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는 22년 동안 통산 303승에 4875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투수가 있습니다. 탈삼진 기록은 메이저리그 좌투수의 최다탈삼진 기록이기 때문에 기록만 봐도 누군지 짐작하시는 분 많을 겁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좌투수로 지난 2015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빅 유닛‘ 랜디 존슨입니다.
김병현 선수의 애리조나 시절 팀 동료로 현역시절부터 국내에 인지도가 높았고, 딸인 윌로우 존슨이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에서 반 시즌 가량을 뛰었던 시기에도 그의 이름은 여러 차례 미디어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대기만성형 선수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의 경력은 각성 이전인 1992년까지와 각성 이후인 1993년 이후로 나뉘는데 93년은 만 29세, 우리 나이로 치면 31살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간에도 안 좋은 투수는 아니었습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시즌 동안 49승 48패, 3.9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몬트리올에서 시애틀로 넘어와서 첫 풀시즌이었던 1990년부터는 매년 200inn이상을 투구하면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투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기의 특급이었느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제구는 완성되지 않았고, 9이닝 당 9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6개 가까운 볼넷을 내줬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ERA+(타격의 wRC+와 같은 기준으로 보시면 됩니다.)는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101로 딱 평균 수준의 자책점을 내주는 투수였습니다.
이 당시의 자신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The word 'potential' used to hang over me like a cloud.
‘잠재력’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각성 이후인 1993년부터 은퇴 시즌인 2009년까지 17시즌 동안의 기록은 가공할만합니다.
254승 118패, 3.13의 평균자책점에 무려 405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무려 본인의 통산 탈삼진의 83%를 20대의 마지막 해부터 40대 중반까지 기록한 겁니다. 9이닝 당 탈삼진은 11개로 평균 두 개가 늘었고, 볼넷은 2.7개로 3개가 줄었습니다. ERA+는 무려 146이었습니다.
그의 각성 전후를 놓고 놀란 라이언의 조언이 컸다는 부분은 많이 알려져 있고 이건 랜디 존슨 본인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한 가지. 그건 준비였습니다.
지금까지 야구에서 대기만성의 대표적 인물로 불리는 랜디 존슨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럼 우리 KBO리그를 대표하는 대기만성의 대명사는 누가 있을까요? 우리 리그에도 이렇게 뒤늦었지만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 선수가 있다면 뭔가 이 과정에 있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때마침 소개하고 싶은 두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한 명은 현역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지난 주말 은퇴 경기와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먼저 현역 선수를 말씀드리죠. 기아 타이거즈의 최형우 선수입니다.

현역 최다 우승반지 6개(삼성시절 4개+기아 2개)의 보유자 최형우 선수는 지난 6월 24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통산 1700타점을 돌파했습니다.
1984년 1월 생인 그는 올해 41세로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는 통상적인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는 괴물 같은 시즌을 보내는 중입니다.
7월 8일 기준, 출루율을 기반으로 한 타석당 공격 지표인 wOBA가 0.423로 1위, 조정 득점 창출력인 wRC+도 164.5로 1위, 심지어 한 타자로 1번부터 9번까지 라인업을 구성할 때 한 경기에서 몇 점을 득점하는지를 나타내는 RC/27도 9.5점으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최형우 선수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그는 2002년에 포수로 삼성에 입단했지만 2005년 시즌을 끝으로 방출을 당했습니다. 그때까지 1군 출전 경기수는 단 6경기에 불과했습니다.
2006년 경찰청에서 야구단을 창단했고, 최형우는 경찰청 야구단에 창단멤버가 됐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포수 마스크를 벗고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꾼 것이죠.
“치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어요. 잘 될 거라는 확신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당장 앞길이 막막한데. 어차피 저는 경찰청 입단이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여기서 제 장점을 살리는 타격을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그 생각을 가지고 딱 하나를 했다고 합니다.
“훈련했어요. 진짜 미친 듯이요.”
2007년 퓨쳐스 공동 홈런왕을 차지하고 다시 삼성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2008시즌부터 최형우의 본격적인 프로 경력이 시작됩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스물여섯 살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한 건데 그때는 사실 이런 기록들을 만들 거라는 것도 또 지금 이 나이까지 뛸 거라는 것도 상상도 못 했어요. 사람일 정말 모르는 거예요.“

최형우 선수와 커리어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 최선수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사람 일 모른다’였습니다.
“오늘 제가 4안타를 쳤다고 쳐요. 그렇다고 내일 제가 몇 안타를 칠 거라는 거 모르잖아요. 하루하루도 그런데 그게 1년 단위가 되면 더 몰라요. 진짜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요.“
최형우 선수와의 대화 마무리는 남아있는 한 인물을 더 소개한 후에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구인지 너무 짐작이 되도록 설명을 드렸네요.
지난 주말에 은퇴경기와 은퇴식을 치른 바로 SPOTV 김재호 해설위원입니다. 김재호 위원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대기만성'이라는 이 글을 주제와 랜디 존슨과 최형우를 함께 엮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김재호 선수는 특유의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유. 제가 어떻게 랜디 존슨이나 최형우 형 같은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요."

김재호 위원은 이렇게 손사래를 쳤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재호 위원의 기다림의 기간은 무려 10년이었거든요. 제가 지난 월요일 오전에 김재호 위원의 선수시절 10년의 기다림에 대한 글을 SNS에 올렸는데 두산 팬들을 제외하고는 그 기다림의 10년을 잘 알지 못하시더라고요.
김재호 위원과의 대화는 지난 은퇴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은퇴 경기와 은퇴식에 대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었는데 정말 긴장을 많이 했던 하루였다고 했습니다.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하루가 지나간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생각이 안 납니다.”
라면서 지난 일요일을 회상했습니다. 이벤트 중 인상적이었던 흙 담기와 입맞춤은 본인의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저는 이 장면이 은퇴식의 백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베어스의 ‘불사조‘ 박철순의 마운드 키스 장면의 대를 잇는 낭만적인 느낌도 받았습니다.

중앙고 출신의 김재호 위원은 2004년 1차 지명을 받으면서 두산에 입단했습니다. 바로 1년 전인 2003년 손시헌 선수(현 랜더스 코치)가 신고선수로 입단했는데 강한 어깨를 가진 손시헌이 공수에서 코칭스태프의 눈을 먼저 사로잡습니다. 그때부터 10년 김재호의 기다림이 시작됐습니다.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김재호가 군을 전역하고 손시헌이 상무에 입대했던 2008년, 112경기에 출전하면서 주전 도약의 기회를 얻었지만 이 때는 본인의 야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김재호 위원은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와 시헌이 형이 동시에 입대를 했던 시기가 있어서 대수형(이대수 선수)을 트레이드로 데려왔어요. 그러면서 제가 2008년에 대수형과 경쟁을 펼치게 됐죠. 처음으로 100경기가 넘게 출전을 했지만 수비의 불안감과 타격에서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좌절을 했습니다. 그다음 시즌은 유격수가 아닌, 2루수로 경기를 많이 나가게 됐고, 그러면서 다시 내야 백업선수가 됐죠. 이 기간 동안 시헌이 형, 대수형이랑 대화도 많이 나누고 형들에게 위로도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1년, 2년...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흐르다 보니까 어떤 위로도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변화란 것은 결국 본인이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수비였습니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비를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어 보자!' 이후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어요. 오로지 수비 훈련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비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하다가 결국 가장 가까운 수비 코치님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수비 능력을 향상하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습니다."
손시헌 선수가 팀을 떠난 2014년부터 김재호 위원은 본격적으로 유격수라는 수비위치에서 주전의 기회를 잡습니다. 그리고 2015년 부임한 김태형 감독과 함께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7년간의 두산의 전성기는 김재호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그 운이라는 거는 동료로서 좋은 선수들을 만났던 거고요. 그래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오늘 이 글의 결론을 향해 가보겠습니다. 10년이라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수비'를 가다듬으면서 자신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재호 선수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출발을 하게 되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늦은 출발을 하게 되는 환경은 다양할 거예요. 하지만 결국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스스로 어떤 과정을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 과정을 잘 만들었다면 기회가 왔을 때 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김재호 선수는 이렇게 준비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제가 최형우 선수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덧붙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랜디 존슨, 김재호 그리고 최형우 선수 모두 '준비'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최형우 선수의 이야기에 너무 웃으시면 안 됩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늦었다 하는 것도, 빠르다 하는 것도 없어요. 그냥 항상 똑같이 준비하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 우영 형님도 봐봐요. 그 영화(승부) 그렇게 잘 될 거라는 거 알았어요? 몰랐죠? 그러니까 형님도 배우로 몇 년 뒤에 탑스타 될 수도 있다니까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항상 준비하세요."
<SBS스포츠 정우영>
덧붙여서 최형우 선수의 어제 다리 부상이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