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디지털 전환’에 박차…‘디지털 주권’ 강조하니 ‘글로벌 투자’ 잇따라
시장 선점 원하는 글로벌 빅테크…MS는 15조원, 오라클은 12조원 투자
(시사저널=박대원 일본 통신원)
일본 정부가 2021년 9월 디지털청을 출범시키며 '디지털 전환(DX)'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대표들이 연이어 일본을 방문해 대일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먼저 올해 4월3일 일본을 방문한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2029년까지 4년간 100억 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일본 내 데이터센터 건립을 포함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확충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소프트뱅크, 사쿠라 인터넷 등과 협력해 일본 내에서 AI를 운용하는 데이터센터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日, 디지털 인프라를 '안보 자산'으로 규정
사쿠라 인터넷은 1999년 설립된 중견기업으로, 일본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공용 클라우드 사업자로 선정된 유일한 일본 기업이다. 스미스 사장은 일본 방문 기간 중 히타치제작소, NEC, NTT 데이터, 후지쓰 등 일본 대기업과 협력해 2030년까지 100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 개발자 등 인재를 양성하고 AI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스미스 사장의 대일 투자계획 설명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최대 규모의 대일 투자를 환영하며, 일본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데이터 주권 유지에 기여하는 투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했다.
4월15일에는 마이크 시실리아 오라클 CEO가 다카이치 총리를 만나 일본 내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대일 투자 증액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라클은 일본 내 클라우드 서비스 및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24년부터 10년간 8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오라클 측은 소프트뱅크와의 협업을 통해 오라클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일본 시장용 클라우드 서비스 및 AI 플랫폼을 출시하고, NTT 데이터가 오라클의 인프라를 도입해 일본 내에 데이터를 보존하는 형태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아마존웹서비스(AWS)도 2024년 1월 약 150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의 대일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일본 내에 데이터센터를 신설하는 등 인프라 정비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일 투자 증가의 배경으로는, 다카이치 내각이 '디지털 주권'을 강조하며 국가 프로젝트 및 공공 클라우드 도입 시, 일본 국민 및 기업의 데이터를 일본 내 데이터센터에 저장하는 것을 필수 요건으로 하는 데이터 현지화(Data localization)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2018년 봄에 '일반 데이터 보호규칙(GDPR)'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자국 데이터를 자국 내에서 처리 및 관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도 국경을 넘는 국가 및 개인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경제 안전보장' 맥락에서 디지털 인프라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며 국내 인프라 중심의 클라우드 체계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구축과 관련해서는 주요 도시뿐 아니라 지방으로 데이터센터를 분산함으로써 지역 균형발전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연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소니·혼다·소프트뱅크 뭉쳐 AI 독자 개발
일본 총무성이 발행하는 정보통신백서(2025년판)에 따르면, 일본의 데이터센터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2조7361억 엔(약 25조원)에서 2028년에는 5조812억 엔(약 47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일본의 AI 및 클라우드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은 일본 기업과 협력해 일본 내에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본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개발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경제산업성이 일본산 AI 개발 기업을 대상으로 1조 엔(약 9조원)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디지털 주권 확보를 위한 보조금 지원에 발 벗고 나서자, 일본 기업들은 일본 독자의 AI 모델 개발을 위한 연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NEC(일본전기주식회사), 혼다, 소니그룹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올해 4월 자국형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공동 출자하는 형태로 '니혼 AI 기반 모델 개발'을 설립했다. 소프트뱅크와 NEC가 AI 모델을 개발하고, 해당 모델을 혼다와 소니가 자동차 운전 시스템, 게임, 반도체 등 산업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토지 가격 상승과 전력 수급 문제, 냉각용 수자원 확보 문제 등으로 도심 속에 데이터센터를 추가 건립하기 위한 비용이 점차 증가하자, 일본의 3대 해운회사 중 하나인 미쓰이OSK라인(MOL)과 히타치제작소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loating Data Center)' 구축에 도전하고 나섰다. 대형 자동차 운반선을 개조해 움직이는 데이터센터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부유식 데이터센터는 기존의 대형 선박을 개조한다는 점에서 지상 데이터센터 건설에 비해 소요 비용 및 시간이 절약되며 바닷물을 냉각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명확하다. 다만 해상 네트워크의 보안 문제, 염분과 습도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점 등의 리스크로 인해 사업성이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산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AI와 로봇 개발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디지털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체계 개편도 본격화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이론과 실습을 병행해 학습하는 5년제 '고등전문학교'(고등학교와 전문대를 결합한 형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실무형 기술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아이치현의 경우 2029년 4월까지 현립 고등전문학교를 개교하고 AI 및 디지털 코스를 졸업한 학생들이 졸업 직후 엔지니어로 채용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4년제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이 손잡고 고급 인력 양성에 힘을 싣고 있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다는 반성으로 적극적인 해외 고급 인력 유치와 함께 실무형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 개편에 나선 일본 정부의 시도가 '디지털 강국' 일본의 재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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