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트링 건 부상기(장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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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갤에 들렀네요. 그간 우측 하지에 발생한 햄스트링건병증으로 달리기를 한동안 떠나 있었습니다ㅠ

사실 아직 완쾌는 아닙니다. 올해 시즌은 완전히 아웃이고요ㅠ 

  

아래는 제가 이번 부상을 기억하기 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혹시라도 유사한 사례를 겪고 있는 러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런갤에도 올립니다.

모쪼록 모두 부상없는 즐거운 러닝을 이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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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0월 9일 한글날 새벽 5시 15분. 기온 15도. 반팔 티와 쇼츠를 입고 정말 오랜만에 정릉천 입구에 섰다. 느릿느릿 지나가는 자전거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몇 개월 전과 다를 바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상쾌한 날씨일 것이다. 열대야가 이어진 새벽에 달렸었는데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날씨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간 많이 바뀌었다. 주당 100km 이상을 달렸던 내가 오늘은 6km를 목표로 달린다. 달리는 도중에 통증이 올라오지를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상쾌한 기분과 약간 긴장되는 복합적인 마음을 안고  가민의 start 버튼을 누른다. 정릉천 다리 아래서 달려나간다. 마치 예전처럼.

1. 장마가 지속되는 7월 하순의 어느 여름날. 그날은 1km 인터벌 반복 훈련이 예정된 날이었다. 트랙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폭우가 쏟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인터벌 훈련이고 최근 더운 날씨로 더욱 고전하던 터라 비가 굉장히 반가웠다. 비를 맞고 달리면 조금이라도 몸이 식어 덜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비가 다 그치기 전에 인터벌에 얼른 돌입하고 싶었다. 평소 5~6km를 달리는 워밍업을 1.4km만에 짧게 끝냈다. 그리고 바로 인터벌 블록을 시작했다.

원래 과기대 트랙은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럽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폼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들었다. 5번째 인터벌 블록을 끝내자마자 오른쪽 뒤 허벅지에서 '시큰'하게 당기는 느낌이 났다. 회복기에 오른쪽 다리를 계속 들어보았다. 일시적인 느낌이 아니다. 러닝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 훈련을 종료하고 스탠드에서 올라가 준비해온 아침을 먹었다. 별로 심각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약간 무리가 되어 나타나는 감각이라고만 생각했다. 

2. 다음날 일어나 보니 같은 증상이 있었다.  하루 더 쉬기로 했다.  그다음 날은 10km를 달렸다. 달릴 때는 몰랐는데 마치고 나니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틀을 더 쉬었다. 휴식 후 다시 10km를 달렸다. 음...  무언가 심상치 않다. 인정하기 싫지만 증상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증상이 아님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릴 때 뒤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으로 시작한 감각은 엉덩이 안쪽에서 느껴지는 둔한 통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발로 점프를 할 때 오른쪽 뒤 허벅지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세 번째 부상이 발발했음을.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다. 오른쪽 뒤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많은 염증이 관찰된다고 했다. 의사는 정확한 병명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운동을 줄이고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체외충격파와 도수치료를 하라고 했다. 

3. 피트니스가 좋았던 상태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목표했던 JTBC마라톤과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빨리 회복하고 훈련에 복귀하면 가을의 제마는 정상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던 것이다. 기존 부상이었던 PFPS(슬개대퇴통증증후군)의 경우 4주 정도만 휴식하면 나았던 경험이 있기에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권한 충격파와 도수치료에 열심히 임했다. 한 번의 물리치료가 거의 20만원 가까이 비용이 나왔지만(물론 실비가 있어 어느 정도 보전은 됐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부상은 절대적인 통증의 강도가 예전 PFPS 때와 비교하면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예후를 긍정적으로 전망하였다. 인터넷으로 비슷한 증상을 뒤지며 회복기간(recovery period)을  계속 검색했다. 현재까지의 증상과 가장 일치하는 부상명은 hamstring strain인 듯했다. 회복기간을 few weeks(4~6weeks)로 표기한 페이지들이 많았다. 그것만 믿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런데 구글 검색을 하면 hamstring strain 아래 hamstring tendinopathy라는 병명이 같이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Full recovery에 3~6 months가 소요된다는 끔찍한 정보와 함께 말이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해당 부상을 더 깊게 알아보지도 않았다. 내 부상은 결코 hamstring tendinopathy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의 마라톤, 그리고 몇 년간 새벽마다 수행한 훈련과 그 결과로 쌓아 올린 피트니스를 생각했을 때 내가 앓고 있는 부상은 결코 hamstring tendinopathy여서는 아니 되었다. 

4. 8월 중순의 한여름. 6번의 체외충격파 치료를 마친 이튿날 10km를 다시 달렸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새로운 병원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오른쪽 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급성에서 만성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나 결코 러닝을 지속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 옮긴 병원은 '스포츠재활' 전문 병원이었다. 

병원의 첫인상은 좋았다. 깔끔한 로비에 학생 선수들로 가득 차 있는 광경을 보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병원에 찾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첫 진료를 보니 병력을 청취한 후 대뜸 MRI를 찍자고 했다. 그 정도의 영상진료까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기에 첫날에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방문하여 MRI를 찍고 당일에 결과를 들었다. 영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그저 달리기를 재개해도 된다고 했다. 굉장히 기쁜 소식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들었다. 분명 감각은 그대로인데 왜 MRI 영상에서는 별문제가 없을까? 그래도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부터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재개한 러닝이니 5km를 달리고, 그다음 날에는 조금 늘려 6km 정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더욱 늘려 9km 정도... 그리고 러닝을 멈추었다. 통증이 다시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의사는 그저 한 달 동안 러닝을 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마다 통증 역치가 다르기에 내가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진짜 문제인 것은 내 다리가 아니라 내 마음인 것처럼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는 선수가 아닌데 왜 계속 달리려냐고. 제발 그냥 좀 '즐겁게' 러닝을 하라고 했다. 

바쁜 의사를 붙잡고 토론을 할 것도 아니고 해서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진료실을 나가기 전 60만원짜리 MRI를 찍었음에도 끝내 이야기해주지 않던 부상명을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선생님. proximal hamstring tendinopathy가 맞을까요?"

의사께서 답했다.

"네"

5.  상황이 점점 명료해지고 있었다. 나는 좌골과 햄스트링 사이에 있는 힘줄(건)에 손상을 입었던 것이 분명했다. 손상된 건은 급성 염증기가 끝나더라도 완전한 회복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당분간 훈련 복귀는 불가능했다. 가을 마라톤도 보내주어야 했다.

일단 일상의 기분을 전환할 유산소 운동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지체 없이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리고 의료적인 관점에서 내가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근위부햄스트링건병증"를 키워드 삼아 구글링을 계속했다. 검색을 찾아낸 다양한 문헌은 하나의 치료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상된 부위에 대한 '적정한 강도'의 근력운동이었다. 여기서 '적정한 강도'란 '운동 시 통증 수준이 10기준 1~3사이에 있어야 하며 24시간이 지난 후 통증이 더 심해지지 않을 수준'을 의미했다. 고관절 신전(hip flexion)이 거의 없는 햄스트링브릿지 같은 등척성(isometric) 운동을 시작으로  편심성수축(eccentric contraction) 운동을 추가하며 이틀에 한번 꼴로 재활운동을 시작하였다. 운동이 진행되며 노르딕햄스트링컬, 'roman chair 백 익스텐션', '루마니안데드리프트'를 추가할 수 있었다.

6. 만성화된 햄스트링건병증은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매일매일이 사실 거의 똑같다. 일상생활에서 특별하게 많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재활운동'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진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재활운동 다음 날은 지연성근육통(DOMS)로 온 다리가 뻐근하기에 부상의 감각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러다 근육통이 잦아들고 나면 확연히 부상 부위의 감각이 개선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주 재활훈련을 지속하다 보니 이제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아침, 부상이 발생한 과기대 트랙을 찾아 달리기를 해 보았다. 약 10km를 달렸는데 오른쪽 뒤 허벅지/엉덩이의 이상감각은 약 2.5km 인근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증상이 악화되기에 다시 달리기를 일 주간 멈추고 재활운동으로 한주를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주 토요일 러닝에는 약 7km에서 이상 감각이 올라왔다. 확실히 진전이 있다! 

물론, 당장 마라톤 훈련을 재개할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프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무적이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아프지 않을 수준에서 아주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러닝을 재개하리라 마음먹었다.

7. 심각한 부상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꾼다. 스스로를 일종의 '아마추어 장거리 러닝 선수'로 인식하고 살아왔지만, 이번 부상은 그러한 삶이 사실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40 중반을 향하는 나이도 위험요소였지만, 무엇보다 균형적 신체발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장거리 러닝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주당 100km, 월당 400~500km의 하드 트레이닝을 지속하면서,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러닝의 열화 대체품으로 생각했던 수영을 재발견한 것은 이번 부상을 겪으며 받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상체를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수영은 러닝과 사용하는 근육 부위가 겹치지 않으면서 유산소운동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간 러닝으로 쌓아온 체력이 장거리 수영을 함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한 것도 참 즐거웠다. 

그리고 재활운동으로 시작한 근력훈련도 생각보다 즐거웠다. 언젠가 이 부상이 옅어지는 날이 올지라도, 후면/전면 하지에 관한 근력훈련을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바뀐 것은 '마라톤'에 대한 내 생각이다. 서브3를 달성한 이후에도 러닝의 지상 목표는 42.195km 마라톤에서의 기록 단축이었다. 물론 나는 그 '하드'한 마라톤 훈련과정을 정말 즐겼다. 하나의 선명한 목표를 위하여 운동뿐만이 아니라 먹는 것을 조절하고, 가장 좋은 수면을 위해 노력하는 등 생활을 질서 있게 통제하고 조율하는 것까지도 즐겼다. 그런데, 내 몸은 더 이상 그러한 생활양식을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쉽게 마라톤 훈련에 복귀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그래서 금년 대회 참가가 불가하다고 생각했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창 좋은 피트니스에서 부상을 당해 참가할 수 없었던 금년 동마 이후 또다시 당한 부상이기에 그 좌절의 정도가 더욱 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반복되는 부상은 결국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벽의 끝에 내가 이미 도달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라톤 기록갱신'이라는 요소는 러닝이라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향신료이지 음식 그 자체가 아님을 깨우치게 되었다.

물론 부상 중이지만, 그리고 운동량이 줄어 체중이 3kg 불어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요즘이 예전보다 더 건강하다. 수영을 열심히 하다 보니 나에게도 등근육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감각을 느껴진다. 노르딕햄스트링컬로 인하여 햄스트링 근육에 힘이 올라오는 것도 느껴진다. 러닝만 원활히 재개하면 균형적인 신체활동으로 더욱 건강해질 것 같다.

0. 그럼에도 러닝은 특별하다. 경쾌하게 정릉천을 내려가며 들리는 발소리와 음악이 듣기 좋다. 심박이 빠르게 오르며 느껴지는 그 감각은 러닝만의 것이다. 오늘따라 더욱 예전의 달리기와 비슷한 감각이 든다. 3km 알람을 듣고 반환하여 올라오니 약 5.5km에서부터 아주아주 경미한 부상 감각이 느껴진다. 그래도 좋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니까.  

달리다 보니 내가 다시 마라톤 훈련에 복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올라온다. 나는 내년 동아마라톤을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비록 마라톤에서의 기록 경신이 궁극의 목표는 아니더라도 단 한 번만 다시 한번 더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부상 때문에 어찌할 수 없어 포기할 수는 있지만 내가 자의로 일종의 '은퇴'를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은 햄스트링 부상 부위의 감각보다도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사계절 썰매장에서 다쳤던 꼬리뼈 인근의 통증이 더 신경 쓰인다. 이 통증이 잠시 스쳐갈 삽화일지 아니면 오랫동안 내게 붙어 나를 변화시킬 근원적인 부상이 될지는 지금 단계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저 슬며시 웃음이 난다. 지금 당장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년의 마라톤 도전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을까? 그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 여건이 허락하면 다시 도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또 좋다. 그냥 지금 달릴 수 있다는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 어쩌면 최선이다. 

30분이 지나고 시계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상쾌한 또 한 번의 달리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