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 1. 도파민 중독은 없다
애나 렘키의 책 ‘도파민네이션’을 8회에 걸쳐 찬찬히 살펴봅니다.
내가 제이콥의 자위 기계 이야기를 처음 듣고 구역질이 났던 것처럼, 당신도 그의 행동에 구역질이 날 수 있다. 그리고 제이콥의 고백을 당신과 당신의 삶과는 관련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상식을 벗어난 일종의 극단적 도착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당신과 나, 즉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인식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저마다 자신만의 자위 기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 말이다.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제1장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 영문 2021, 한글 2022.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 (영어 2021, 한글 2022, 흐름출판)은 따뜻하고, 흥미로우며 논쟁적이다. 이 책은 마치 이웃집 아줌마가 자신이 직접 겪은 어려움과 친구들이 겪은 다양한 삶의 고비를 들려주며 함께 힘 내보자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것 같다. 중독자들 사례는 놀라운 구경거리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다. 중독자 치료 방법론에 관한 가설들을 이야기할 때는 논쟁적으로 변한다.
요즘 ‘도파민’이란 용어가 친숙하다. 그건 마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안착해다. 심지어 트랜드에 관한 책을 쓰는 어떤 교수는 ‘도파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유행을 ‘창조’하려는 욕망이 담긴 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신조어야말로 우리가 ‘도파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효석 박사에게 이 책, [도파민네이션]에 담긴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맥락과 혹 놓치기 쉬운 의미에 관해 물었다.
1. 도파민이란 무엇인가? (도파민 중독은 없다)
- 도파민은 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 도파민은 보상 자체의 쾌락보다는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와 더 관련이 있다.
- 도파민은 특정 행동과 약물의 중독 가능성 측정 지표로 쓰인다.
따라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표현은, 너무 널리 쓰여서 바로잡기는 힘들겠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중독 대상은 어떤 물질이나 행위인 것이고, 도파민은 그런 중독 물질이나 중독 행위를 할 때 분비되는 생물학적 물질이나 기작이지 '중독 대상 물질/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약 중독으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지, 도파민 중독에 빠지기 위해 마약을 투여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반 세기 신경과학의 발전은 근본적인 보상 과정(reward process)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고통과 쾌락을 관장하는 메커니즘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과도한 쾌락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이유와 과정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됐다.
(…중략…)
도파민(dopamine)은 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로 1957년 처음 발견됐다. 두 명의 과학자가 따로 발견했는데, 그 중 한 명인 칼손은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 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지만(동기 부여가 없으므로),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임식을 씹어서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동기 부여와 쾌락 사이의 차이를 두고 논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파민은 특정 행동이나 약물의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 약물이 말 그대로 도파민을 함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 애나 렘키, 제3장 뇌는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도파민네이션] 영어 2021, 한글 2022.
2편,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중독자의 지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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