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이 나갔다고 끝이 아니다… ‘원상회복 청구’의 함정

명도가 끝난 임대인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일은 새 임차인을 받는 것이 아니다. 떠난 임차인과의 두 번째 다툼이다. 사진은 한 점포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 뉴시스

명도가 끝난 임대인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일은 새 임차인을 받는 것이 아니다. 떠난 임차인과의 두 번째 다툼이다.

임대인이 견적서를 들고 “도배·바닥·싱크대 보수 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한다”고 통지하면, 임차인의 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건 자연스럽게 닳은 겁니다. 거기까지 떼는 건 부당합니다.” 같은 공간을 두고 임대인은 대부분을 원상회복 대상으로 보고, 임차인은 대부분을 통상의 사용으로 인한 마모로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상회복을 둘러싼 진짜 싸움은 청구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디까지가 임차인의 책임이고 그 금액은 얼마인지를 두고 양측이 맞붙는 자리다.

어디까지가 임차인의 책임이고 그 금액은 얼마인지를 두고 양측이 맞붙는 자리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이 다툼의 법적 출발점부터 본다. 임대차가 종료되면 임차인은 임차한 부동산을 원래 상태로 회복하여 반환할 의무를 진다. 민법 제654조와 임대차의 일반 법리에 따른 의무다.

임차인이 사용하는 동안 못을 박았다면 못 자국을 메우고, 임의로 한 시설변경이 있다면 철거해 돌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임대인은 이 의무 이행을 강제로 청구할 수 있고, 임차인이 이행하지 않은 채 나갔다면 그 비용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청구 자체가 인정된다는 사실이 곧 청구 금액까지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임대인이 제시한 견적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 법원도, 임차인도, 보통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분쟁이 막히는 포인트는 세 곳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그러면 분쟁은 어디서 막히는가. 세 곳이다.

첫째, 임차인이 이미 떠난 뒤에 협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어렵다. 임차인의 새 주소·연락처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고, 응할 의지가 없으면 또 소송으로 이어진다.

둘째, 보증금에서 곧바로 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미납 월세는 명백하지만, 원상회복 비용은 견적·감정이 필요하고,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일방적 공제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된다.

셋째, 입증이 어렵다. 임차인이 입주할 때의 상태와 퇴거 시의 상태를 사진·동영상·견적서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명도 완료 직후 임대인이 청소·도배를 해버리면 그 증거가 사라진다. “분명히 못 자국이 가득했는데”라고 말한들, 사라진 현장을 되돌릴 수는 없다.

대법원은 통상의 사용으로 인해 생긴 마모와 변색은 원상회복 의무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 뉴시스

물론 모든 변형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통상의 사용으로 인해 생긴 마모와 변색은 원상회복 의무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벽지가 자연스럽게 누렇게 된 정도, 바닥 장판이 일상적으로 닳은 정도는 임차인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임차인이 한 시설변경이라도 임대차계약 당시 임대인의 동의가 있었거나 권리금 회수 구조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청구가 까다로워진다.

상가에서 임차인이 만들어놓은 영업시설이 신규 임차인에게 그대로 인수되는 사안이라면, 임대인이 무조건 철거를 강제할 수도 없다. 청구할 수 있는 것과 청구해서는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모르고 무리하게 들이밀면, 도리어 임대인이 손해배상의 상대방이 된다.

입주 시 상태와 비교 가능한 현장 사진 및 동영상을 확보하는 게 좋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명도가 끝난 시점에 임대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첫째, 입주 시 상태와 비교 가능한 현장 사진·동영상을 즉시 확보한다. 가능하다면 입회하에 함께 확인해두는 것이 가장 좋다.

둘째, 원상회복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견적을 받아 문서화한다.

셋째, 보증금 공제 또는 별도 청구의 형태로 임차인에게 정확한 금액을 통지한다. 청소·도배·인테리어는 그다음이다. 이 순서가 흔들리면 임대인의 청구권은 증거와 함께 사라진다.

원상회복 청구는 어디까지를 임차인의 책임으로 보고, 그 금액을 어떻게 신청하느냐의 싸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원상회복 청구는 결국 인정과 불인정의 싸움이 아니다. 어디까지를 임차인의 책임으로 보고, 그 금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의 싸움이다. 임대인이 견적을 두껍게 만들수록 그 견적은 의심받고, 임차인이 통상 마모만 외칠수록 그 주장은 가벼워진다.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두꺼운 견적이나 더 강한 항변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같은 자료다.

그리고 임대인에게는 거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청구의 두께가 아니라 청구의 절제다.

받을 수 있는 것을 분명히 가르고, 거기에 증거를 붙이는 일. 원상회복 분쟁의 승부는 결국 거기서 갈린다.

글=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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