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왼손잡이 된 쩡야니… ‘입스’와 싸우는 골퍼들
11오버파, 공동 63위. 변변찮은 성적일 수 있지만, 쩡야니(36·대만)는 감격했다. ‘불치병’으로 여겼던 퍼트 입스(yips)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쩡야니는 지난 4일(한국 시각) 끝난 메이저 대회 AIG 여자 오픈에서 무려 6년 10개월 만에 컷을 통과, 4라운드까지 경기를 치르고 상금 2만485달러(약 2850만원)를 받았다.
2011년부터 109주 연속 세계 1위로 군림하며 ‘여자 타이거 우즈’라고 불렸던 쩡야니는 최근 10년 사이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허리·고관절 부상 후유증도 있었지만, 퍼트 입스가 가장 문제였다. “연습 때는 괜찮은데 시합만 나가면 샷이 되지 않아 정말 많이 울었다. 샷이 겁나고, 퍼트하는 건 더 무서웠다”고 했다.
오른손잡이인 쩡야니는 올해부터 반대 방향으로 서서 왼손으로 퍼트하고 있다. 골퍼의 인생을 끝장낸다고 해 ‘보이지 않는 킬러’라고 불리는 입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까지 시도한 끝에 골프 선수로서 7년 만에 상금을 받았다. 쩡야니는 AIG 여자 오픈 2라운드가 끝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온 내가 자랑스럽다”며 “여전히 골프에 열정이 있고, 골프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스 시달리던 쩡야니, 퍼트만 왼손으로
입스는 심리적, 신체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연구가 많지만, 여전히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골퍼가 이유 없는 압박감으로 갑자기 부진을 겪을 때 그 원인을 입스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쩡야니가 꼭 그랬다. 쩡야니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메이저 5승을 포함해 LPGA 투어에서 15승을 올렸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에 이어 여자 골프를 평정하고 장기 집권할 태세였다. 그런데 2012년 3월 기아 클래식 우승 이후 다시 정상에 서지 못했다. 정상이 아니라 컷 통과도 못 하는 경우가 늘었다. 상금 순위는 2018년부터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이후로는 매번 컷 탈락해 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작년 말 새로 영입한 스윙 코치가 쩡야니에게 왼손잡이처럼 퍼트를 해보라고 권했다. 샷은 나쁘지 않은데, 지금의 퍼트 실력으로는 답이 없으니 파격적인 시도라도 해보자는 것이었다. 쩡야니는 이전에도 퍼트 입스를 극복하려고 그립 바꿔 잡기, 스탠스 변경, 롱 퍼터 도입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손이 너무 떨려 퍼터를 잡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왼손 퍼터는 괜찮았다. 지난 6월 왼손 퍼트로 연장 끝에 예선을 통과해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본선에선 컷 탈락했지만, 이번 AIG 여자 오픈에선 라운드당 31개라는 나쁘지 않은 퍼트(144명 중 53위)로 최종 라운드까지 경기를 이어갔다.

◇눈 감고 퍼트, 한 손 어프로치도 등장
쩡야니의 기적 같은 부활로 다른 골퍼들의 눈물겨운 입스 극복기도 화제에 올랐다. PGA 투어 통산 82승의 ‘전설’ 샘 스니드(미국)도 퍼트 입스를 해결하려고 기묘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갑자기 퍼트 입스가 찾아오자 홀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 공을 가랑이 사이에 두고 앞으로 밀어치는 타법을 선보였다. USGA(미국골프협회)가 규정에 어긋나는 퍼트 스트로크라고 금지하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여전히 홀을 정면으로 보는 자세로 바꿨다. LIV 골프에서 활약하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가 한때 이 자세를 모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럽 투어에서 뛰던 제이슨 팔머(잉글랜드)는 2014년 그린 주변 어프로치샷 입스로 고생했다. 40야드 안팎의 짧은 거리에서 일반적인 자세로는 전혀 샷이 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친 공에 맞을까 봐 동반자나 갤러리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는 말까지 했다. 여러 시도 끝에 그는 오른손으로만 웨지 클럽을 잡는 ‘한 손 샷’을 고안했다. 벙커샷도 한 손으로 쳤다. 그는 이 타법으로 입스를 극복한 뒤 다시 평범한 타법으로 돌아갔다.
퍼트 불안에 고민하던 조니 밀러(미국)는 1994년 AT&T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 당시 일부 숏퍼트 때 두 눈을 모두 감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47세 나이로 우승했다. 재미교포인 케빈 나는 2012년 드라이버를 들면 백스윙을 제대로 못 하는 입스를 겪었다. 그는 스윙 루틴을 단순하게 해 망설일 시간 자체를 줄였고, 이후 PGA 투어에서 4승을 추가했다.
☞입스(yips·샷 실패 불안 증세)
알 수 없는 이유로 익숙한 동작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상. 신체 특정 근육의 수축과 경련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분류되며, 심리적·신체적 요인이 복잡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다. 1927년 토미 아머가 US오픈에서 우승하고서 약 한 달 뒤에 한 홀에서 10타 이상을 치더니 “입스가 온 것 같다”고 말해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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