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92] 헌정의 상도(常道)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5. 3. 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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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憲政)’은 메이지 헌법 제정을 전후하여 등장한 일본 근대화기의 정치 용어다. 뜻 자체는 ‘입헌정치’의 준말이지만, 당시 ‘탈아입구’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문명국 자격’의 의미로 통용되던 내력이 있다. 주로 헌법 제정 이전의 구(舊)체제와 대비되는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 말이기에 현대 일본에서는 그다지 접할 일이 없다는 점이 한국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는 ‘헌정의 상도(常道)’라는 말이 있다. 상도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메이지 헌법은 국정을 책임질 총리 임명과 내각 구성에 있어 천황의 권한만 규정할 뿐 정당의 특별한 지위를 상정하지 않은 흠정(欽定)헌법이다. 일본의 경우 다이쇼 시대에 이르러서야 정당 정치 진전 및 보통선거제 시행과 맞물려 중의원 다수당 당수의 총리 지명 및 내각 구성이 관행화되었다. 헌정의 상도란 이렇듯 헌법 시행 과정에서 정치 문화 진전에 따라 모두가 존중해야 할 원칙 또는 규범으로 자리 잡은 관례를 말한다.

일본에 헌정의 상도가 있다면 한국에는 ‘의정(議政)의 상도’라고 부를 만한 불문율이 있(었)다. 특정 정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차지하지 않는 관행이 그것이다. 17대 국회에서 다수당 전횡을 막기 위해 여야 합의로 성립한 이 관행은 21대 국회 이후 파행을 겪다가 현행 국회에 이르러 특정 정당이 법사위를 비롯한 주요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면서 완전히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건전한 의회정치 구현은 헌정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 내 견제와 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어렵사리 타협의 지혜가 발휘되어 이어지던 선진적 관행을 무시하고 다수의 폭거를 일삼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헌정 훼손 행위에 해당한다. 지금 이 땅에 ‘헌정 수호’를 진정성 있게 입에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정치 세력이 과연 있는지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기가 막힌 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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