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때문에 초3 때 신문 배달, 중국집 서빙으로 용돈 벌었던 유명가수

전효성의 유년 시절은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자란 효성은, 어린 나이부터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신문배달은 그런 마음의 표현이었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하루도 빠짐없이 3년을 달렸다.

추운 겨울, 울음을 참으며 배달을 했던 기억, 모르는 아주머니가 제안한 동거 제안까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효성은 묵묵히 이겨냈다.

그 시절, 효성이 모은 돈은 오롯이 부모님께 드렸다.

자신은 한 달에 만 원 남짓의 용돈으로 살았지만,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 함께하는 신문배달을 통해 삶의 규칙성과 책임감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효성은 학교에서도 춤과 노래로 주목받는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댄스동아리를 이끌며 무대를 준비했고, 주변 친구들 사이에선 이미 스타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시선은 현실적이었다.

연예계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반대했지만, 효성은 아르바이트로 오디션 비용을 충당하며 스스로 길을 열었다.

연습생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오디션에서 낙방하며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한 기획사에서 제안받은 서바이벌 오디션 ‘배틀신화’에 참가하게 된다.

이 무대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본격적인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첫 데뷔는 가까운 듯 멀었다. 3인조 걸그룹으로 준비 중이던 팀은 기획 단계에서 무산됐고, 이후 '오소녀'라는 프로젝트 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유빈, 지나, 양지원, 유이와 함께한 멤버 구성만으로도 기대를 모았지만, 방송 중이던 리얼리티가 끝나기도 전에 소속사의 부도로 해체됐다.

이후 생계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중국집까지 손이 닿는 곳마다 일을 했고, 그러는 와중에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효성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가 끝까지 병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끝, 전효성은 TS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걸그룹 '시크릿'의 리더로 데뷔하게 된다.

2009년 첫 무대를 가진 시크릿은 초반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듬해 발표한 'MAGIC'으로 단숨에 인기 그룹 반열에 오른다.

특유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능에서도 활약하며 남성 팬층을 중심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었고, 이후 솔로 음반과 연기 활동까지 이어가며 다방면에서 성과를 거뒀다.

한선화의 탈퇴 이후 사실상 해체됐지만, 전효성은 홀로서기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음악, 연기, 방송을 넘나들며 여전히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다.

신문배달 소녀였던 한 아이가 꿋꿋하게 성장해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전효성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꿈을 향한 용기 그 자체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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