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실려 나간 그가… 스모 역사 다시 썼다

김동현 기자 2024. 3.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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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만에 위업 이룬 다케루후지
얼마만의 훈풍인가 - 지난 24일 일본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에서 열린 스모 프로리그 오즈모 봄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올해 처음 마쿠노우치(1부 리그)에 진출한 신인 다케루후지(오른쪽)가 상대 선수를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 스모 프로 리그 1부에서 올해 처음 데뷔한 20대 신인이 우승하는 이변을 이뤄냈다. 주인공은 25세 신인 다케루후지(尊富士·본명 이시오카 미키야)다. 그는 24일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에서 열린 오즈모(大相撲) 마쿠노우치(幕内·1부 리그) 봄 대회 센슈라쿠(千秋樂·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고노야마(豪ノ山·26)를 꺾고 최종 성적 13승 2패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일본 스모 사상 두 번째로 신인이 1부 우승을 차지한 사례. 이전에는 1914년 여름 대회를 제패한 료고쿠 유지로(両國勇治郎)였다. 110년 만이다.

그의 우승은 단지 우연이나 요행으로 볼 수 없다. 전날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 인대를 크게 다쳐 휠체어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 대부분 다케루후지가 24일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며, 우승은 2위를 달리던 오노사토(大の里·24)의 승패에 달려 있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예상을 깨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오른쪽 발목에 압박 테이프를 칭칭 감은 채였다. NHK 등 중계방송은 연신 그 오른쪽 발목을 화면에 잡았다. 비장한 표정으로 도효(土俵·스모 링)에 오른 그는 고노야마를 시작 10초 만에 무서운 기세로 밀어붙여 링 바깥으로 넘어뜨렸다. 초전박살로 우승을 확정한 것이다.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면서는 “어제 발목 부상은 걷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고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잤다”면서 “하지만 출전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부상 탓에) 무리일 거라 생각했지만 강행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전날 밤, 오즈모에서 유일한 현역 요코즈나(横綱·한국 씨름 천하장사 격) 데루노후지(照ノ富士·33)에게 ‘너라면 할 수 있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도 했다. 다케루후지는 “’(선배의 응원에도) 도효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난 남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출전 결심을 굳혔다”고 덧붙였다. 둘은 같은 스모 구단(이세가하마베야) 소속이다.

이날 그의 고향 아오모리현 고쇼가와라시에선 주민 160여 명이 시청 청사에 모여 다케루후지의 분투를 지켜봤다. 친인척은 물론 출신 스모 도장 스승과 후배들도 각자 서로 다른 지역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다케루후지를 응원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다케루후지 어머니는 NHK 인터뷰에서 “어제 부상 탓에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우승까지 해 떨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고 했다. 다케루후지를 초교 4학년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지도했다는 에치고야 기요히코는 “진통제를 맞았을 텐데도 아주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주변 사람들 도움이 있어 가능한 우승이었음을 잊지 말고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길 바란다”고 했다.

도오(東奥)일보 등 아오모리현 지역 신문들은 이날 오후 다케루후지 우승 소식을 담은 호외(號外)를 발행하기도 했다. 사사키 다카마사 고쇼가와라시 시장은 “불요불굴 정신으로 감동을 줬다. 지역 주민들에게 이 이상 영예로움은 없다”며 “‘시민 영예상(賞)’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1999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난 다케루후지는 유치원 시절 아마추어 스모 선수 출신 할아버지 영향으로 스모를 시작했다. 초교 5학년 때 전국 초등학생 대항전에서 개인 3위에 올랐다. 이후 제63대 요코즈나 이름을 딴 스모 도장 ‘쓰가루 아사히후지(旭富士) 주니어 클럽’을 거쳐 스모 명문 돗토리조호쿠고교와 니혼대(일본대)에 진학했다. 스모 선수로는 2022년 가을 대회에서 프로 최하위 리그 격인 조노쿠치(序ノ口) 등급에 데뷔했고, 이후 조니단·산단메·주로 등으로 연달아 승급한 뒤 올해 마쿠노우치에 입성했다. 이번 대회 폐막과 함께 열린 시상식에서 다케루후지는 일본스모협회가 시상하는 3대 상 ‘수훈(殊勲)·감투(敢闘)·기능(技能)상’을 싹쓸이했다. 선수 한 명이 세 상을 동시에 받기도 24년 만이다. 최근 침체기에 허덕이던 일본 스모계는 새로운 스타 탄생이라는 호재를 맞아 중흥기를 재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들떴다.

/NHK

☞스모(相撲·sumo)

일본 전통 스포츠로 지름 4.55m 흙이 깔린 원형 경기장(도효·土俵)에서 두 선수가 맞붙어 상대를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거나 넘어뜨리면 이긴다. 고대(古代)부터 했다고 전해지며 에도시대(1603~1868) 전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졌다. 한국 씨름과 비슷해 ‘일본 씨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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