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없어서"…5살 1형당뇨 아이 받아주는 병원 없었다

박혜연 기자 2024. 10. 6.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도당 주사만이라도"…119도, 병원도 책임 미루기만
케톤산증 8살 아이도 '응급실 뺑뺑이'…의료대란에 불안 심화
ⓒ News1 DB
"(저희 병원 말고) 소아 전문병원으로 가셔야 될 것 같아요." "소아는 저혈당 진료 볼 수 있는 선생님이 없어서 저희는 안 되거든요."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작년 8월 처음 1형 당뇨 진단을 받은 5살 선우는 체내에서 혈당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따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평소엔 간식 하나 먹는 것도 조심했지만 이날만큼은 선우도 맛있는 추석 음식을 잔뜩 먹었다.

평소보다 다소 많은 인슐린 주사를 맞은 선우는 그날 저녁 8시쯤부터 약 40㎎/dL 심한 저혈당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히 박 씨가 과자와 주스를 조금 먹였지만 선우의 눈은 점점 감기고 의식이 약해지고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지나도 저혈당 상태가 계속되자 박 씨는 119를 눌렀다.

"포도당 수액만이라도 맞게 해줄 수 있냐"는 박 씨의 질문에 119 구급대에서는 "구급차에서는 병원까지 가기 전 생명 유지를 위한 조치만 가능하다"며 "병원에 가셔서 진료받으셔야 한다"고 안내했다.

5살 선우의 의식이 흐려지자 엄마인 박 모 씨(43)도 마음이 급해졌다. 박 씨는 119로부터 전달받은 인근 병원 연락처에 전화를 돌렸지만 소아과 담당의가 없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진료를 거부당했다. 부산에 사는 박 씨의 거주지 인근에는 당시 동아대 병원과 양산 부산대병원, 부산백병원, 부산의료원 등이 있었다.

박 씨는 지난 4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병원에서는 119에 먼저 문의하라고 하지, 119에서는 일단 구급차에 탄 다음에야 어느 병원에 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이동하면서 (응급실 뺑뺑이 돌다) 잘못될까 봐 급히 1형당뇨환우회 단체대화방에 연락했더니 화명동에 계신 분이 글루카곤 비상약을 주신다고 하셔서 그쪽으로 갈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병원이나 응급구조대보다는 같은 환우회가 더 빠른 해결책을 준 셈이다.

다행히도 구급차를 부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우의 혈당은 정상치로 오르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아이의 고개를 젖혀서 계속 입 안으로 설탕물을 흘려 넣은 박 씨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이다.

무사히 위기를 넘겼지만 그날 이후 박 씨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연휴 동안 아이들한테 '우리는 병원에 가도 안 받아줄 수 있으니까 절대 다치면 안 돼, 아프면 안 돼'라고 말했는데 딱 그런 일이 생기니까 진작에 병원을 알아놓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며 "의료대란이 좀 야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제가 차라리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집에 포도당 수액을 상비해 놓으면 위험할 때 주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며 "나중에 담당 교수님도 '포도당 주사는 정말 간단한 건데 그걸 안 해준다고 하느냐'며 많이 답답해하셨다"고 전했다.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응급실 진료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2024.9.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제때 응급 처치 못 받으면 위급…불안한 1형 당뇨 환아 부모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최근 진료 거부나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많아지자 흔히 '소아당뇨'라고 불리는 1형 당뇨 환아 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1형당뇨환우회에 따르면 심한 고혈당이나 저혈당 상태에서 신속히 병원 연결이나 응급 조치를 하지지 못해 상태가 위급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에서도 8살 아이가 고혈당으로 인한 케톤산증으로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2시간 만에 인천으로 이송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당시 아이는 1형 당뇨를 진단받기 전이었기에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인슐린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케톤산증은 1형 당뇨를 진단받기 전 오랜 기간 고혈당 상태가 유지돼 나타나는 증상으로 혈액 속 산(酸·acid) 대사물이 쌓여 다식, 다뇨, 쇠약감 등과 함께 혼수상태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현행 법규상 1급 응급구조사는 환자가 저혈당성 혼수 상태 시 포도당 수액을 주입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병원 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을 제도화하고,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 에피네프린 투여 등 5가지를 추가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환우회 대표는 "저혈당 상태는 중증도가 높으니 지금보다는 빨리 응급처치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면서도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 고혈당 상태에서 인슐린을 주입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응급 상황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환우회 내부에서는 걱정과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중증도가 높을수록 응급 처치나 응급실 이용에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hypar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