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는 나를 보살피고 알아가는 과정”

2024. 10. 2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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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전문가 유튜버 ‘정코’ 민효기씨 인터뷰
철제선반 회사 대표이자 유튜브 정리마켓을 운영하는 유튜버 정코(본명 민효기)가 지난 10월 16일 경기 김포시 대곶면의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쌀쌀한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 전 옷장 정리를 했다. 한여름 내내 입은 티셔츠와 반바지, 원피스는 빨아서 옷장 깊은 곳에 넣고 니트류와 재킷 등 두툼한 옷들을 꺼내 손이 잘 닿는 곳에 걸어 두었다. 고백하건대 원래는 이 서랍 저 서랍, 이 행거(옷걸이) 저 행거를 파헤치며 옷을 찾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심을 했고, 딱 두 시간만 정리해보기로 했다. 예상외의 고요한 기쁨이 찾아왔다. 아끼는 가을옷을 꺼내 좋아하는 색과 질감을 확인하면서 ‘나를 보살피는 나’를 느꼈다. ‘옷 살 필요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뿌듯함도 차올랐다.

정리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표준국어대사전). 물건에 질서를 부여하는 ‘정리’는 모두에게 수월한 것은 아니다. 가끔 큰마음을 먹고 정리를 한다 해도, 질서는 금세 무너지기 일쑤다. 정리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

정리 전문가로서 짐이 꽉 찬 집에 ‘정리 봉사’를 나가고 전국의 정리 고수를 소개하는 유튜버 ‘정코(정리 코디네이터)’ 민효기씨(43)를 지난 10월 16일 경기 김포시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철제선반 제조회사 대표인 그는 “정리용품을 잘 아는 데서 더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4년 전 시작한 그의 유튜브 채널 ‘정리마켓’은 처음엔 정리용품 리뷰와 정리 봉사 위주였는데, 숨은 고수들을 다루며 인기가 높아졌고 현재 구독자는 60만명에 이른다. 최근엔 정리 고수들과 구독자들을 모아 살림에 관한 수다를 떠는 ‘살림교류회’도 열고 있다. 정리용품을 만드는 제조업자이자 정리 컨설턴트면서, 정리 유튜버인 민씨에게 정리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철제선반 제조회사 사장이 ‘정리’에 관한 유튜브를 하는 이유가 뭔가.

“20년 가까이 사업을 하면서 수납용 선반 연구는 많이 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품을 쓰는 소비자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소비자들이 각종 제품을 이용해 정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정리 컨설턴트 자격증을 따고 정리 봉사도 했다. 원래 정리를 좋아해 부모님 집을 정리해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유튜브 채널까지 만들게 됐다. 사실 처음엔 유튜브 인기가 이만큼은 아니었는데, 정리 고수들을 소개하는 ‘전국살림자랑’ 코너 덕분에 구독자가 훌쩍 뛰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고수들은 ‘현실적인 정리’를 하므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한때 인스타그램에선 온 집안이 하얀 스타일이 유행이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지쳐 있었던 거다. ‘우리 집은 지저분하고 번쩍번쩍한 수납용품도 없는데…’ 하면서 다들 요샛말로 ‘현타’(현실자각시간)가 왔던 것 같다.”

“장소를 정리하려고 하지 마라.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컵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집에 있는 컵을 다 가져오는 식이다. 정리의 시작은 물건에 위치를 정해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이 컵의 자리는 여기야’라고 정해주면, 쓰고 다시 갖다 놓는 게 어렵지 않다.”


‘정리마켓’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은 ‘정코’ 민효기씨가 아니라 정리 잘하는 살림 고수들이다. 서울의 72.7㎡(22평) 아파트에서 사는 ‘토깽이 아줌마’의 정리 원칙은 ‘무조건 비움’이 아니다. 그는 “물건을 동선에 맞게, 쓰임새에 맞게 놓아야 진정한 정리”라고 말한다. 작은 식탁에 앉으면 발치에 있는 미니 책장에서 책과 공책을 꺼낼 수 있고, 등을 조금만 돌리면 뒤 선반에서 커피를 내릴 수 있으며, 식탁 아래 미닫이 통에선 문구류가 나온다. 민씨는 “미리 받은 이미지로 볼 땐 집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나?” 고민했지만 “‘현실 정리란 이런 것이구나’ 보여준 덕에 유튜브 채널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했는데, 가난한 공간을 나아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청소와 정리였던 거예요. 저는 반지하라 할지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거든요. 정리는 내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정갈하게 살고 싶다, 단정하게 살고 싶다, 욕심 없이 살고 싶다….”(‘토깽이 아줌마’ 김정은씨) 출연자들이 전하는 정리철학도 절대 가볍지 않다.

‘토깽이 아줌마’ 김정은씨가 정리마켓에 출연해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살림 고수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마다의 원칙과 철학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정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각자의 정리에는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유튜버 ‘자취남’님 혹시 아시나. 35년 된 9평 원룸에 수경식물이 가득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읽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가 삶의 모토(신조)’라는 그분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리인 것 같다. 집을 ‘작은 사회’에 빗댄 ‘개미도시’님도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고통받은 분이셨다. 부모가 집을 관리할 여유가 안 되는 환경에서 살다가 친구 집에서 우연히 본 수챗구멍이 너무 깨끗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정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을 돌보셨다. ‘맥시멀리스트 주부’ 박희경님의 철학도 좋았다. 이건 직접 들어봐야 한다.”

물건을 버릴 때면 며칠을 생각한다는 50대 주부 박희경씨는 영상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아온 흔적들, 나와 함께했던 것들, 나랑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지금은 눈에 보여요. 물건이 ‘나’예요. 이제 저는 늙어가잖아요. 물건들도 같이 늙어갈 건데,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민씨는 “연세가 있고 노하우(비결)나 철학이 확실한 분들이 반응이 좋다”면서 “자신만의 신념과 노하우가 아니라 그럴듯한 수납용품으로 정리한 사람은 결국 구독자가 다 알아본다. ‘현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을 섭외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고 했다.

철제선반 회사 대표이자 유튜브 정리마켓을 운영하는 정코(본면 민효기)가 지난 10월 16일 경기 김포시 대곶면의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고수들의 정리는 초보들에겐 멀게 느껴진다. 정리 컨설턴트로서, 정리를 잘 못 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정리는 어쩌다 한번 큰마음먹고 하는 게 아니라 ‘습관’이다. 딱 10분씩만 시간을 정해놓고 정리하는 걸 추천한다. 물건 옮기기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다.”

-만약에 책상 정리하려고 서랍 속 물건을 다 꺼내놨는데, 10분이 지났다면?

“장소를 정리하려고 하지 마라.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컵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집에 있는 컵을 다 가져오는 식이다. 정리의 시작은 물건에 위치를 정해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이 컵의 자리는 여기야’라고 정해주면, 쓰고 다시 갖다 놓는 게 어렵지 않다.”

-짐이 많은 집을 찾아 정리해주는 코너도 있다. 정리가 잘 안 되는 집들의 공통점은 뭔가.

“방금 말한 대로 물건의 제 위치가 없다. 물건을 즉흥적으로 놔두는 경향이 보인다. 물건의 자리가 안 잡혀 있으니 그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조명이 어둡고 환기가 안 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정리 다 하고 나서 문을 활짝 여는 순간 ‘공기가 좋아졌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다. 유튜브를 통해 정리해주면서 ‘정리의 힘’을 많이 느꼈다. 어느 모녀의 집을 정리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후 예전에 잘 살았던 기억 때문에 옷을 못 버려 문을 여닫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심리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정리 후 마음의 변화도 찾아와 지금은 잘 살고 계신 것으로 안다.”

-유튜브에 소개된 정리 고수들이 거의 30~60대 여성이다. 집안 정리를 여성에게 의존하는 현실이 드러나는 것 같다.

“아내도 전업주부다. 우리가 이렇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살림’인데 다들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다. 살림하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고, 남자 살림왕도 많이 다뤄보고 싶다. 최근에 유튜브 출연자와 구독자들을 모아 살림에 관해 수다를 떠는 살림교류회를 세 차례 열었는데, 연말엔 시상식을 해볼까 한다. 언젠가 내가 회사에서 상을 받아 가니 아내가 그런 말을 했다. ‘부럽다, 나는 누가 상 안 주는데….’ 살림에 대해서도 상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살림왕 시상식’ 아이디어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떠올렸다. 민씨는 철제선반 회사 사장이라는 사실을. 사업 발전을 위해 ‘정리의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혹은 철제선반 회사 나름의 홍보 전략일까.

-경영자이자 정리 유튜버다. 정리와 살림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결국은 회사 수익을 위한 건가.

“일본에 트랙터와 경운기, 굴착기를 만드는 얀마라는 회사가 있다. ‘쌀에 대해 진심’인 회사라서 쌀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튜브는 유튜브대로, 기존 회사 운영과는 별개로 운영할 생각이지만, 우리 회사도 언젠가는 정리에 대해 진심인 회사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꿈은 있다. 이미 내 인생이 ‘정리’에 빠져들어 가버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보여주기 위한 정리가 아닌, 자신의 철학에 기반한 ‘현실 정리’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유튜버 생활을 할 계획이다.”

[고수들의 정리팁]

‘정코’ 민효기씨가 운영하는 채널 ‘정리마켓’에 소개된 다양한 정리법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출처: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커튼을 거는 얇은 압축봉을 이용하면 주방용품을 ‘공중부양’할 수 있다. 압축봉을 싱크대 상부장 안쪽에 걸고 키친타올과 위생백을 끼워서 사용하면 편리하다. 타올 끝을 아래로 늘려서 문을 닫고 뜯을 수도 있다.

출처: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부피가 큰 텀블러나 물병은 세운 채로는 싱크대에 잘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짧고 얇은 압축봉을 앞뒤로 배치해 기둥을 만들어주면 텀블러나 물병을 눕혀서 쌓아 올릴 수 있다.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정리마켓’엔 살림왕들의 재활용 수납법이 자주 소개된다. 50대 주부인 유튜버 ‘꿈마’가 정리마켓에 출연해 우유통으로 만든 수납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주 먹는 약 등을 보관한다고 한다. 글루건으로 우유 뚜껑을 붙여 서랍 손잡이를 만든 뒤 실리콘 테이프로 상부장 아래 붙였다.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68세의 주부 이정인씨가 ‘정리마켓’에 출연해 보여준 재활용 액세서리함. 계란판에 알코올을 뿌려 햇볕에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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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유튜브 ‘정리마켓’에 출연한 주부 박은주씨(41)의 가방 수납법. 두툼한 쇼핑백에 가방을 넣어 책을 진열하듯 세워놓았다. 가방을 뽑았다가 다시 꽂을 수 있다. 그는 “보여야 쓰지, 안 보이면 안 쓰기 때문에 보이도록 책처럼 수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대개는 식탁에서 밥만 먹지 않는다. 책을 읽고 메모를 해야 할 때도 많다. 유튜버 ‘토깽이 아줌마’가 정리마켓에 출연해 보여준 식탁 밑에 부착된 미닫이통. 문구류와 수저를 수납했다.

유튜브 ‘정리마켓’ 갈무리


50대 주부인 유튜버 ‘꿈마’가 정리마켓에 출연해 보여준 밀대 고정법. 우유통 재활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뚜껑의 밑부분을 잘라 밀대 고정 홀더를 만들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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