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LG엔솔 美 비자 쇼크]⑤ 동맹 겨냥한 '채찍과 당근'…韓 통상 협상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제공=백악관

미국 당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대거 연행한 시점은 절묘하다. 불과 2주 전 한국이 대규모 투자 패키지를 약속한 직후이자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고율 관세 발표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인 단속·구금 사태라는 압박으로 협상력을 끌어올린 뒤 관세 예외나 제도 보완을 내미는 전형적인 '채찍과 당근'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투자와 단속, 보름 시차에 숨은 전략적 계산

사태는 한국인 구금자의 자진 출국 방식이 허용되면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 정부로서는 수백 명의 자국민을 강제 추방이 아닌 귀국으로 이끈 성과를 거뒀지만 미국의 계산은 다르다. 이번 조치를 '법적 원칙을 지키면서도 동맹에 대한 배려를 보여준 사례'로 포장하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봐줬다'는 프레임을 선점하게 됐다.

이 대목에서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선의를 베풀었다는 전제가 협상 테이블에 반영되면 향후 관세와 같은 전략적 의제에서 한국의 입지는 제약될 수 있다. 자국민 송환이라는 단기적 성과가 장기적인 불리함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건의 시점도 공교롭다. 불과 2주 전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협상을 타결하며 1500억달러(약 2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다. 동맹국이 거액을 투입해 미국 산업에 기여하겠다고 선언한 직후 대대적인 단속이 집행됐고 수백 명의 한국인이 연행됐다. 투자와 단속이 보름 간격으로 이어진 셈이다.

우리 정부가 항의하자 트럼프는 곧바로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놨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투자는 환영하지만 룰은 우리가 정한다'는 미국 우선주의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사진= 대통령실

이처럼 조지아에서의 대규모 단속과 한국의 대미 투자 발표 시점이 맞물린 건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향후 통상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달 중 다른 압박 수단인 반도체 관세 발표를 예고하며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협상 테이블에 묶어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트럼프는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을 약속하지 않는 기업이 만든 반도체에는 최대 100%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동시에 "미국 내 생산을 진행하거나 확약한 기업에는 예외를 두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한 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부담을 안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한 완화 여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370억달러(약 51조원)를 투입해 텍사스주 테일러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38억7000만달러(약 5조3000억원)를 투자해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 중이다. 이이같은 대규모 투자는 관세 충격을 흡수하는 방패로 작용할 뿐 아니라 미국이 예외를 부여할 명분이 된다.

조지아 단속과 반도체 관세 발표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미국식 통상 전략 안에서는 긴밀히 맞물려 있다. 압박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뒤 동맹 기업의 투자를 근거로 외교 통상 분야에서 '당근'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공급망 재편 속 美 의중은?

미국이 이처럼 당근을 병행하는 배경에는 첨단 공급망 재편이라는 전략적 이해가 놓여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등 핵심 산업을 중국으로부터 분리(디커플링)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지만 이를 미국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 공백을 메우는 축이 바로 한미일 공조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일본은 소재와 장비, 미국은 시장과 자본을 각각 담당한다. 이 구도가 흔들리면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것은 곧 미국 스스로의 전략 자산을 훼손하는 셈이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북미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 CATL을 대체하는 핵심 축이다. 반도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의 세계 1·2위 기업이다. 미국이 불법 고용 단속으로 원칙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관세 혜택이나 비자 제도 개선 같은 보완책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가 예고한 고율 관세의 예외 범위는 단순히 한국 기업을 피해가도록 설계되는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한 만큼  업계 일각에서는 관세 예외를 넘어 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병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북미 공장 건설과 초기 운영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애로는 인력 문제였다. 현지 엔지니어 풀은 얕고 숙련도 격차도 커 단기간에 수천 명 단위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당근은 관세 완화에 더해 비자 쿼터 확대, 기술 인력 전용 비자 신설, 특정 프로젝트 한정 파견 제도 등 제도적 보완책으로 확장될 수 있다. 불법 고용을 단속하면서도 합법적 채널을 열어 동맹국의 숙련 인력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조지아 구금 사태와 반도체 관세 발표는 미국이 동맹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협상 자산으로 관리하는 과정의 일부로 읽힌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은 단기적 성과에 안도하기보다 다가올 관세 협상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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