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20년째 같은 가방만 들고 다니길래.." 안 주머니를 열어보고 말문이 막혔다

아내는 결혼할 때 사 온 검은색 가죽 가방을 모서리가 벗겨질 때까지 이십 년 넘게 들고 다녔다.

내가 새 가방 하나 사라고 돈을 쥐여주어도 아내는 매번 손사래를 치며 여전히 낡은 백을 고집했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식탁 위에 가방을 두고 마트에 간 사이 나는 가방 모서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퍼를 열고 가방 안을 둘러보던 나는 지퍼가 달린 안쪽 깊은 주머니에 시선이 머물렀다.

혹시 몰라 손을 넣어보니 두툼하게 접힌 비닐봉지 하나가 손끝에 잡혀 천천히 꺼내어 보았다.

봉지 속에는 아내가 지난 십수 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빛바랜 통장 세 개가 들어있었다.

첫 번째 통장을 펼치니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려다 실패했던 해의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매달 아껴 쓴 생활비에서 몇만 원씩 쪼개어 모은 돈은 정확히 내 사업 빚을 갚던 날 전액 출금되어 있었다.

가족이 벼랑 끝에 설 때마다 아내의 낡은 가방 안 주머니는 우리 집을 구한 비밀 창고였다.

마지막 통장에는 최근까지 적립된 내역과 함께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 잔액이 깔끔하게 찍혀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 사 입지 않던 아내가 왜 이 가방을 분신처럼 곁에 두었는지 깨달았다.

귀가한 아내가 가방을 집어 들자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이번 주말에는 백화점에 가서 가장 튼튼한 가방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내는 수줍게 웃으며 이 낡은 가방이 자신에게는 행운의 부적 같다며 가만히 안아 들었다.

그동안 아내 홀로 견뎌온 세월의 무게가 낡은 가방 가죽 위로 아득하고 따뜻하게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