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슈 덮는 여의도 정치권의 '말말말'
[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어린 시절 부모님 차 뒷자석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서행하던 그때, 이륜차 잔해가 차로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이륜차 사고 현장을 목격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화들짝 놀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9시 뉴스에 나오겠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든 사고가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니란다.”
아홉 살 남짓했던 그때, 모든 사건·사고가 TV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론은 세상사를 취사선택해서 기록한다.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사건은 우리 일상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은 불기소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언론이 무엇을 기사화하지 않는지도 사실은 중요하게 감시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 기자 처지에서는 여의도 정치권의 '말말말'이 지역 이슈를 덮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지역 기자 동료들은 “정치 보도 과잉”이라고 자주 푸념한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여의도 정치권 이야기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서울 언론사들은 서울 정치에 몰두하고, 서울 중심의 여론을 만들어 간다. 서울 정치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로 도배되니 지방 사람들은 “이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보도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받아쓰기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충실하게 받아 적는다. 그에 대한 리액션 또한 기사가 된다. 공방, 신경전, 논란, 설전, 저격 등으로 포장되는 기사류다. 둘째는 자의적 해석이다. 기사의 도입부에 주로 등장하는 '포석', '형국', '모양새' 같은 단어는 기자의 해석이 들어간 기사라는 신호다. 기자가 자기 주관을 담아 해석한 기사를 마치 객관적 분석인 양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보도들은 여의도 정치판 시나리오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계파를 만들거나 갈등을 중계하고 해석하는 보도에 정치 뉴스 초심자가 끼어들 틈은 매우 좁을 터.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뉴스에 피로감을 느끼고, 정치로부터 더 멀어지게 된다. 특히 지역에서는 서울 중심의 정치 뉴스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서울 중심의 정치 보도는 지역 정치의 서울 종속화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지역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서울 정치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물론 서울 정치권에 얽매인 공천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선후를 따져볼 문제다. 서울 정치권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언론 보도가 기존 시스템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의 이면에는 일명 꾸미방 관행이 있다. 꾸미방은 여러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카카오톡 채팅방이다. 이 방에서는 각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 빠르게 공유된다.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과의 일정도 함께 공유하며 움직인다. 이 같은 집단 취재 체계는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중소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은 이 꾸미방에 속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이나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단순한 중계식 보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늘 따라다닌다. 더구나 정보가 독점적으로 유통되고, 그 속에서 형성되는 친밀감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약화하고 정치권과의 공생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감시하는 것 만큼 언론이 무엇을 보도하지 않는지 따져보는 일도 중요하다. 사회가 하루 동안 소화할 수 있는 담론은 한정돼 있다. 서울 정치인의 말말말은 비수도권 지역민에게 얼마나 중요할까? 혹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한 것처럼 다루는 것은 아닐까? 서울 정치인들의 말을 성실히 옮기고 해석함으로써 되레 지역민을 정치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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