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대신 성층권 드론 - 총알보다 빠른 열차… 공상, 현실이 되다[창간 33주년 특집]
AI시대 新기술
성층권 드론
바람없는 고도 18㎞ 체류… 위성보다 비용 저렴
특정 위치 장기간 관측 가능… 재난 감시에 유용
하이퍼튜브
아진공 튜브 속 열차 자기력 부상… 마찰저항 없어
시속 1000㎞ 이상 주행… 서울~부산 20분에 주파
차세대원자로
핵연료·냉각재로 소금 사용… 원전보다 안전
냉각재 가압기 등 필요없어… 소형화에 적합
영화 혹은 만화 속에서 가능한 기술들이 툭툭 세상에 나오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다. AI가 내 손 안의 기기로 들어와 업무를 돕고 질문에 척척 답한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발전 속도다. 이런 시도들은 계속돼 왔다. 진공 튜브 속을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 한 달 넘게 비행하며 지상을 관측하는 무인기 등, 막연히 미래의 가능성으로 치부해온 기술들이 국내 연구실에서 속속 개발되고 있다.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로 서울·부산 20분에 주파 = ‘하이퍼튜브’는 공기저항이 거의 없는 아진공 상태의 튜브 안에서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신개념 철도다. 아진공 튜브와 차량에 탑재된 초전도전자석을 이용, 자기력으로 차량을 부상·추진시키기 때문에 공기·마찰저항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기존 고속철도는 공기·마찰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속도를 올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이퍼튜브는 이런 한계를 극복해 시속 1000㎞ 이상 속도로 주행하는 것이 목표로, 상용화될 경우 기존 KTX 열차로는 2시간 이상 걸리던 서울-부산 거리를 20분이면 주파할 수 있게 된다.
기술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0.001에서 0.01기압의 아진공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튜브가 갖춰져야 한다. 또 튜브 내에 자기력으로 차량을 부상·추진시킬 수 있는 초전도전자석 궤도가 필요하고, 아진공으로부터 객실의 기밀상태를 유지하면서 초고속으로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이 완성돼야 한다. 한국철도연구원은 지난 2020년 11월 축소 모형 시험에서 0.001기압의 아진공 튜브 내를 시속 1019㎞로 달리는 데 성공해 기본설계 원천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초고속 부상열차의 특성상 궤도에서 이탈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관건인데,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즉시 유도전류를 발생시켜 차량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진공 상태의 튜브 속을 초고속 자기부상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은 2009년 한국철도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사업화했다. 사실 국제적으로는 ‘하이퍼루프’라는 명칭이 통용되는데, 2012년 일론 머스크가 제시한 사업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전북 새만금에 하이퍼튜브 테스트베드를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나 지난해 10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예타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해당 사업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도전형 R&D 사업으로 선정되며 재추진되고 있다.
◇성층권에서 한 달 체공하며 위성 역할 수행 = 성층권 드론은 대기가 안정적인 고고도까지 올라가 장기간 체공하며 지상 감시나 통신중계에 쓰이는 무인기다. 2022년부터 내년까지 총 375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우주항공청·한국항공우주연구원·성층권드론기술개발사업단 등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성층권은 고도 10∼50㎞의 하늘로 대류권과 중간권 사이를 의미한다. 공기밀도가 낮고 공기의 상하이동도 적어 장기간 안정적 체공에 유리하다. 일반적인 민항기가 난류를 피하고자 고도 11㎞ 정도의 대류권 계면을 비행하는 것과 달리 성층권 드론은 바람이 가장 적은 고도 18㎞ 부근에서 활동한다. 이 고도의 공기밀도는 지상과 비교해 15분의 1에 불과하다. 즉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가 적게 들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같은 에너지라면 더 빠르게 날 수 있다는 뜻이다. 구름이 없어 급변하는 날씨를 우려하지 않아도 되고, 태양광 충전에도 유리하다. 이런 특성상 성층권 드론은 20㎏ 이상의 임무장비를 탑재하고 30일 이상 장기 체공하며 인공위성처럼 고고도에서 지상을 상시 감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고고도유사위성(HAP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히려 인공위성보다 나은 점도 있다. 우주까지 보낼 필요가 없어 비용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우주 쓰레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위성 한 기를 제작하고 발사하는 덴 최소 수백억 원이 들지만 드론은 10분의 1 수준이면 가능하다. 또 위성은 한 궤도를 따라 지구를 계속 돌기 때문에 특정 장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다.
향후 성층권 드론이 상용화되면 산불·태풍 등 재난·기상현상 관측에 유용하게 투입될 수 있다. 투입과 조작이 쉬워 필요할 때 긴급히 투입할 수 있어 군용 정찰기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우주청은 지난 23일 세종에서 우주청, 사업단,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육·해·공군 등 주요 수요기관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성층권 태양광 드론 상용화 추진위원회 착수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차세대 원자로 = 차세대소형모듈원전(i-SMR)이 내년 표준설계 인가 획득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계에선 새로운 노형의 차세대 원전도 개발 중이다. ‘용융염원자로(MSR)’도 그중 하나다. MSR은 고온에서 액체상태로 존재하는 염(소금)을 핵연료 및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다.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기존 경수로와 달리 용융염이 핵연료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염화나트륨(NaCl) 또는 불화나트륨(NaF)에 삼염화우라늄(UCl3) 등 핵물질을 녹여 사용한다.
MSR은 기존 원전보다 안전한 혁신 기술로 기대된다. 경수로 등 기존 원전은 냉각재가 유실되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에도 지진해일로 냉각 시스템 전원이 정지되며 과열된 게 원인이었다. MSR은 핵연료가 냉각재 역할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냉각재 유실 염려가 없고, 냉각용 열교환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비상용 탱크로 연료를 분리, 핵분열이 일어나는 임계질량보다 연료량을 줄여 반응을 멈출 수 있다.
가압경수로와 달리 냉각재 계통을 가압할 필요가 없어 격납용기 크기와 가압기 등 기존 원전에 필요했던 각종 장치를 소형화하거나 생략할 수 있어 소형화에 적합하다. 이런 장점에 따라 선박 추진용 발전원으로 적절하다는 기대가 부각돼 과기정통부와 해양수산부는 2026년까지 4년간 총 사업비 290억 원을 투입해 해양용 염소염 기반 MSR 핵심기술 등 개발에 나선 바 있다.
구혁 기자 gu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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