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총리가 지난번 한국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 나온 기사를 보면 폴란드 측에서 요구한 것은 고작해야 소고기 수입 규제를 풀어 달라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 정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한 나라의 총리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날아왔을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는 부분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는 나라로, 대통령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실무 권한은 대통령보다 총리에게 집중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가 소고기 때문에 방한을 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이야기죠.
제가 파악한 바로는 이번에 폴란드 총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KF-21과 관련해서 우리 대통령과 단판을 짓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폴란드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어떤 제안이었길래 우리가 거부를 한 것인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폴란드는 왜 하필 지금 KF-21에 눈을 돌렸는가
폴란드는 과거에는 구소련제 전투기를 운용하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서방제 전투기로 전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 F-16과 F-35를 도입하고 있고 우리로부터도 FA-50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폴란드가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는 이렇다 할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부터 FA-50을 도입하면서 미국산 미사일인 사이드 와인더를 통합하는 것도 별다른 문제 없이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폴란드는 처음으로 아주 쓴맛을 보게 됩니다.
폴란드가 FA-50에 미국제 암람 미사일을 통합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바로 승인을 해 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무려 1년 반이나 사업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FA-50 PL형의 도입 일정도 그만큼 뒤로 밀리게 되었죠. 폴란드 입장에서는 이게 처음 겪어 보는 충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산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결국 미국에 종속된다는 것을 폴란드가 이제서야 체감을 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이런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결국 국산 무기를 개발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는데, 폴란드도 이제야 그 과정을 똑같이 밟고 있는 것이죠.
폴란드가 원한 것은 단순한 전투기 구매가 아니었다
여러분이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KF-21을 구매하려는 나라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처럼 단순하게 전투기 자체를 구매하기를 희망하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UAE처럼 현지 생산까지 포함한 풀 패키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KF-21의 기술 이전까지 요구하는 나라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폴란드는 바로 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나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현지 라이센스 생산 이야기는 UAE보다 폴란드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지금 폴란드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UAE가 원하는 것과 거의 똑같습니다.
우리 KF-21을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하고, 우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서 KF-21을 어느 정도는 본인들이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참고로 UAE는 현재 KF-21의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은 물론 소스 코드 이전까지 포함한 풀 패키지 사업을 무려 2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요구한 규모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폴란드 총리가 직접 방한한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우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미국에 더 이상 종속되기 싫고, 자신들이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고 자신들이 개발한 무장을 자유롭게 탑재할 수 있는 전투기를 원하고 있으며, 지금 그 조건에 맞는 전투기가 KF-21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KAI는 팔고 싶지만 팔 수 없는 이상한 상황
그럼 KF-21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KAI의 입장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KAI는 이런 대규모 기술 이전을 해서라도 KF-21을 수출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 KAI는 방산 분야 4대 기업 중에서 가장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출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이런 대규모 수출 건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죠.

여기서 제가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KAI가 민영화되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만일 KAI가 민영화된다면 KAI는 눈앞의 실적을 위해서 더 많은 기술을 해외에 팔아넘기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KAI는 기술을 넘겨서라도 폴란드나 UAE의 대규모 사업을 따내고 싶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KAI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KF-21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핵심 기술에 대한 권리가 KAI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이더나 임무 컴퓨터 등에 대한 핵심 권리는 그 장비를 만드는 한화시스템이나 LIG넥스원에도 일부 있지만, 주된 권리는 국방과학연구소에게 있고 지금 국방과학연구소가 그 기술의 해외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이번 폴란드의 요구도 우리 정부 차원에서 거부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기술 이전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기술 이전이라는 것은 무조건 기술을 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기술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기술을 주기는 주지만 어느 선까지 주느냐, 바로 그게 핵심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가 인도에게 라팔 전투기의 소스 코드 제공을 거부한 것처럼,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까지 이전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나라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같은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줄 수 있는 기술과 폴란드에 줄 수 있는 기술이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KF-21 시제기를 주기로 했다고 해서 마치 우리가 다른 나라의 KF-21 기술을 너무 쉽게 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총리가 직접 방한해서 우리 대통령을 상대로 담판까지 지으려 했음에도, 결국 폴란드 총리조차도 KF-21의 핵심 기술을 얻어 내는 데는 실패를 했습니다.
우리가 결코 핵심 기술을 쉽게 넘기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에 확실히 증명된 것이죠. 폴란드 총리가 우리 대통령에게 제시한 조건은 아마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폴란드 현지에서 KF-21을 생산하고 폴란드와 함께 유럽 시장을 개척하자는 제안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그렇다고 핵심 기술까지 넘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큰 금액, 그래도 포기한 이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KF-21을 개발하는 데 투입된 비용은 약 8조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KF-21의 기술을 달라고 요구하는 나라들은 우리가 KF-21 개발에 쏟아부은 돈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제시하면서 기술 이전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이 한국으로부터 구매하는 전체 무기의 양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안 돼"라고 한마디 던지고 끝낼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만의 기준을 이미 세워 놓았고 그 기준을 넘어가는 기술 제공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마 UAE와 폴란드뿐만 아니라 사우디에서도 틀림없이 비슷한 요구를 해 오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사우디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마 사우디도 UAE와 비슷한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죠.
만일 이 세 나라의 요구를 전부 수용한다면 KF-21의 수주량은 거의 50조에서 100조원 사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는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도 폴란드는 KF-21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우리가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한 것이 KF-21 수출에 있어서 적지 않은 악재로 작용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이 나라들이 결국 KF-21을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럼에도 폴란드가 결국 KF-21을 구매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핵심 기술을 넘기는 것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미국이나 유럽제 무기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기술을 폴란드에 제공할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폴란드 입장에서는 KF-21이 미국 전투기나 유럽 전투기보다 훨씬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전투기가 될 것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폴란드와 UAE가 끝내 KF-21을 도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죠.

지금 우리 KF-21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한 적이 없던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개발한 전투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KF-21의 기술을 다른 나라에 어느 수준까지 이전할지 명확한 선례가 없는 전투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UAE와 폴란드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서라도 그 기술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폴란드 총리의 방한과 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통해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KF-21 기술을 어느 선까지 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이미 명확하게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큰 돈을 제시하더라도 우리의 핵심 기술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 이 원칙을 이번에 UAE는 물론 폴란드에까지 분명히 전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폴란드와 UAE, 그리고 사우디까지 이 나라들이 한국으로부터 구매하거나 앞으로 구매할 무기의 양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은 정말 나라를 살리는 결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