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랑나비는 그리움이다

여름은 잎사귀 하나까지 초록물이 든다. 나는 여름철만 되면 유난히 목이 탄다. 더위를 먹어서가 아니라 목젖을 넘기지 못한 그리움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와 무시로 마른기침을 해대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정원을 노닐던 노랑나비의 날갯짓이 우아하다. 부모님 생각에 젖을 때의 '노랑나비'는 그리움이다. 나를 반기고 맞이할 그곳이 손짓을 한다.

부모님 산소에 갈 준비로 분주하다. 마음이 둥둥 떠 있다. 이번에는 어떤 꽃으로 준비할까. 산소 입구에 노랑나비가 마중을 나와 살포시 어깨에 앉는다. 그리운 엄마 색인 노란색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노랑은 따뜻하지만 온기를 걷어내면 고인 눈물샘이 솟는다.

엄마는 잠시도 한눈팔지 않았고 동네의 품앗이 대장이었다. 모내기 철이나 가을걷이 때에는 동네 분들이 서로 도와달라면서 새벽부터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셨다. 엄마는 모내기를 마치면 논두렁에 흙 이불을 덮어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 안에는 노란 콩을 3개씩 넣었는데 그 일은 내 몫이었다. 콩대가 올라오고 잎이 무성해질 때쯤이면 논두렁이 쩍쩍 갈라지기도 했다. 벼는 폭염에 사투를 벌이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논을 둘러보고 출근했던 아버지는 부지런한 군무원이셨다. 퇴근 후에는 괭이와 낫을 들고 논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는 동네에서 가장 큰 전축이 있었다. 높다란 선반에 있는 LP판(레코드판)은 아버지가 목말을 태워줘야만 구경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목에 감긴 나는 구름 위 천사가 되었고 사랑스러운 알토란이었다.

장남인 오빠는 과묵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도와가면서 어린 여동생 셋의 공부도 챙긴 자상한 오빠였다. 고작 서른 해를 살고 오빠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살아생전 부모님은 하늘이 뿌려놓은 눈물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새들이 노래로 어린이집 창문을 두드릴 때는 오빠의 소리가 들린다. 부모님과 오빠는 어린이집 앞산에 옹기종기 모여 계신다. 아버지의 살아생전 소원을 이룬 셈이다. 산소에는 슬픔이 몰려오면 슬픈 꽃이 피고 눈물이 나면 눈물 꽃이 핀다. 엄마가 좋아했던 보리수와 자두나무 열매가 달렸다. 산소 아래에 펼쳐진 바다는 아득하다. 초록빛 바다가 윤슬로 빛나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노랑나비와 이별을 한다. 잠시 인연이지만 나도, 노랑나비도 활기찬 날갯짓으로 이승을 유영했다. 너의 날갯짓. 네가 건네준 찰나의 꿈들. 잘 가라고 노랑나비에게 손 흔들었다. 잘 있으라고 봉분 머리를 짚는 나에게 여름은 울음을 삼켰다.

/김송현 진해무지개어린이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