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포기한 보이스피싱범 잡으러 중국 간 여자

▲ 영화 <시민덕희> ⓒ (주)쇼박스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850] <시민덕희> (Citizen of a Kind, 2024)

글 : 양미르 에디터

'슈퍼 히어로' 영화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대중은 흔히 옆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 발휘하는 영웅적 행보에 더욱 열광했다.

지난해 디즈니+의 약진을 알린 <무빙>은 평범해 보이는 동네의 이웃이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가족의 사랑, 그리고 휴머니즘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마블 히어로'와 달리, <무빙>의 캐릭터들이 단순히 '상업적 흥행'을 위해 창작된 것 같지 않다는, 그러니까 크리에이터의 진정한 마음씨가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덕희> 역시 그런 크리에이터의 마음씨가 확실하게 보인 작품이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AI'를 활용하면서 더 고도화된 상황에 나온 이 영화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을 바로잡고 싶다"라고 말한 박영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작품의 주인공, 소시민 '덕희'(라미란)는 자신이 운영하던 세탁소 화재로 대출 방안을 찾던 중 주거래 은행인 '손대리'(공명)에게 대출상품을 제안받는다.

그럴싸한 설명이 담긴 가운데, 대출에 필요하다면서 이런저런 수수료 등을 요구한 '손대리'에게 '덕희'는 총 8회에 걸쳐 3,200만 원을 입금한다.

하지만 '손대리'의 연락은 두절되고, '덕희'는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손대리'는 '덕희'가 전화로 받았던 그 목소리의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감에 '덕희'는 쓰러졌고, 이내 어디서 '손대리'를 잡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허나 추적할 수 없는 보이스피싱 사건들에 신물이 난 화성경찰서 지능팀 소속 '박형사'(박병은)는 전 재산을 사기당한 '덕희'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총 8번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입금하는 동안 인지하지 못한 피해자의 탓도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좋은 인생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더 절망감에 빠진 '덕희'는, 어느 날 '손대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손대리'의 진짜 이름은 '재민'이었는데, '재민'은 고액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한 대학생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국 지사에서 일하며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던 '재민'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보이스피싱 조직에 납치되고 조직 내에 본인처럼 똑같이 속아 발이 묶이게 된 또래들을 만난다.

'재민'은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는 일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일 같이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재민'은 탈출 중 '총책'(이무생)이 잡아낸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장면을 보면서 겁을 먹고 돌아간다.

하지만 바다 건너 들려오는 분노에 가득 찬 피싱 피해자 '덕희'의 목소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느낀 '재민'은 '덕희'에게 은밀하게 구조 요청을 보내기 시작한다.

결국, '덕희'는 '재민'이 탈출 시도 때 본 '근처 가게 상호'만 보고 무작정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연차를 내고 중국 칭다오로 향한다.

한편, 보이스피싱의 범죄 구조상 범인을 찾을 수 없다고 '덕희'를 납득 시키려 했던 '박형사'도 '덕희'의 끈질긴 추격에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다.

<시민덕희>는 2016년, 경기도 화성의 세탁소 주인 김성자 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후 직접 나서서 범죄 조직을 검거하는 데 기여한 실화를 담았다.

경찰 대신 조직원을 설득한 김 씨가 범죄 총책임자의 인적 사항, 은신처 정보, 피해자 명부, 사무실 주소 등의 자료를 직접 확보해 건넨 것.

김 씨가 제공한 단서를 통해 경찰은 닷새 만에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검거했으나, 경찰은 검거 소식을 김 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최대 1억 원의 신고보상금도 주지 않는 일이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대중의 공분을 사야 했다.

물론, 김 씨가 직접 중국 현지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시민덕희>는 'MSG'를 가미해 '덕희'와 친구들이 중국 칭다오에서 벌이는 수사 과정을 진중과 코미디 사이를 오가며 보여준다.

박영주 감독은 "취재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피해자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를 절대로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라면서 영화에 담긴 진심이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보이스피싱 피해자 수는 12,816명이며, 피해액은 1,451억 원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거대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은 일상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면서, 이런 공감대 형성이 영화 출연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제작사 페이지원필름의 정재연 대표는 "가장 먼저 모티프가 된 사건의 당사자를 만났고, 당시 그 분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만났다.

또한 경찰학자이자 범죄분석가 표창원 교수부터 사건이 알려지도록 도움을 준 기자,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의 관계자 등에게 관련 이야기를 듣고 자료들을 받을 수 있었다"라면서 철저한 사전 조사 과정을 소개했다.

영화에서는 표창원 교수가 직접 작품 속 뉴스 프로그램에 특별 출연하면서, 고도화한 보이스피싱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렇게 <시민덕희>는 실화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나오는 사실감과 후반부 허구에서 나오는 통쾌함을 동시에 가져온,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더는 피해자가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이 동시에 담긴 '한국형 소시민 히어로' 영화의 위치에 오른 작품이 됐다.

2024/01/11 CGV 용산아이파크몰

시민덕희
감독
박영주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이주승, 성혁, 정지호
평점
3.24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5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