만, 대통령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불안 요소들을 해소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때와는 다를 것이란 믿음 때문인지, 11월이 지나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지, 극우 유튜버들의 정권 옹호 논리에 취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중의 끌끌 차는 목소리엔 귀를 차단한 듯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용산은 김 여사 방어망이 뚫리면 마치 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듯 전전긍긍하고 야당은 그런 여권의 난맥상을 즐기는 양상이 집권 전반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는 그 숱한 논란에도 ‘언터처블’이다. 급기야 검찰이 명품백에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곧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검에 대한 여권 균열은 물론 촛불 결집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땐 뭔 사과를 한들 일반 사람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게다가 웬 음습한 정치 기술자인지 협잡꾼인지 하는 사람과 대선 이후까지 소통을 이어온 흔적까지 나왔다.
만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기소된다면 대통령 부부는 물론 국민도 참담하고 치욕스럽긴 마찬가지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최고 권력자에겐 남다른 사생관이 요구된다. 검찰 출신 대통령인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과 엄정한 잣대 적용이 필요했다. 이제라도 여론재판이 아닌 사법재판을 받도록 하는 게 ‘대통령 부하’로 전락한 검찰 신뢰를 회복하고 당사자들도 후환을 더는 길이다. 시중에서 “간신” “여사라인” 등 권력의 무게추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의 활동을 제어하고 온전히 국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용산은 어떤 길을 갈까. 극적 반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부분 아닐 거라고 한다. 권력의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는 선출 과정의 합법적 정당성뿐 아니라 권력 행사 과정의 실질적 정당성까지 포함한다. 어쩌면 실질적 정당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 실질적 정당성이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나라 경제는 점점 껍데기가 되고 있다는 우려와 한탄이 쏟아진다. 김 여사 장벽을 넘지 않고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정치에선 할 말이 없으면 지는 법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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