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일 정상회담, 이번엔 한국이 일본 찾아갈 차례였다?

이웅 2022. 9. 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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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상회담, 지금까지 74번..'방문국-주최국' 번갈아 맡아온 게 관행
관행 따르면 이번은 한국 주최 차례..전·현 외교 관리 "관행이 철칙은 아냐"
회담 장소, 주유엔 일본대표부 입주 건물..'윤 대통령이 찾아갔다' 볼 여지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최근 미국 뉴욕에서 오랜만에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 이후 그 추진 과정과 성과 등을 놓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26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번갈아) 한 번 오면 한 번 가고 하는 거예요. 이번에 저희가 갈 차례인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년 9개월 만에 재개된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양국 간 현안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평가했으나, 다른 한편에선 회담을 주저하는 일본 측을 애써 찾아가 만났음에도 가시적인 회담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을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정부가 번갈아 주재하는 데 이번은 순서상 일본 측이 호스트 역할을 할 차례였기 때문에 찾아갔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같은 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만약에 그(정상회담 주재) 순서를 이어간다면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정하는 장소에 왔어야 됐죠"라며 정반대의 발언을 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 걸까?

악수하는 한일 정상 (뉴욕=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2.9.22 jeong@yna.co.kr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8년 일본 개황' 자료를 분석해 보면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금까지 모두 70여 차례의 단독 정상회담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박정희 정부 때 2회, 전두환 정부 3회, 노태우 정부 6회, 김영삼 정부 8회, 김대중 정부 14회, 노무현 정부 11회, 이명박 정부 20회, 박근혜 정부 3회, 문재인 정부 6회로, 윤석열 정부의 첫 정상회담인 이번 뉴욕 회담까지 포함하면 총 74회에 이른다.

정상회담 횟수로 봤을 때 한일 양국 간 활발한 교류가 시작된 건 김대중 정부 때로,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채택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기로 정부, 경제뿐 아니라 문화 교류까지 본격화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노무현 정부로 이어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과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이 반복되면서 '셔틀외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셔틀외교는 양국 정상이 수시로 상대국을 오가며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실무회담을 열어 소통하는 정상외교를 뜻한다.

[표] 역대 한일정상회담-1

[외교부 발간 '2018년 일본 개황' 발췌]

한일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건 이명박 정부 때로 셔틀외교에 더해 다자간 정상회의 때마다 양국 단독 회담을 병행해 매년 4∼6차례의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2012년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랭했다.

이런 경색 국면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지속되다가 2015년 말 아베 신조 총리의 방한으로 3년 6개월 만에 정상회담이 재개되고 뒤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합의가 이뤄지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고 강제노역 피해 배상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경색됐다.

과거 한일 정상회담 사례들을 살펴보면 한쪽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해 회담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때 파견국(외교 사절을 보내는 나라) 정상을 초청한 접수국(외교 사절을 맞는 나라) 정부가 회담 일정과 장소를 제안하고 준비 실무를 맡았다. 이런 원칙은 제3국에서 열리는 다자간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양국 단독 정상회담에도 적용돼 양국 정부가 교대로 회담의 호스트 역할을 맡는 게 관행이 됐다.

최근 사례를 봐도 2018년 2월 아베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방한하면서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위안부 합의 무효화 선언 후 처음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는데, 3개월 뒤엔 문재인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면서 도쿄 총리관저에서 단독 회담이 열렸다.

다시 4개월 뒤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뉴욕에서 단독 회담을 했는데 회담 장소는 문재인 대통령의 숙소였던 파커뉴욕호텔이었다. 그 뒤 1년 3개월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단독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는데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을 방문해 회담했다. 이때가 이번 정상회담 직전의 마지막 회담이 됐다.

[표] 역대 한일정상회담-2

[외교부 발간 '2018년 일본개황' 발췌]

이에 비춰보면 청두 회담 이후 2년 9개월에 만에 성사된 이번 뉴욕 한일정상회담은 엄밀히 따져 한국 정부가 주최 측 역할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교부 발표대로 일본 측이 호스트를 맡았기 때문에 기존 순서를 어긴 셈이 됐다.

다만 과거 사례로 볼 때 정상회담 주재 순서는 큰 줄기를 이루는 관행일 뿐이고 항상 따랐던 철칙은 아니다. 회담 여건에 따라선 양국 정부의 협의로 순서가 달라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양국 정상회담이 빈번할 때는 순서를 따지지 않고 회담을 주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한 이후 일본 총리가 연이어 세 차례 한국을 찾은 적도 있다.

실제 전·현직 외교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봐도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이 한 번씩 방문국과 주최국의 역할을 번갈아 가며 맡는 관행을 따라왔지만 이 관행이 철칙처럼 지켜진 것은 아니다. 형식보다는 회담을 갖는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면 협의해서 융통성 있게 주최국과 방문국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두루 살피면 양국 정부가 조율한 결과 일본 측이 연이어 호스트를 맡고, 한국 대통령이 여기에 찾아갔다는 것 자체만으로 '굴욕 외교'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2년 9월21일 미국 뉴욕 한일정상회담 직전 회담장 모습 [일본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다만 그렇더라도 일본 측 제안으로 정해진 이번 뉴욕 회담 장소가 양국 정상의 접근성을 고려한 결정일 뿐 한국 정상이 일본 정상을 찾아간 건 아니라는 우리 정부의 설명은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회담 직후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실 브리핑 내용을 보면, 이번 뉴욕 회담은 유엔총회장 인근 콘퍼런스 빌딩에서 열렸는데, 기시다 총리가 그 빌딩에서 앞서 열린 행사에 우연히 참석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박진 외교부 장관이 26일 JTBC와 한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이번 뉴욕 회담 장소는 주유엔 일본대표부가 입주한 건물이어서 윤 대통령이 일본 측을 방문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회담은 이 건물 7층에서 열렸는데 같은 건물 28층에는 주유엔 일본대표부가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회담이 주유엔 일본대표부 건물에서 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그동안의 관행적인 순서를 깨고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호스트를 맡은 이유를 묻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다자회의 특성상 양 정상의 일정을 감안해 상호 편리한 형식으로 양국 간 조율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며 "이번에도 이에 따라 일측과 상호 긴밀히 조율하여 회담이 이루어졌다"고 답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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