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참패 불사한 日연금개혁 … 20년 지난 지금, 누구나 "옳았다"

김금이 기자(gold2@mk.co.kr), 김정범 기자(nowhere@mk.co.kr) 2023. 1. 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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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일본 GPIF'

◆ 글로벌 연금강국 현장 ◆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2.4%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2002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내놓은 '연금개혁 골격 방향성'이란 제목의 보고서는 파격이었다. 당시까지 일본 정부에선 보험료율이 장기적으로 19.8%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전문가들은 예상보다 심각한 저출산 영향 등을 감안할 때 대폭 상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직장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절반을 개인이 부담한다. 보험료율이 20%를 넘어선다는 것은 직장인 입장에서 수입의 10% 이상을 후생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20%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03년 정부 차원의 개혁안이 마련됐다. 2004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주도로 몸싸움까지 벌인 끝에 국회를 겨우 통과했다. 정치적 후폭풍은 거셌다. 그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결단은 일본 후생연금의 재정 부담을 줄인 최선의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연금개혁 논의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모범 사례'다.

'100년 안심 플랜'을 내건 2004년 일본 연금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다. 우선 13.58%였던 보험료율을 18.3%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매년 0.4%포인트)했다. 이와 함께 연금 수령액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이름의 자동 조절 장치다. 쉽게 설명하면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 합계출산율 등이 일정 기준에 달하면 연금 수령액을 자동으로 줄어들게 만든 것이다. 또 소득대체율이 2040년 이후에도 50%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이후로도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제도를 고쳐가는 한편 지속적으로 연금 관련 개혁을 이어갔다. 연금 불평등 해소를 내걸고 2012년에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을 후생연금에 통합했다. 일본 정부는 연금개혁과 함께 고용 연장과 지급 개시 시점 연장 등을 병행 추진했다. 고연령자 고용안정법 개정(2006년)을 통해 3년마다 1세씩 단계적으로 퇴직 시점을 연장했다. 2025년에는 65세까지 고용이 의무화되도록 조정한 것이다. 또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도 2013년부터 3년마다 1세씩 늦춰 2025년에는 65세가 되도록 했다. 지난해 이뤄진 개정에선 선택에 따라 개시 시점을 75세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체계적으로 개혁했음에도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02년 전망에서 2050년께 일본의 합계출산율을 1.39명으로 가정했으나 2020년 기준 1.34명으로 떨어졌다. 수급액 자동 조절을 위해 도입한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물가 하락기에는 발동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걸려 실제 시행은 3회에 그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상보다 발동 횟수가 줄면서 연금개혁 때 예상에 비해 실제 지급된 금액은 8조8000억엔이 더 늘었다는 추산이 있다"고 전했다.

또 연금생활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마무라 고헤이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국민생활기초조사에 따르면 '연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연금생활자 비율은 2019년 50%에서 2021년 25%로 급감했다"며 "과거 고령층이 받은 금액보다 최근 연금을 받기 시작한 사람들의 수령액이 줄어들었고, 물가와 건강보험 비용 등이 올라간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다시 '연금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있는 이유다.

현재 한국 상황은 20년 전 일본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0.81명으로 2004년 일본의 1.29명보다도 낮다. 2022년 고령화율은 17.5%로 연금개혁 당시 일본(19.0%)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최고 21%까지 높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초기 3%였던 보험료율을 1993년 6%, 1998년 9%로 높인 이후 24년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국민연금은 2050년대 중반이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수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향후 추가적인 법 개정을 통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다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제5차 재정추계 전문위원회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재정계산에 돌입했다.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 종합 운영 계획을 마련해 늦어도 올해 10월에는 국회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과연 제대로 개혁이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도쿄 김금이 기자 / 서울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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