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side The Park] 정용검 캐스터

조회수 2024. 2.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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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er-tainer

야구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직관의 매력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다만 모두가 매일 야구장을 찾을 순 없기에, 우린 많은 경기를 온라인 중계를 통해 접하곤 한다. 이때 중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바로 캐스터다. 이들은 깔끔한 발음과 목소리를 통해 경기 실황을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며, 때론 듣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직관 이상의 짜릿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캐스터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졌지만, 오늘 소개할 주인공의 매력은 단연 이것이다. 바로 1회부터 9회까지 줄어들지 않는 텐션과 경기의 희열을 극대화하는 강렬한 샤우팅. 다른 것보다도 시청자에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그에게, ‘Caster-tainer’라는 호칭을 붙여보고자 한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Mingy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1월 17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캐스터 정용검이라고 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은 눈에 보일 때마다 가끔 봤는데, 최강야구 덕분에 제게도 기회가 온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요새 근황은 어때요?
쿠팡 플레이에서 AFC 아시안컵 중계를 맡고 있고, ‘클리퍼비전’이라고 해서 NBA(미국 프로농구) LA 클리퍼스 경기 중계도 하고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TV에서도 오랜만에 농구 경기도 맡았어요. 그래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팀 편파 중계도 하는 중입니다.

MBC SPORTS+(이하 엠스플) 소속일 때와 비교하면 바쁜 정도는 어떻다고 느끼나요?
비슷해요. 직장인이었던 생활이 길다 보니까 일주일에 5일은 일해야 스스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만 프리랜서는 일정의 편차가 크다는 게 특징이죠. 그래도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바쁘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학부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잖아요. 방송인의 꿈을 꾼 게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전역하고 나서 스물다섯 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사실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게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근데 작품을 출품하려 했는데, 제작자로서 제 역량이 별로 안 좋았어요. 선배들이 좋은 평가를 안 내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능력이 없는 건가?” 싶었죠. 그러다 제가 학교 댄스동아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몇 번 봤는데, 오히려 작품을 만들 때보다 칭찬을 더 받았어요. 거기다 발표 수업할 때마다 발표도 자주 맡았고요. 그러면서 막연히 아나운서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나운서 중에서도 스포츠 캐스터로 진로를 정한 계기는 뭐였나요?
처음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꿈꾼 건 아니에요. MC, DJ, 앵커처럼 모든 영역에 길을 열어놓고 있었죠. 근데 당시 제가 축구를 되게 좋아했거든요.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한 방송국 PD님과 경기를 뛰었는데, 저보고 축구를 곧잘 한다면서 축구 중계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내셔널리그(실업 축구리그) 중계를 맡았는데, 그 순간부터 이 직업이 즐겁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뒤에 다른 방송국에서도 활동하다가, 엠스플에서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 캐스터 생활을 시작했어요.

여러 종목을 담당했는데, 야구 중계를 본격적으로 맡은 건 언제였나요?
제 선택은 아니었어요. 앞서 말했듯 원래 축구를 좋아했고, 처음엔 축구 중계를 메인으로 했어요. 근데 엠스플이 2012년에 메이저리그(이하 MLB) 중계권을 사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MLB 중계 업무량이 엄청나거든요. 그러면서 엠스플이 야구 쪽에 비중을 두기 시작하니까 저도 MLB로 넘어가게 됐어요. 물론 대한민국에서 야구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어느 정도 관심사는 있었지만, 솔직히 그전까진 축구에 비하면 잘 챙겨보진 않았어요.

비교적 관심이 적은 종목이었던 만큼, 적응하면서 어려움도 있었겠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종목도 종목이지만, 스포츠 캐스터를 꿈꾼 이후로 이 생활을 이어간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중계 자체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던 데다 캐스터는 일반 팬들보다 종목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잖아요. 야구 특성상 축구와 경기 속도와 흐름이 다르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에서 힘든 점이 적지 않았어요.

적응하면서 많은 선배를 만났을 텐데, 가장 기억나는 사람은 누군가요?
한명재 선배요. 주변에 워낙 훌륭한 선배가 많지만, 명재 선배의 진가는 소위 ‘경기가 터졌을 때’ 나와요. 만약 경기 초반에 점수 차이가 벌어지면 보는 사람들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잖아요. 중계하는 사람도 흥을 내기가 어렵고요. 그럴 때 경기의 텐션을 올리는 부분에서 명재 선배가 정말 탁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제가 선배의 옆자리를 쓴 적이 있었는데, 중계 전에 진짜 준비를 철저하게 하세요. 공부도 많이 하시고. 그런 게 평소 중계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재 선배한테 배운 게 정말 많아요.

한명재 캐스터가 여러 멘트로 유명한데, 선배의 멘트에 영감을 받으려고 한 적은 없었나요?
의식적으로 그런 적은 없어요. 왜냐면 명재 선배의 조언 중에 멘트를 미리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게 있었거든요. 경기 중에 즉각적으로 감정이 나와야지, 그게 안 된다면 캐스터로서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미리 멘트를 써놓는다거나 하진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처럼 의미 있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할지 떠올려보긴 하죠. 그 장면이 짜릿한 순간으로 남을 누군가에게 최고의 기억으로 남겨주고 싶어서요.

목을 관리하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평소에 찬물을 잘 안 마셔요. 찬 게 목에 안 좋다고 해서 그거 하나는 철저하게 지키고 있어요. 그 외엔 도라지청처럼 목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는 정도입니다. 또 조금이라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곧바로 약을 먹고요. 아, 그리고 캐스터가 되고 나서 노래방을 잘 안 가요. 원체 흥이 많은 성격이라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는 걸 좋아했는데, 그게 목에 무리가 간다고 들었어요. 그다음부터 노래방을 의식적으로 안 가기 시작했어요. 근데 안 가다 보니 이젠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요샌 많아야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안 가요.

대신 스트레스를 분출할 방법이 사라져버린 것 아니에요?
이젠 중계하면서 풀죠. (웃음) 경기 중에 하도 소리를 지르니까요. 게다가 방송할 때 말고는 평소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몸속에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퇴근하고 집에 가면 그저 눕기 바빠요.

#최강 캐스터

최강야구 출연을 위해 퇴사를 결정했는데, 퇴사를 결정하면서 불안감은 없었나요?
엄청 불안했죠. 근데 장시원 PD님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그 전에 PD님이 만든 ‘도시어부’라는 방송을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왔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죠. 최강야구 말고도 다른 일도 잡으려고 연락을 돌리기도 했고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최강야구를 선택한 데는 어떤 게 영향을 줬나요?
무엇보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싫었어요. 아무리 봐도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데, 심지어 제게 먼저 섭외가 온 건데, 그 자리를 절대 놓칠 수가 없겠더라고요. 설령 그 선택으로 제 인생이 불확실해질지라도요.

첫 시즌에 “내 유일한 직장인데 지면 안 돼!”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에 진심도 꽤 담겨 있었나 봐요.
당연하죠! 직장인분들한테 물어보세요. 예를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창업처럼 본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그 흥망성쇠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걸려 있다고 가정해봐요. 자신의 운명이 남한테 달린 거예요.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솔직히 도박과 다를 게 없잖아요. 진짜 운에 기대서 하는 거니까요.

특히 작년 시즌 마지막 두 경기를 전부 잡아야 폐지를 면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설마 했던 상황이 벌어질 뻔한 거잖아요.
최강야구는 제게 인생을 건 도박이에요. 프리랜서로 나온 직후에 최강야구 말고는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게 없는 상황인데, 없어지면 큰일이잖아요. 심지어 시청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경기에 져서 폐지되는 거니까 더 미치는 거죠. 작년에 강릉영동대 2연전, 연천 미라클, 대학야구 올스타까지 총 네 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딱 2승만 하면 되는 거였잖아요. 근데 대진표를 봤을 때 강릉영동대를 무조건 잡아야 하겠더라고요. 뒤 두 팀이 전력이 좋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첫 두 경기에서 승률 7할을 확정 짓고, 부담감 내려놓고 나머지 두 팀도 잡아서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가자고 얘기했죠. 만약 2승에서 끝나면 가평으로 가야 하는데, 가평은 너무 추우니까요. 근데 영동대에 두 번을 다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모두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겠네요.
제작진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설마 앞 두 경기를 다 지겠냐 싶었겠죠. 그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어요. 스태프들도 이게 생업이니까, 경기가 끝나고 우는 분도 있었고요. 또 출연진 중에서도 (이)대호 형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돈을 그다지 많이 벌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에요. (이)대은이나 (신)재영이, (박)재욱이, (김)문호, (정)의윤이… 이 선수들이 그동안 얼마나 벌어놨겠어요. 그래서인지 폐지 위기 직전까지 갔을 때 분위기가 진짜 안 좋았죠.

그만큼 마지막 두 경기에 임하는 분위기가 평소완 달랐을 것 같아요.
전 엄청 비장했죠. 신발, 바지, 셔츠 색깔부터 시작해서 제가 가진 모든 징크스를 다 지키려고 했어요. 근데 오히려 베테랑 선수들은 너무 부담 갖지 말자고, 절실하게만 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지니까 즐길 건 즐기고 웃으면서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고척스카이돔에서 마지막 경기까지 잡고 “2024시즌에 뵙겠습니다!”라는 멘트를 했는데, 그땐 진짜 울컥했어요.

잠실에서의 2023년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김선우 해설위원과 MVP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스포츠의 특성상 캐스터와 해설은 주인공이 될 수 없어요. 언제나 보조적인 역할인데, 최강야구는 늘 저희를 주인공처럼 대우해주시고 정말 중요한 존재라고 강조해주세요. 또 이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 마음 씀씀이가 정말 남다르다고 느껴요. 당장 7할 승률을 확정했을 때도 마음고생 했을 가족들에게 꽃이랑 몬스터즈 캐릭터 인형을 주셨거든요. 누군가는 그게 별 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생업이 달린 상황에서 마음을 졸였을 사람들을 신경 써줬다는 게 얼마나 감동적인 일이에요.

어느새 세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 시즌에 돌입하는 각오가 궁금해요.
세 번째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방송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거든요. 어떤 프로그램이든 세 번째 시즌이 중요하다고요. 첫 시즌은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두 번째 시즌은 그 여파를 이어가는 거고, 3년 차엔 더 오래 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는 거죠. 최강야구도 마찬가지예요. PD님은 이번에도 7할 승률이라는 목표를 유지하실 테고, 아마 그 목표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기준이 있으니까 선수들도 열심히 하고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팬분들께서도 이번 시즌에 저희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즐기신다면, 세 번째를 넘어 오래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근데 뭐…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겨야죠. (웃음)

올해도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서 이겨야 하겠네요.
그래서 선수들한테 그렇게 잔소리를 하게 돼요. 저보다 어린 선수들한테는 “나도 요새 건강 때문에 술 안 먹는데, 야구선수가 이렇게 술 먹어도 되는 거야?!”라고 하기도 하고요. 솔직히 웃기기는 해요. 어느 캐스터가 운동 선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겠어요. 제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기도 하고, 그전까지는 아무리 친한 선수여도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간섭은 일절 안 했죠. 근데 지금은 제 운명이 이 선수들한테 달렸으니까 짓궂게 얘기하죠. 선수들도 저보고 “이젠 형이 우리 엄마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주로 잔소리를 듣는 선수는 누군가요?
의윤이요. 맨날 “홈런 치라고 데려왔더니, 성적이 이게 뭐야?!”라고 혼내요. “타율도 2할 6푼 언저리에… 타율은 그렇다고 쳐도 대호 형이 벌써 4개나 쳤으면 넌 8개는 쳤어야지, 넌 아직 30대인데!”라고 압박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의윤이가 훈련을 엄청 열심히 했더라고요. 작년에도 독립구단들 전지훈련도 따라가서 운동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올해는 거기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작년 성적 보니까 뭔가 그 운동법이 안 맞는 것 같았거든요. (장난) 하지만 이렇게 잔소리를 해도, 제가 선수 생활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진심으로 혼낸다기보다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장난을 치는 거죠.

최강야구로 야구에 입문한다는 팬들이 늘고 있어요. 캐스터로서 소감이 어때요?
제작진에게 공을 돌리고 싶어요. 왜냐면 이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에 야구팬들을 모시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도 대학생 때 영상을 편집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는 게 진짜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편집하는 작업실을 보면 불이 꺼지질 않아요. 몇 날 며칠을 새면서까지 재밌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시니 존경스러워요.

최강야구 중계 도중 벅찬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었는데, 애착이 가는 선수가 있나요?
작년엔 원성준, 재작년엔 류현인이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지만, 애착이 가다 보니 요즘도 자주 연락하곤 해요. 그 친구들도 가끔 근황 연락을 보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저도 잘하라고 응원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둘을 포함해 몬스터즈 소속이었던 선수들이 프로에서 뛰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겠어요.
남다르죠. 첫 번째로 프로에 간 한경빈 선수도 있고, 윤준호 선수는 원래 지명권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류현인 선수는 어떻게 될지 물음표였거든요. 근데 그 선수가 1군 데뷔도 하고 안타를 치는 걸 봤을 땐 진짜 좋았어요. 또 작년에 (정)현수부터 시작해서 (고)영우, (황)영묵이… 거기다 끝까지 마음 졸이던 성준이도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으니까, 꼭 1군에 올라와서 잘했으면 좋겠어요.

최강야구 이전에 본인의 대표 프로그램이었죠. ‘스톡킹’의 탄생 비화가 궁금합니다.
2019년 겨울에 김바로라고 하는 후배 PD가 전 종목의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마침 그때가 방송국들이 유튜브를 시작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첫 녹화를 하는데, 갑자기(심)수창이 형을 공동 MC로 쓰고 싶다는 거예요. ‘뭐지?’ 싶었어요. 수창이 형이랑 일면식도 없을 때였거든요. 그래도 해설위원 한 명도 있는 게 좋겠다고 해서 같이 진행해봤는데, ‘이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런 포맷은 너무 흔하다 보니 지속 가능할지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근데 수창이 형이, 본인이 선수 한 명을 섭외할 테니 한 번 선수들의 썰을 푸는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첫 게스트로 정우람 선수가 왔는데, 거기서 ‘제로퀵’이 터지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그램이 성공 가도를 달렸는데, 그 원동력이 뭐라고 보나요?
재밌다는 게 컸어요. 그전까진 선수들과 짧게 인터뷰만 해봤지, 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장시간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거든요. 사실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엔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게스트를 모셔도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웃기는 게, 이 프로그램에서는 모두가 ‘본인 덕분에’ 성공했다고 믿어요. 너나 할 것 없이 스톡킹의 성공엔 본인의 지분이 크다고 주장하더라고요. 수창이 형도 자기 덕이라고 하고, 작가님은 대본 덕이라고 하고… 그런 주인의식이 있었으니까 오래 잘 끌고 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본인도 스톡킹의 성공이 본인의 진행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요! (당당)

최강야구의 김선우 위원과 스톡킹의 심수창 위원을 비교해 보면요?
중계는 선우 위원님이랑 하는 게 편하고, 유튜브에서는 수창이 형이 더 편해요. 수창이 형이랑 해설할 때도 나쁘진 않은데, 일단 수창이 형이랑 해설을 많이 하진 않아서요. 만약 중계에서 호흡을 맞춘다면 재밌게 할 자신은 있는데, 표본이 적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김선우 위원은 방송에서 개그 욕심이 있어 보이는데, 사석에서는 어때요?
사석에서도 재밌는 스타일이세요. 근데 제가 ‘선·용·만·사’도 김선우 위원님과 찍고 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최강야구에 합류할 때도 제가 제작진에 위원님을 추천해서 함께하게 된 건데, 유튜브에서 엄청 재밌게 하시더라고요. 가끔은 망가지기도 하시고요. 그 정도로 열정적이고 예능감이 있으시다는 거에 놀랐어요.

본인의 상징적인 프로그램인 최강야구와 스톡킹 중,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요?
(질문이 끝나기 전에) 최강야구요! 스톡킹은 이미 떠나버렸어요. 요즘 스포츠 채널이랑 방송국이 어렵거든요. 최근에 예산도 줄면서, 저랑 수창이 형이 하차하기로 결정했어요. 아마 이 내용이 오늘 유튜브에 업로드될 거예요. 이 자리에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랑 수창이 형은 이제 진행을 맡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죠. 최강야구!

#재미를 줄 수 있도록

하루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는 게 1번이에요. 탈모약부터 시작해서 통풍약이랑 영양제도 먹고요. 혼자서 살다 보니까 이런 걸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그다음엔 일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달라요. 일이 있으면 바로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요, 없을 땐 세수랑 양치만 간단하게 하고 다른 볼일을 본다거나 골프 연습하러 가곤 해요.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엔 뭘 하나요?
침대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도록 합니다. 제 침대가 김태술 농구 해설위원이 준 건데, 이 친구가 몸을 잘 챙기는 선수였거든요. 그래서인지 침대가 엄청 포근해요. 거기 누우면 절대 못 나옵니다. (누워서 보는 콘텐츠 중에 추천할 만한 게 있나요?) ‘이재, 곧 죽습니다’라는 드라마요. 거기 나오는 배우 김지훈 형이랑 아는 사이라 챙겨봤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초등학생 시절에 쌍둥이 형과 LG 트윈스의 마스코트로 선정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죠.
그 당시엔 국민학생이었어요. (헛웃음) 저희 아버지 친구분이 LG에서 일하셨거든요. 그분이 저희 아버지한테 “LG 트윈스에서 쌍둥이 선발대회를 하는데, 너희 아기들 한번 지원해봐!”라고 얘기하셨대요. 그걸 계기로 선발대회에 나갔는데, 마침 그때가 제 외모의 전성기였던 7살이었거든요. 너무 일찍 와버린 전성기 덕분인진 몰라도 그 대회에서 1등을 해버린 거예요. 너무 어렸을 때라 뭐가 뭔지도 모르던 시기였는데, 그때 방송사 인터뷰도 하고, 일간지 1면에 실리기도 했어요.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안 그래도 선생님이 저랑 형한테 모든 반을 돌아다니면서 축하를 받게 시키셨어요. 제가 1학년 4반이었는데, 신문을 들고 1반부터 끝까지 쭉 도는 거였죠. 그래서 그냥 기계적으로 박수를 받은 기억밖에 안 나요. 친구들이야 신기해하고 재밌어했지만, 그땐 마스코트가 된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몰랐으니까요.
 

초대 마스코트였던 입장에서 작년 LG의 우승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형은 열성 LG 팬이 되긴 했는데, 전 딱히 팬이 되진 않았어요. 그냥 LG가 경기할 때 슬쩍 보는 정도였지, 특정 팀의 팬이 된다거나 한 적은 없었거든요. 어쩌면 그런 점 덕분에 중계하면서 편파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새 MBTI가 ‘T’로 바뀌어서 그런지 한쪽에 치우치는 일이 더 없어졌어요.

캐스터 일을 하면서 ‘MC 용검’, ‘용검트랙’, ‘ㅛ검 언니’ 같은 별명도 생겼잖아요. 이 중 어떤 게 애착이 가나요?
그중에선 ‘ㅛ검 언니’요. 제게 언니라는 호칭을 붙여준 게, 어떻게 보면 저라는 사람의 중계 외적인 부분을 본 거잖아요. 저도 평소에 사람들이랑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지 언니라는 호칭과 어울리기도 하고요.

얼마 전부터는 e스포츠 중계도 시작했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어렸을 적에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했다면서요.
완전요.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캐스터가 전용준 캐스터님이었어요.

지금도 게임은 자주 하는 편인가요?
작년까지는 꽤 했는데, 최근엔 잘 안 해요. 확실히 옛날보다 반응 속도가 늦더라고요. 어린 친구들이랑 붙으면 맨날 져요. 주로 발로란트를 하는데, 소위 말해서 점점 피지컬이 떨어지는 거예요. 원래는 제가 게임상에서 돌격 스타일이었는데, 이젠 숨고 기다리게 되고… 이게 이겨야 흥미도 붙고 하는데, 계속 지니까 안 하게 되는 거죠. 대신 요새는 플랫폼이 잘 돼 있어서, 직접 게임을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영상을 봐도 대리만족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엔 직접 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즐기는 편이에요.

e스포츠 중계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재밌다는 거요. 제겐 재미가 최고로 중요한 요소거든요. 발로란트 중계를 처음 하는데, 진짜 재밌더라고요. 또 제 방송을 모니터해보니까, 제 스타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종목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거기다 팬분들도 좋게 봐주셔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중앙 댄스동아리 ‘샥(SHOCK)’의 부흥기를 이끌었다고 말한 적이 있죠. 춤 실력은 여전한가요?
이젠 녹슬었습니다. (웃음) 옛날에 댄스 대회에 나가서 수상한 적도 있었는데요, 제가 잘 췄다기보단 같은 팀이었던 형들 덕이 컸어요. 5명이 한 팀이었는데 제 지분은 그리 크지 않았거든요. 물론 상은 받았으니까 보통 사람보다는 잘 추죠. 대신 춤에 대한 것보다도, 댄스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할 수 있게 됐고요. 그래서 제게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는 동아리죠.

근데 듣다 보니 춤 실력으로 부흥기를 이끈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춤으로 부흥시켰다기보단 경영 측면에서 규모를 키웠던 거죠. 제가 동아리 연합회 고위 임원이었거든요. 그래서 동아리방 옆에 연습실도 만들고, 동아리방 건물 한가운데 연습용 대형 거울도 비치해놨어요. 원래는 캠퍼스 내 야외 공간에서 연습하곤 했는데, 그곳 바닥이 벽돌이었거든요. 거기서 연습하니까 운동화도 찢어지고 무릎도 까지고… 근데 연습실을 만드니까 여러모로 동아리가 팽창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동아리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뿌듯)

캐스터 일을 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스포츠의 짜릿한 순간을 기억할 땐 단순히 그 영상과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소리까지 함께 남곤 하잖아요. 누군가가 제 목소리 덕에 행복, 아쉬움,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증폭됐다고 하실 때가 정말 뿌듯해요. 그걸 말고는 최강야구 중계하면서 팬분들이 응원해주실 때요. 제가 선수도 아닌데도, 잘 보고 있다고 하실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나중에 어떤 캐스터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저 사람이 중계하면 항상 재밌었어!”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스포츠를 이루는 요소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재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포츠도 엔터테인먼트니까요. 저로 인해서 시청자분들이 경기가 재밌다고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캐스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요. 현실적으로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왜 자신이 스포츠를 좋아하게 됐는지를 잊지 말고, 스포츠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나중에 방송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밖에도 좋은 음성, 발음, 그리고 스포츠에 대한 지식을 미리 갖춰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

본인의 인생을 야구 경기에 빗대보면, 지금 몇 회 정도까지 왔나요?
절반 정도 지났고, 막 6회가 시작되고 있어요. 5회까지 선발 투수들이 잘 막았고, 타자들도 점수를 내려고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유리한 양상은 만들어놨어요. 다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느껴요.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리드는 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제 인생은 지금의 리드를 잘 지켜야겠죠. 또 추가점을 뽑아서 더 여유 있게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팬분들한테 인사 남기면서 인터뷰 끝내겠습니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항상 초심 잃지 않고, 매 경기 일희일비하면서 진심으로 열정적인 중계 들려드릴 수 있는 캐스터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최강야구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저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5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54호 (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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