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소녀’
정소녀는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방송가를 떠올릴 때 빠지지 않던 이름 중 하나였다.

197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배우로서도, MC로서도 활약을 보였다.


예능 <쇼쇼쇼>, <가족오락관> 등 당시 시대를 대표하던 프로그램에서 허참과 함께 진행을 맡았고, 차분하고 지적인 말투 덕분에 ‘여성 전문 MC의 길을 연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시절 정소녀는 CF계의 블루칩이기도 했다.
당시로선 놀라운 금액인 수천만 원 단위의 광고 계약을 따내기도 했고, 드라마와 광고를 넘나들며 전성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정소녀가 방송에 있으면 믿고 본다’고 말했고, 지적이고 단정한 이미지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그만큼 두터웠다.
하지만 어느 날, 확인되지 않은 ‘소문 하나’가 그 모든 걸 무너뜨렸다.
‘흑인 아이 출산설’이라는 잔인한 루머

당시 퍼졌던 루머는 황당했다.
정소녀가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과 연인 관계였고,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방송국은 정소녀에게 해명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프로그램 하차가 이어졌고, 광고 계약도 끊겼다.
오랜 시간 쌓아온 이미지와 신뢰는, 불과 며칠 만에 사라졌다.

루머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욕탕에서 들리는 수군거림에, 절친 송도순이 루머를 떠들던 아줌마와 몸싸움을 벌였다는 일화도 있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정소녀는 어느 날 화장실에서 루머를 퍼뜨리던 사람을 마주하고, 담담하게 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얼굴이라도 보셨나요?”
들은 이야기라면서 발뺌했다. 결국 한 기자의 추적 끝에 루머는 완전히 허위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또 다른 상처

정소녀는 1979년, 대학 동창이자 병원장 아들과 결혼했다.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외국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돌아온 건 이혼 통보였다.
딸 하나를 둔 채, 정소녀는 혼자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이혼 사실이 알려졌을 무렵, 흑인 아이 출산설과 함께 또 하나의 루머가 번졌다.

이번엔 간통 피소였다. 상대는 유부남이었고, 정소녀는 그것조차 몰랐다.
그와 약혼한 상태였지만, 어느 날 그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 사건은 법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정소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전 부인과 이혼했다고 정소녀를 속인 상태에서 그가 유부남일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해도, 혼자 조용히 견디는 수밖에 없었어요.”
연예계 은퇴 이후의 삶
한때 전 국민이 알던 얼굴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딸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직업은 보험설계사였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으며 묵묵히 2~30년을 살아냈다.

간혹 <TV는 사랑을 싣고>, <휴먼다큐>, <특종세상> 같은 프로그램에서 근황이 전해질 때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 정소녀가 왜?’ 하는 반응들.
하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지금은 흔들리지 않아요. 이제는 진실이 드러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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