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재준처럼, 빌런이 사랑한 명품 체어 #2
얼마전 파트2가 공개되며 다시금 화제를 몰고 온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잘 짜여진 복수극 전개와 개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악역 중 한 사람인 재준의 공간. 오로지 '갑'의 삶만 살아왔던 재준을 비롯, 부와 취향을 지닌 영화와 드라마 속 빌런들은 어떤 가구에서 자신만의 검은 세상을 완성했을까?
여피들은 차가운 모던 체어를 사랑한다?
여피의 시대인 1980년대부터는 도회적 빌런들이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가구를 배경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그린 <나인 하프 위크>(1986)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는 어딘가 시끌벅적하고 활력 넘쳤던 멤피스 디자인이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부상하던 시기 아닌가. 하지만 냉철한 뉴요커 여피들의 선택은 달랐다. 부유한 주식 중개인인 남자 주인공 존은 간결하고 차가운 모더니즘 가구로 집을 채웠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힐 하우스 체어’(1904),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1925) 등이 그것. 이런 극도로 미니멀한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본능적으로 스산함을 느낄 수밖에.
<나인 하프 위크>를 잇는 또 하나의 모던 퍼니처 전시장은 <아메리칸 사이코>(2000)다. 뉴욕 월 스트리트의 M&A 전문가인 패트릭 역시 여피족이다. 겉으로는 부랑자의 복지를 주장하고 테러와 인종차별에 반대하지만, 내면은 완전 반대인 사이코패스. 패트릭의 집에도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힐 하우스 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1929)가 놓여 있다. 철저하게 각을 잡아 정돈한 실내는 비닐 레인코트를 미리 착용한 채 사람을 죽이는 패트릭만큼이나 섬뜩하다.
한국 영화 속 빌런들의 1인 라운지 체어
한국 영화 속 빌런들도 명품 체어를 사랑한 모양이다. 특히 개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살린 덴마크 디자이너들의 의자 말이다. 소재의 실험과 기능 철학에 입각한 20세기 초 모더니즘 가구와 달리, 1950~60년대 미드 센츄리 모던 가구는 디자이너의 개성과 미학을 보다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영화 <베테랑>의 재벌 3세 조태오가 앉은 의자는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1958). 덴마크가 자랑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은 상상력의 제한이 없는 디자인과 기능적 완성도를 두루 갖춘 의자들을 발표했다. 영국 젠틀맨 클럽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던 윙백 체어를 재해석한 ‘에그 체어’는 몸을 감싸는 곡선 형태 셸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의 실험을 거친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츠 한센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알렛츠에서 만날 수 있는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
아르네 야콥센의 이름을 친숙하게 만든 ‘개미 의자’. ‘앤트 체어 3101 컬러드 애쉬 블랙 크롬베이스.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제품.
물방울 모양을 닮은 ‘드롭 체어’도 유명하다. ‘프리츠 한센 드롭 체어 3110 플라스틱-화이트’.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제품.
역시 덴마크 출신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특히 의자를 많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한스 웨그너의 대표작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영화 <독전>에서 재벌 2세이자 조직의 핵심 인물 브라이언(차승원)이 앉았던 ‘옥스 체어’다. 여왕을 위한 ‘프레데리시아 체어’가 우아하고 위엄 있다면, 왕을 위해 만든 듯한 ‘옥스 체어’는 소의 뿔처럼 부각시킨 헤드 받침이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알렛츠에서 만날 수 있는 한스 웨그너의 의자
덴마크 디자인의 거장 한스 웨그너와의 협업을 통해 1950년에 출시한 의자. ‘칼 한센 CH24 위시본 체어 오일드 오크 내츄럴 코드’. 칼 한센&선(Carl Hansen&Son) 제품.
EDITOR 정성진(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