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는 한 뿌리에서 난 가지라고들 합니다. 어려울 때 서로 기대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 피를 나눈 형제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한쪽은 은혜를 잊지 않는데 다른 쪽은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길 때, 형제 사이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메워지지 않는 깊은 골이 생깁니다.
올해 예순여덟이 된 윤기철 씨는 충남 서산에서 30년 넘게 수산물 도매상을 하다 은퇴한 사람이었습니다. 새벽 세 시면 어시장에 나가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생선 상자를 날랐습니다. 손등은 늘 갈라져 피가 났고, 겨울이면 손가락이 얼어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할 때가 많았습니다.
기철 씨에게는 다섯 살 위의 형 기남 씨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형은 동생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형이 중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나가 번 돈으로 기철 씨는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철 씨는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철 씨는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로 명절마다 형네 몫으로 굴비 한 두름과 꽃게 한 상자를 꼬박꼬박 챙겨 보냈습니다. 형네 아이들 대학 입학 때도, 형수 환갑 때도 봉투를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 정임 씨는 가끔 "우리 애들한테도 그렇게는 못 하면서" 하고 웃었지만, 기철 씨는 "형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말로 넘겼습니다.
8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형수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형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련님, 수술비랑 입원비가 1500만 원이나 나온대요. 저희가 지금 가게 사정이 어려워서... 정말 염치없지만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형님 회복하시면 꼭 갚을게요. 제가 약속할게요."
형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철 씨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내 정임 씨와 둘이 10년 넘게 모은 적금을 깨서 그날 밤 바로 15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차용증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 사이에 그런 종이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아내 정임 씨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여보, 그 돈 우리 노후 자금인데... 그래도 형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어쩌겠어요." 기철 씨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형님이 나 학교 보내 준 거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갚는 것도 아니오."
다행히 형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퇴원하던 날 형은 동생의 손을 붙잡고 "기철아, 네 덕에 살았다. 이 돈은 형이 꼭 갚으마"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철 씨는 "형님, 그런 말씀 마세요. 몸이나 잘 챙기세요" 하고 웃었습니다.
그날 서산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기철 씨는 형이 손에 쥐여 준 쪽지를 지갑 깊숙이 넣었습니다. 아내가 "그걸 뭐 하러 넣어 둬요" 하고 묻자 기철 씨는 "형님 마음이니까" 하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 쪽지가 8년 뒤 어떤 자리에서 꺼내지게 될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형에게서는 돈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기철 씨는 한 번도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거니 했습니다.
그사이 형네 소식은 친척들을 통해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형네 가게가 다시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 형네가 서울 외곽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이야기, 형수가 외제 차를 새로 뽑았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습니다.
그 무렵 기철 씨는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비가 부족해 고민하던 아내 정임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보, 형님네 요즘 형편 좋아졌다던데... 그 돈 이야기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기철 씨는 큰마음을 먹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님, 다른 게 아니라 제가 허리 수술을 하게 됐는데... 혹시 그때 그 돈, 조금이라도 형편 되시면..."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형이 아니라 형수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머, 도련님. 그 얘기를 아직도 하세요? 형제끼리 그거 좀 도와준 걸 가지고... 그리고 그때 그 돈은 도련님이 형님 은혜 갚는다고 그냥 주신 거 아니었어요? 형님이 도련님 학교 보내 준 거 생각하면 그 정도는..."
기철 씨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결국 허리 수술비는 은행 대출을 받아 해결했습니다. 아내 정임 씨는 그날 밤 부엌에서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기철 씨는 아내의 등을 바라보며 형님네와의 일은 가슴속에 묻어 두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피를 나눈 형제였습니다.
그 뒤로도 기철 씨는 명절이면 형네에 굴비를 보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전화를 자주 걸지는 않았습니다. 형도 동생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형제 사이에는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 1500만 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올가을, 형네 둘째 딸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이 날아왔습니다. 결혼식장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이었습니다. 아내는 가지 말자고 했지만, 기철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조카 결혼식인데 삼촌이 안 가면 쓰나. 형님 얼굴은 봐야지."
기철 씨는 축의금 봉투에 50만 원을 넣었습니다. 연금으로 빠듯하게 사는 형편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식 날 기철 씨는 아내와 함께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호텔 결혼식장은 화려했습니다. 천장에서는 샹들리에가 반짝였고, 하객들은 저마다 고급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형과 형수는 혼주석에서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형수는 반짝이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형은 새로 맞춘 듯한 양복 차림이었습니다.
기철 씨는 축의금 접수대에 봉투를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식이 끝나고 폐백실 앞에서 가족끼리 모였을 때였습니다. 형수가 축의금 장부와 봉투 뭉치를 정리하다가 기철 씨의 봉투를 꺼내 들더니, 친척들이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 도련님. 이거 50만 원이에요? 조카 결혼식인데 삼촌이 50이 뭐예요. 우리 시누이네도 100은 했는데... 우리가 형편 좋을 때는 친척들 다 챙겼는데, 정작 우리 일에는 다들 이러시네."
형수는 기철 씨의 봉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혀를 찼습니다. 주변에 서 있던 친척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철 씨에게 쏠렸습니다. 형은 옆에서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기철 씨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끝이 떨려 왔습니다. 8년 전, 생사를 오가던 형을 살리려고 노후 자금을 털어 보낸 1500만 원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돈으로 수술을 받고 살아난 형은, 동생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정임 씨가 기철 씨의 소매를 붙잡으며 "여보, 그냥 가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기철 씨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누런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8년 동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봉투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8년 전 형의 병원비를 송금한 은행 영수증과, 그때 형이 퇴원하며 동생의 손에 쥐여 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형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기철아, 네 덕에 살았다. 1500만 원은 형이 반드시 갚는다.'
기철 씨는 그 봉투를 형수의 축의금 장부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차분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형수님, 50만 원이 적다고 하셨지요. 그럼 이것까지 합쳐 주십시오. 8년 전 형님 심장 수술비로 보내 드린 1500만 원입니다. 오늘부로 그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조카 결혼 축의금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1550만 원이니, 이 자리에서 제일 큰 봉투가 되겠지요."
순간 폐백실 앞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친척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1500만 원? 기남이 수술비를 기철이가 냈다고?" "그걸 아직도 안 갚았대?" 형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형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기철 씨는 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형님. 저는 형님이 저를 학교 보내 준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돈 달라는 말도 8년 동안 한 번밖에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형님은 동생이 형님을 살린 일을 잊으셨더군요. 은혜는 서로 기억할 때 은혜지, 한쪽만 기억하면 빚이 됩니다."
"이 봉투로 우리 형제의 셈은 끝났습니다. 앞으로 저는 형님께 받을 것도, 드릴 것도 없습니다. 조카야, 결혼 축하한다. 행복하게 살아라." 기철 씨는 신부가 된 조카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린 뒤, 아내의 손을 잡고 돌아섰습니다.

호텔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형이 "기철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철 씨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다가, 뒤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만 남겼습니다. "형님, 몸 건강하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서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아내 정임 씨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여보, 잘했어요. 8년 동안 속 끓인 거, 오늘 다 내려놨으면 됐어요." 기철 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500만 원을 영영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은 가벼웠습니다.
서산 터미널에 내린 두 사람은 시장 골목의 오래된 칼국숫집에 들어갔습니다.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 두 그릇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정임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호텔 밥보다 이게 훨씬 맛있네요." 기철 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러게. 남의 눈치 안 보고 먹는 밥이 제일이지."
옛이야기 『흥부전』에서 놀부는 동생 흥부를 내쫓고 재물을 독차지했지만, 결국 그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형제 사이의 돈은 액수보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계속 베푸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처를 키우는 일일 뿐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참고 덮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것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선은 큰소리가 아니라, 차분하고 단정한 한마디로도 충분히 그을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서산 바닷가에는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습니다. 기철 씨는 아내와 나란히 방파제를 걸으며 오랜만에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형제의 인연은 그날로 멀어졌지만, 그 빈자리에는 평생 곁을 지켜 준 아내와의 단단한 정이 더 크게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출처 : '흥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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