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와 카레’ 가짜뉴스의 탄생

사진 제공 = OSEN

이치로의 ‘나 혼자 산다’

‘정열대륙(情熱大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TBS 계열인 일본 마이니치방송(MBS)의 다큐멘터리 장르다. 1998년부터 시작해 26년이나 이어졌다. 관찰 카메라를 통해 유명 스타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내용이다. MBC의 인기 예능 ‘나 혼자 산다’와 비슷한 포맷이다.

최신작은 스즈키 이치로 편이다. 22~23일 2회분으로 방송됐다. 은퇴한 야구 선수의 일과를 24시간 밀착했다.

1973년생, 나이가 51세다. 현역을 떠난 지도 5년이 넘었다. 아스라한 스타의 삶 아닌가. 무슨 대단한 게 있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역동적이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다. 이것저것 하는 게 무척 많다.

촬영 시기는 지난 8월이다. 제작진이 시애틀을 찾았다. 주인공이 여전히 그곳에 집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 인접한 곳이다. 미국에서 저런 동네는 꽤 비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 장면은 아침 운동으로 시작한다. 집 안에 큼직한 트레이닝 기구를 11개나 들여놨다. 널찍한 거실에 한가득이다. 본 적도 없는 최신 기계들이다.

분명 몸풀기라고 했다. 그런데 땀을 비 오듯 쏟아낸다. 숨도 턱까지 차오른다. 입으로는 “아아, 힘들어”를 연발한다. 그래도 멈출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디가 한계인가. 그걸 찾는 곳이다. (나이 때문에) 머지않아 할 수 없게 되니까, 무리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무리하고 싶다. 지금 하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기는 싫다.”

집주인의 얘기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보탠다. “야구 선수로 계속 있고 싶다. 노화로 약해진 점을 감안해 현역 때보다 더 빡빡한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이다.”

거실에 마련된 기구로 운동하는 모습. MBS ‘정열대륙’의 한 장면

식사 메뉴, 카레가 아니라고?

이어지는 씬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직접 운전한다. 약 30분 거리에 있는 매리너스의 홈구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가 뛸 때는 세이프코 필드, 지금은 T-모바일 파크로 불리는 곳이다.

시간은 오후 1시께, 간단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출발했다. 차내에서 제작진과의 대화다.

이치로 “(아침) 식사는 스스로 준비한다.”

PD “아침 겸 점심으로는 뭘(드시는지)?”

이치로 “요즘은 토스트를 먹는다. 토스트와 수프.”

PD “???”

이치로 “콘 수프, (브랜드 이름인 듯) 아사쿠마 콘 수프. 이건 어렸을 때부터 먹었는데, 지금도 맛있다.”

이 대목에서 제작진이 의문을 제기한다. “카레(라이스) 아닌가? 아침식사는 카레라는 전설이 아직도…”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정말이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생각인가. (웃음) 10년도 훨씬 넘었다. 아직도 그 말을 많이 듣는다. 확실히 잘 먹기는 했다. 그랬는데, 맥스 80(최대한 80%)까지는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뜻밖이다. 매일 카레만 먹은 게 아니란다. 뜻밖의 말은 이어진다.

“1년을 365일로 치면 (카레는) 100끼도 안 먹었을 것이다. 아마 듣는 사람들은 1년 내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데 ‘그 편이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그랬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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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전설의 시작

사실 야구팬, 혹은 그의 팬들에게는 초급 레벨에 해당하는 기본 지식이다. ‘이치로는 매일 아침마다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그것도 수년간이나 (어쩌면 선수생활 내내) 계속된 루틴이었다.’

그의 투철한 프로 정신을 나타내는 에피소드였다. 언제나, 늘. 한결같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정도로 애를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잘못 알려진, 왜곡된 사실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다. 기가 찰 노릇이기도 하다. 많은 보도에 인용된, 너무나 유명한 일상이다. <…구라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카레에 대한 집착은 훌륭한 얘기의 소재였다. 괜히 ‘가짜 뉴스’를 전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그 출발부터 거슬러 올라가 봐야겠다.

지금부터 16년 전이다. 그러니까 2008년 시즌이다. 그의 35세 때다. 시애틀 주민이 된 지 7년 째였다. 커리어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다.

당시도 TV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공영방송 NHK가 만들어서 방영했다. ‘메이저리거, 이치로 스페셜’이라는 제목이었다. 역시 동행 취재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이다.

그중 한 장면이다.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아내가 가스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운다. 식탁에는 이치로 혼자다. 앞에 놓인 것은 흰 접시와 주스가 담긴 컵 하나뿐이다. 메뉴는 역시 카레라이스였다.

맑고 낮은 일본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시간은 12시 조금 전이다. 메이저 이적 7년째, 메뉴는 항상 아내가 직접 만들어준 카레다.”

현장의 문답이 이어진다.

PD “7년간 계속 같은 점심을 먹는 것인가?”

이치로 “(제작진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카레 이외에 뭐가 있었나….”

그러더니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기억나는 게 없다. (카레 이외에) 다른 건 있을 수가 없다.”

이 정도면 확실한 멘트다. 더 이상 분명할 수 없다. 기억에도 없고, 다른 건 생각나지 않는다니. 가장 신뢰도가 높은 공영 방송에서 진지하게 한 얘기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한 말이다. 의심의 여지는 100% 차단된다.

2008년 NHK 방송 장면. “정말로 7년간 매일?”이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치로는 “다른 것은 기억에 없다”라고 대답한다. NHK TV ‘메이저리거, 이치로 스페셜’ 중에서

핵심은 일관성

이때부터다. 그와 카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매일 아침 카레만 먹는다는 말은 정설로 굳어졌다. 이후 관련 제품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열풍이 불었다. 습관이 만드는 위대한 힘이라는 칭송도 쏟아진다. 뇌과학자까지 등장한다. ‘성공한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생활 패턴이 중요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걸 본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나도 15년째 한 가지만 먹는다.’

그런데, 이게 다 오해였던 셈이다.

아마 편집 탓일 지도 모른다. 방송된 내용은 일부일 뿐이다. NHK도, MBS도 녹화 파일 원본에는 전후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계산의 문제다. 홈 경기만을 따지면 그럴 수 있다. MLB는 1년에 162게임을 한다. 이중 절반(81G)은 원정이다. 그러니까 이치로의 말은 ‘홈에서 할 때는 아침에 카레만 먹는다. 7년 내내 똑같았다’는 뜻이리라. 그게 방송용으로는 365일을 뜻하는 ‘매일’이라는 단어로 전달됐을지 모른다.

이치로의 식사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버전이 존재한다. 햄버거, 또는 피자의 경우다. 원정지에서는 늘 똑같은 프랜차이즈 메뉴를 선택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전국 어디서나 맛과 열량, 품질이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맛이나 기호는 다음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컨디션 유지다. 즉, 일정한 몸 상태를 위한 노력이다. 그래야 변수가 줄어든다. 그래야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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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기억

평생 이치로의 배트를 만든 사람이 있다. M사의 장인 구보타 이소카즈라는 인물이다. 60세가 넘도록 생산 라인에서 일했다. 그가 은퇴할 무렵에 한 말이다.

“모든 선수들이 수시로 (방망이의) 무게와 길이를 바꾼다. 무더운 여름이나, 타격감이 떨어질 때는 조금 가벼운 걸 쓴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그렇게 된다. 그런데 이치로 씨는 달랐다. 항상 일정한 것을 요구한다.”

계속된 장인의 기억이다.

“몸이나 컨디션에 따라 배트를 조절하는 게 아니다. 이치로 씨는 늘 자기 자신을 배트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그걸 실천했다. 그런 고객은 그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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