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로컬의 삶을 구경할 수 있는 곳, 타이항

이웃이 있는 마을, 타이항

“린파쿵(Lin Fa Kung)은 1860년대에 세워진 절로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당이다.” 가이드북에서 이 소개글을 보고 ‘딱히 갈 필요가 없는 곳’으로 단정 지었다. 새로운 것, 트렌디한 것, 세련된 것이 넘치는 홍콩에서 굳이 절 같은 데에 시간을 쓸 필요가 있나? 그게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존 캘빈 왕(John Calvin Wang)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그는 타이항의 기발하고 독특한 갤러리이자 상점, 사교 살롱인 문 오브 사일런스(Moon of Silence)의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이 동네의 새 주민이기도 하다.

“타이항에선 매년 중추절마다 타이항 화룡춤(Tai Hang Fire Dragon Dance) 축제가 열려요.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의식이자 퍼포먼스죠. 약 70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용을 300여 명의 타이항 사람들이 들고 3일 동안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여정의 출발점이 바로 린파쿵이고요. 저도 지난 축제 때 용의 꼬리를 들었는데요. 동네 주민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춤을 추면서 공동체 의식이라는 좋은 경험을 했어요. 지금 홍콩 도심에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드물거든요.”

이웃 간의 관계가 끈끈하고 정이 넘치는 동네. 타이항의 젊은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공간 중 하나인 갤러리 더 숍하우스(The Shophouse)의 프로젝트 매니저 애비 챈(Abby Chan)도 이 지역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존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이웃들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아주 잘 보여요. 문을 열면 바로 그라운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기가 쉽죠. 이 공간을 운영하는 아트 에이전시 언베일 언리미티드에서 타이항의 100여 년 된 건축물을 선택한 이유예요.”

초고층 마천루 대신 낡고 낮은 건물들이 더 많은 타이항은 홍콩 사람들 사이에서 자동차 수리점, 창고 등이 모여 있는 동네로 통했다. 1980년대엔 100여 곳 이상의 카센터가 이 동네에 자리했고, 차로 먹고사는 사람들, 택시 기사나 화물차 운전사 등을 위해 24시간 문 여는 식당과 찻집 등이 서민의 애로를 달래줬다. 그 시절을 한자리에서 다 지켜본 다이파이동(홍콩식 포장마차) ‘빙키차동(Bing Kee Cha Dong)’은 홍콩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포로, 1950년대에 문을 열어 지금도 대기 줄을 세울 만큼 인기가 높은 곳.

그 옆, 뒷골목으로 부단히 드나드는 빨간 택시, 드문드문 눈에 띄는 카센터의 터프한 수리공들과 극적인 시각적 대비를 이루는 요즘 가게도 타이항을 흥미롭게 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줄자 수집가’로 소개하는 카나모노가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물건들로 채운 철물점 카나모노 하드웨어 스토어(Kanamono Hardware Store), 수준 높은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오마 커피 로스터(Oma Coffee Roaster)와 카페 파인프린트, 독일과 일본의 플리마켓에서 공수한 빈티지 제품을 파는 더 미니멀(The Minimal) 등이 타이항의 새 주민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옛날과 지금이 초 단위로 바뀌는 풍경을 구경하다가 릴리 스트리트(Lily Street)에 들어섰다. 오래된 타이항에 변화를 몰고 온 새 랜드마크, 호텔 리틀 타이항과 터줏대감 린파쿵이 나란히 서 있는 거리. 잘 정돈된 나무와 붉은 벽돌 건물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드는 리틀 타이항으로 향하는 대신 이 동네 사람들의 영적인 쉼터이자 사랑방인 린파쿵으로 몸을 돌렸다. 무수한 소원을 품은 향이 뿜어대는 연기로 자욱한 절 안에서 휘황찬란한 불상과 불화를 등지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기도하는 얼굴과 단정한 손에 시선을 둔다. 홍콩에서 이렇게 고요한 순간과 마주한 적이 있었나? 번잡하고 분주해 ‘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든 적 없는 홍콩에서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생겼다.


‘타이항’다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타이항 화룡춤 보기

홍콩의 국가무형문화유산인 타이항 화룡춤은 19세기 이 동네에 살던 주민들이 전염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의식이자 퍼포먼스. 짚으로 만든 용에 7만 2천여 개의 향을 꽂아 불타오르는 형상을 연출한 뒤 린파쿵에서 시작해 타이항 일대를 누비는 공연이다. 홍콩 전역에서 보러 올 만큼 인기 높은 축제로, 올해는 9월 16~18일에 열린다.

노스탤지어 탐험

타이항의 명소가 된 빙키차동은 홍콩식 토스트, 밀크티, 포크찹 누들 등으로 ‘간식’을 즐기기 좋은 곳.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면 컬러풀한 네온사인 간판이 눈에 띄는 친조르판통(Chin Jor Fan Tong)으로 향하자. 원하는 스타일의 면 위에 닭고기, 소고기 힘줄, 오징어볼 등으로 맛을 낸 국물을 붓고 허브와 고수를 듬뿍 얹어 먹는 국수가 유명하다.

로컬 맥주 즐기기

타이항 바로 옆 코즈웨이 베이는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만큼 가까운 동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로컬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영 마스터 브루어리(Young Master Brewery)에서 운영하는 펍인 세컨드 드래프트(Second Draft)에선 영 마스터 팩토리에서 공수한 신선한 수제 맥주를 생으로 마실 수 있다. 바삭하게 튀긴 감자에 말린 고추, 커민과 일본식 갓절임 타카나로 맛을 낸 ‘타이항 프라이즈’를 곁들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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