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기기 빅뱅]② 효성·HD현대·LS, 30년 설움 딛고 맞이한 황금기

AI 데이터센터와 전력기기 이미지. /생성형AI(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사양 산업 취급을 받으며 홀대 받던 전력기기 산업이 30년 설움에서 벗어나 화려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다.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3사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가속화 흐름을 타고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수년치 일감을 확보하는 등 K-전력기기가 황금기를 맞이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정체 산업의 반전 드라마, 30년 인내가 만든 수출 효자

전력기기 산업은 지난 30년간 성장이 정체된 분야로 치부 받았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장비 교체 주기가 길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또 글로벌 초거대기업인 GE와 지멘스, ABB 등의 그늘에 가려 미국·유럽 시장에서 대규모 프로젝트 일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저가 물량 수주에만 만족해야 했다.

내수 시장에서는 한국전력이나 발전 공기업 등과 거래했지만 전력 수요 둔화로 큰 이익을 거두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IMF 금융위기 등으로 발전·송배전 설비 투자가 급감해 내수 시장이 침체되자 큰 이익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수익 규모가 작은 글로벌 저가 프로젝트로 연명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 국영·민영 전력기기 업체가 가격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면서 그나마 저가수주로 버티던 국내 기업의 일감을 빼앗았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말까지 국내 전력기기 산업이 30년간 암흑기를 보내야했던 대표적인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불황과 낮은 수익성으로 전력기기 기업은 소속 그룹에서도 비주력·저성장 산업으로 분류돼 투자금 집행에서도 후순위에 머물렀다”며 “비주류 산업이라는 인식으로 우수 인재 영입도 쉽지 않아 정체기가 길어졌다”고 말했다.

실적도 환골탈태, 그룹사 'New캐시카우'로

장기간 침체에 일각에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전력기기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대 초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급증하는 전력기기 수요에 힘입어 실적도 환골탈태했다.

소속 그룹에서 ‘아픈 손가락’이었던 전력기기 분야가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력과 건설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효성중공업의 실적을 보면 이런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효성중공업은 전력 사업을 담당하는 중공업 부문과 해링턴플레이스 등의 아파트를 짓는 건설 부문으로 나뉜다. 2019년 매출을 보면 중공업 부문은 1조 8002억 원, 건설은 1조 9612억 원이다. 반면 영업이익은 중공업 -206억 원, 건설은 1703억 원이다.

2020년 실적은 더욱 처참하다. 중공업 부문의 매출은 1조 6941억 원, 건설은 1조 2684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중공업 -270억 원, 건설 1029억 원이다. 매출은 중공업 부문이 더 많지만, 영업이익은 1300억 원이나 차이난다.

HD현대일렉트릭의 초고압 변압기. / 사진 제공=HD현대일렉트릭

그러나 2021년부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이 본격화되면서 중공업 부문은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많은 이익을 거두기 시작했다. 당시 중공업 부문의 영업이익은 387억 원, 2022년은 676억 원, 2023년 1750억 원, 2024년 3679억 원으로 늘었다. 2023년부터는 건설 부문보다 이익이 많아지며, 회사의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다.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도 효성중공업과 비슷하다. 30년이란 어려움을 딛고 2021년을 기점으로 큰 이익을 달성하며 각 그룹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암흑기에도 기술 개발 끈을 놓지 않았던 뚝심이 마침내 빛을 본 것이다. 무명 설움을 딛고, 세계 에너지 혈관을 잇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K-전력기기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슈퍼 사이클 10년, 국내외 거점 신·증설 본격화

현재 국내 전력기기 3사는 밀려드는 주문에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다. 3~4년치 일감을 미리 확보한 상태에서 추가 계약 문의까지 빗발친다. 영업이익률 역시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제조업 평균인 5%대보다 높은 마진을 달성 중이다. 이 흐름이 최소 10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3사는 해외 거점의 신·증설을 본격화하며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효성중공업은 2020년 인수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에 2300억 원을 투자해 2028년까지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한다. 증설 작업이 완료되면 멤피스 공장의 생산능력은 765kV(킬로볼트)로 늘어 미국내 최대 규모의 변압기 생산거점으로 변모한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미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 제2공장을 확충한다. 2028년 완성을 목표로 1850억 원을 투입했다. 울산 변압기 공장은 2118억 원 규모를 투자해 올해 말까지 증설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LS일렉트릭은 미국 텍사스주에 생산·연구 종합 거점을 확보해, 2030년까지 2억 4000만 달러(약 3540억 원)를 투자해 생산량을 크게 늘릴 방침이다. 초고압 변압기와 HVDC 변환용 변압기를 만드는 부산 거점에는 2생산동을 준공해 기존 1생산동의 2배 수준의 생산능력을 추가 확보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력기기 업계의 본격적인 황금기는 이제 시작”이라며 “전력기기는 기술개발과 제작기간이 길어 후발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힘든 구조다. 우리 기업의 상승세는 최소 2030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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