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정원’ 납·수은·비소 검출…초1에 생태 체험 왜 시키나

한겨레 2024. 10. 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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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끝나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피시방을 자주 찾았다.

이런 곳을 '거점형 늘봄학교 1호'로 삼아, 용산구 3개 학교인 한강초, 원효초, 서빙고초 1학년 학생들에게 방과 후 스포츠와 생태 체험 교육을 해도 괜찮은 걸까? 지난 8월27일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은 내년 2월까지 예정하고 있으며, 향후 용산 어린이정원 늘봄학교에 더 많은 학교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도록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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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지난 12일 서울 ‘용산 어린이정원’ 잔디광장에 빨간색 펜스로 표시한 곳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 속 잔디는 뒤집히거나 파헤쳐져 있다. 잔디광장 뒤로 대통령 집무실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용산 어린이정원 개장 공식 보도자료에서 15㎝ 흙으로 덮고, 꽃과 잔디를 식재해서 안전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필자 제공

박상욱 | 녹색연합 활동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끝나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피시방을 자주 찾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기도 했고,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에 빠져 있으면 금세 하루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된 부모님은 방과 후 동네 태권도장에 보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많은 또래 친구들이 학원이나 체육관에 다녔던 이유는 자기계발의 목적도 있었지만, 바쁜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줄 공간이 부재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가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교육부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해 아이들한테 다양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방과 후 스포츠와 예술, 생태적 체험을 제공하는 국가 돌봄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용산 어린이정원’을 ‘거점형 늘봄학교 1호’로 지정한 소식을 듣고 나서, 잠시 귀를 의심했다. 아이들을 위한다면 결코 데려가서는 안 될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무실 앞마당을 어린이들에게 내주겠다.” 취임 이후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대통령은 용산시대 1호 약속을 했다. 일부 반환받은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지난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4일, 용산 어린이정원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해당 반환 부지는 2021년 환경부와 미군이 위해성 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의 땅에서 공원 조성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 비소, 납, 수은, 구리, 다이옥신 등이 검출되었다. 시민에게 개방하려면 마땅히 철저한 오염 정화를 거쳐야 하지만, 정부가 졸속 개방 과정에서 실시한 것은 15㎝ 흙을 덮고, 꽃과 잔디를 심은 조치가 전부였다.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 임산부, 그리고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 조금의 노출만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곳을 ‘거점형 늘봄학교 1호’로 삼아, 용산구 3개 학교인 한강초, 원효초, 서빙고초 1학년 학생들에게 방과 후 스포츠와 생태 체험 교육을 해도 괜찮은 걸까? 지난 8월27일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은 내년 2월까지 예정하고 있으며, 향후 용산 어린이정원 늘봄학교에 더 많은 학교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도록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거리 곳곳을 스피커로 달궈놓던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얼마 전 끝났다. 이번에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에게 주어진 임기는 1년8개월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얽히고설킨 교육 난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시교육청이 오염된 정원을 거점형 늘봄학교로 아이들에게 개방하는 파행만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교육감이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생태 전환 교육’에 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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