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민관협의체'의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민관협의체는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질병코드(KCD)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다. 통계청의 일정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게임이용장애를 KCD에 등재할지에 대한 결정은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등록한 이후 5년째 이어진 논쟁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적 치료 기회 제공을 위해 도입을 주장하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업계는 산업 위축을 우려하며 반대한다. 정부 부처 간 이견 속에 국회·학계·시민단체까지 찬반으로 갈라져 사회적 합의는 멀다. "게임은 질병이 아닌 문화"라는 구호와 달리 정작 정책은 표류한다는 냉소가 커졌다.
그러나 이달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풍경은 달랐다. 넥슨 '아이콘매치'를 보기 위해 지하철에는 유니폼을 입은 학생·직장인·중년 부부까지 여러 세대가 섞여 탔다. 역사에 내리자 수천명이 줄지어 경기장으로 향했고 바깥은 푸드트럭과 포장마차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FC게임의 추억을 나누고 베컴·호나우지뉴·루니 같은 레전드 선수 이야기를 이어갔다. 6만여 명이 들어찬 경기장 안에서 루니의 슛이 골망을 흔들자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함성이 터졌다. 이틀간 10만명이 현장을 찾았다. 온라인 누적 시청자는 340만명. 게임을 매개로 한 '문화 축제'였다.
게임이 문화로 자리 잡은 현실은 일상 곳곳에서도 확인된다. 직장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모바일게임으로 친목을 다지고 가족들이 닌텐도 스위치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이 온라인게임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풍경이다. 사실 게임의 오프라인 축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부산 지스타에는 매년 20만명, 도쿄게임쇼·게임스컴에는 각각 30만명 이상이 몰린다. 게임은 특정 계층의 취미가 아닌 전 연령이 공유하는 보편적 문화가 됐다.
한국에서도 게임은 이미 대중문화의 핵심축이다.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콘텐츠 수출액 가운데 게임 비중은 약 52~58%로 절반을 웃돈다. K-팝·드라마와 나란히 한류를 이끄는 대표 품목이라는 뜻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중요성은 분리될 수 없다. K-팝이 문화 한류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핵심 수출산업인 것처럼, 게임 역시 우리 문화의 한 축이자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다.
문제는 산업의 체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게임 시장은 약 854억 달러(119조원)로 추산된다. 2028년에는 1200억 달러(167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은 세계 4위(7.8%) 점유율을 기록하지만 내수 시장 규모는 13조원에 그친다.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1년 71%에서 2024년 60% 미만으로 떨어졌고, 수출도 2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중국 판호 규제와 현지 경쟁 격화 속에 2023년 수출액은 전년(89억8175만 달러) 대비 6.5% 줄었고, 2024년에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병코드 등재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선다. 게임이 의학적 '치료 대상'으로 분류되는 순간 게임업계 투자 위축과 학부모들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나아가 e스포츠와 같은 새로운 문화 영역의 성장 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이 이미 전환기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질병 코드 등재는 소비와 투자 심리 위축, 신작 흥행 부진, 일자리 축소라는 악순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게임 과몰입으로 실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취지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의 과몰입 사례를 근거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마치 일부의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음주 문화 전체가 병리적 행위로 취급받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과몰입 문제는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교육·상담·자율 규제 강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건전한 게임 문화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과도한 이용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아이콘매치를 취재하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가는 기자의 귀에 들린 한 가족의 대화가 오래 남는다. 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예전에 PC방에서 했던 FC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다니 신기하다"고 웃었고, 초등학생 아들은 "아빠 세대 선수들을 게임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답했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게임이 세대를 잇는 문화적 매개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이미 답이 드러났다. 경기장을 울리던 함성과 정부 회의실의 '질병' 논쟁 사이의 간극은 분명하다.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대상을 병리의 틀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수천만 명이 즐기는 문화를 몇 퍼센트의 과몰입 사례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5년째 표류하는 정책 논쟁 속에서 게임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뿌리내렸다. 이제는 질병 여부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건전하고 창의적인 게임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최이담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