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해묵은 반일주의, 무책임한 선동은 역사의 퇴행일 뿐이다
日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와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법
소년은 농구를 좋아했다. 형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다. 지역을 넘어 전국 단위 유망주로 주목받는 형은 동생의 우상이자 본보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형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동생의 다짐을 받았다. ‘내가 우리 집안의 주장이 될게. 네가 부주장이 되어야 해.’
채 중학생도 되지 않은 나이에 동생은 집안의 주장 자리를 넘겨받았다. 친구들과 배 타고 낚시를 갔던 형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작은아들과 딸만 남은 집안을 보며 엄마는 이사를 단행한다.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도쿄 옆 수도권인 가나가와현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그곳에서 소년은 쇼호쿠(湘北), 우리에게는 ‘북산’으로 더 친숙한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국 대회 우승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내용이다.
미야기 쇼타, 송태섭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난 세월 동안 생일마다 살아남은 게 형이 아니라 저라는 게 어머니에게 미안했었습니다.” 태섭이 엄마에게 쓰다가 지워버린 편지 내용이다. 세 살 터울 형제는 생일이 같다. 준섭이 살아있을 때는 즐거웠지만, 죽은 후로는 매년 생일이 고통스럽다. 그래도 태섭은 마음을 다잡는다. 전국 최강 팀 산왕고등학교를 이기는 꿈, 형이 못다 한 꿈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은 때로 하루아침에 변한다. 태섭도 그렇다. 죽은 형을 그리워하는 슬픔이 건전한 승부욕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 한 감정이 또 다른 감정으로, 부정적인 내면의 요소가 긍정적인 무언가로 변화하는 심리적 움직임을 ‘승화’(sublimation)라 부른다. 고체가 액체 단계를 거치지 않고 기체로 바뀌는 현상을 일컫는 물리학과 화학의 용어를 인간 마음에 빗댄 표현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는 말을 너무도 친숙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엄연히 원작자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그가 던진 질문. “어떻게 이성적인 것이 이성적이지 않은 것에서, 감각이 있는 것이 죽은 것에서, 논리가 비논리에서, 무관심한 직관이 열망에 찬 의지에서, 이타적인 삶이 이기주의에서, 진리가 오류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일까?”
19세기까지도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은 모두 신의 은총이자 선물이어야 마땅했다. 반항아 니체는 다르게 보았다. 이는 모두 “승화된 행위에 불과”하며, “가장 훌륭한 색채가 천박하고 하찮은 재료에서 얻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사유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는 니체의 통찰을 자기 이론과 접목했다.
인간은 모두 성적 충동, 리비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날것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서 추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초적 욕망을 세련되게, 문명적인 요소를 통해 표출하고 해소해야 한다. 가령 여자아이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소년이 몰래 다가가 치마를 들추면 어른에게 혼쭐이 날 것이다. 하지만 기타를 연습해서 멋진 음악을 연주하면 여자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을 수 있다. 리비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전형적 사례다.
니체는 당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프로이트는 오래 살았고 명성을 누렸지만 모든 것을 성욕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들이 제시한 내면의 동역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쁜 생각과 부정적 감정, 힘들고 괴로운 기억을 원동력으로 삼아, 밝고 건강하고 미래 지향적인 무언가로 바꾸는 정신적 승화 개념을 이제 우리는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를 구원해 나가는 것이다.
부정을 승화시켜 긍정에 이르는 길. 이는 대한민국이 겪어온 역사적 궤적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은 식민 지배자였던 일본에 대한 원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분노, 다시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으로 승화된 결과물인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을 따라 ‘패스트 팔로어’의 길을 걷고자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처럼 성공한 나라는 없다. ‘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덤볐기 때문이다. 가발을 만들다가 전투기를 만드는 식민지 출신 국가는 우리뿐이다.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려고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구조 개편을 단행했고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일과 반공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태어나고 성장해온 정신의 역사 그 자체다.
20세기의 반공주의는 때로 애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21세기인 지금은 오히려 반일주의가 악용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국제 질서가 요동치며 새로운 냉전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해묵은 친일 프레임은 승화가 아닌 퇴화로 이어질 뿐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무책임한 반일 선동을 멈추고 아픈 과거의 긍정적 승화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슬램덩크>로 돌아가 보자. 송태섭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감정은 슬픔만이 아니다. 키가 작은 태섭은 열등감과 조바심을 느낀다. 이런 심리적 약점을 파악한 상대팀 산왕은 태섭을 집중 마크한다. ‘존 프레스’로 밀어붙여 좌절시키는 전략이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키가 작다는 단점이 아니라 대신 빠르다는 장점에 집중하면서, 동료들에게 패스하여 우리 팀이 더 점수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뚫어, 송태섭!” 팀 매니저 한나의 응원으로 힘을 얻은 태섭은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활약에 힘입어 북산은 승기를 되찾는다.
일각에서는 <슬램덩크>의 흥행을 조롱한다. ‘노 재팬’은 어쩌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 만화를 보고 자란 우리가 일본에 드라마와 음악을 수출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나쁜 선동을 일삼는 퇴행적 정치만 극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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