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뜬금없이 찾아줘요, 우리 서로를 찾기 위해

양산시 평산동 음식점이 들어선 흔한 상가 건물에 뜬금없이 초록색 간판이 쨍하다. 간판에는 흰 글씨로 '투핀데오(ToFinDeo)'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한글로 '서로를 찾기 위해'라는 문구가 이어진다. 이 문구를 영어로 번역하면 'To Find Each Other'다. 투핀데오는 이 영문을 줄인 이름이다. 간판에 적힌 셀렉숍(selec shop)이란 말이 이 공간의 정체를 말해준다. 이는 '편집 매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옷이나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을 모아 두고 파는 곳을 말한다. 역시 간판에 적힌 빈티지(구제 옷), 제로웨이스트란 단어에서 이곳이 '재활용·친환경'을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리창엔 반려동물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 가득 구제 옷들이 진열돼 있다. 옷이 주된 상품이지만 손수건, 가방 등 상품 종류가 다양하다. 매장 중앙엔 실리콘 지퍼백, 다회용 빨대 등 친환경 제품들도 보인다. 오른편엔 반려동물을 위한 간식과 용품이 있다.

투핀데오의 초록색 간판./백솔빈 기사

쉽게 버려지지 않도록 = 공간 운영자 정이수(31) 씨는 학창 시절부터 구제 옷을 좋아했다고 한다. 디자인이 예쁘고 옷감도 좋은 데다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안 남았을지 모르는 특별한 옷일 수도 있다는 설렘도 좋았다. 특히 누군가가 아껴 입은 티가 나는 옷에 더욱 애정이 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동물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했다. 예를 들어 도로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볼 때면 늘 목례로 영면을 기도했다. 아파트를 세우려 산을 깎는 것을 보면 속상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삶의 터전인 지구가 인간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정 씨는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졸업 후 스파 브랜드(SPA brand)에서 일했다. 스파 브랜드는 '패스트 패션'으로도 불리는데, 유행에 맞춰 바로바로 만들어내는 다품종소량생산 '자가 상표부착제 유통 방식(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을 말한다. 유행이 빨리 변하는 만큼 옷들도 빠르게 버려진다. 빈티지 의류를 파는 곳에서도 일했었는데, 팔리지 않는 제품을 그냥 폐기하는 방식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정 씨는 자신이 직접 구제 옷을 팔기로 했다. 2년 전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고, 올해 3월에 지금 운영하는 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도심 상권 위주로 공간을 알아봤다. 그러다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뜻밖의 장소에 익숙하지 않은 가치가 깃든 공간이 오히려 재밌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투핀데오 정이수 대표가 옷을 정리하고 있다./백솔빈 기자
투핀데오에 진열돼 있는 구제 옷과 친환경 제품./백솔빈 기자

투핀데오는 완벽하진 않아도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방향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상품 포장을 헌 천으로 하고, 가격표는 버려진 천막을 오려 만든다. 공간 인테리어도 버려진 천이나 옷을 새롭게 가공한(리폼·reform) 것들로 꾸몄다. 한 번 들여놓은 옷은 버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팔리지 않는 옷은 새롭게 진열해 돋보이게 한다. 그래도 끝내 팔리지 않는다면, 작은 가방이나 머리끈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옷은 튀는 것보단 누구든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을 가져다 둔다. 가격대도 평균 1만~2만 원, 최대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물론 친환경이라해서 완전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일부 포장이 돼 있는 상품도 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 정 씨는 투핀데오가 단순하게 환경 보호를 앞세우는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방문자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들길 바란다. 이 가치는 매장 거울에 적힌 문구에서 잘 드러난다.

"투핀데오는 '서로를 찾기 위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자신만의 아이템을 찾아 스스로에게 선물하거나 친구, 가족 등 고마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세요. 그 다정한 마음이 오늘을 사랑스러운 하루로 만들 거예요."

그가 가게를 일상과 가까운 곳에 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집에 가다 우연히 가게를 발견하고, 뜬금없이 찾아와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작은 상품 하나를 고르는 행복을 주기 위해서다.

투핀데오 정이수 대표가 옷을 포장하고자 헌 천을 재봉하고 있다./백솔빈 기자
버려진 천막으로 만든 가격표가 구제 옷에 붙여져 있다./백솔빈 기자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 됐으면 해요. 다만, 다양한 상품 중에서 (환경에 이로울 수 있는)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소개할 뿐이죠. '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이 상품을 샀는데, 이걸 선택함으로써 얻는 이점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정 씨가 평산동에 '흔하지 않은 공간'을 운영한 지 5개월이 흘렀다. 이제 다른 동네에서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 '서로를 찾기 위해'라는 가게 이름처럼 정 씨와 손님들은 투핀데오를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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