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관객이 2만 명 남짓인데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극장이 가장 조용했던 시기에 조용한 멜로 한 편이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2020년 겨울 개봉한 이 작품의 이야기입니다.
극장이 가장 비어 있던 계절에 걸린 멜로
2020년 12월 10일 개봉한 '조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가장 가팔랐던 시기에 관객을 만났습니다. 좌석 띄워 앉기가 시행되고 상영 회차도 크게 줄어 극장 전체 관객 수가 바닥을 치던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작품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일일 관객이 2만 명대에 머물렀는데 그 숫자가 전체 1위를 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초라하지만 당시 극장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의미가 작지 않았습니다.

원작과는 다른 길을 택한 각색
이 작품은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가 이미 오랫동안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한국판은 인물의 이름과 배경을 바꾸고 계절의 질감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김종관 감독은 짧은 호흡의 장면과 빛의 변화로 감정을 쌓아 올리는 연출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작의 결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 개봉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지점이었습니다.

배우가 내려놓은 자리에서 생긴 얼굴
한지민은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인물 조제를 맡아 그동안의 밝은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냈습니다. 대사보다 눈빛과 침묵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많아 배우에게는 까다로운 역할이었습니다. 남주혁은 조제의 세계에 조심스럽게 들어섰다가 결국 흔들리는 청년 영석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설렘보다 어색함과 거리감이 먼저 느껴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 거리감이 영화 후반의 감정을 받쳐주는 구조로 이어집니다.

빛과 계절이 주인공이 되는 화면
'조제'는 인물의 감정을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공간과 빛으로 보여주려 한 작품입니다. 낡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빛이나 겨울 거리의 공기 같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책이 가득 쌓인 방, 좁은 복도, 계단 같은 공간이 인물의 처지를 대신 말해줍니다. 음악도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 한 발 물러서 있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렸지만 분위기만큼은 또렷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조용히 남은 겨울 영화 한 편
'조제'는 흥행 숫자로 기억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 남았습니다. 극장에 가기 어려웠던 해에 개봉했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의 인상과 겹쳐지는 면이 있습니다. 이후 OTT로 옮겨가면서 뒤늦게 찾아본 관객들의 감상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결말을 두고는 지금도 해석이 갈리며 여러 이야기가 오갑니다. 겨울에 어울리는 조용한 멜로를 찾는다면 후보에 올려볼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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