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짝꿍 바꿔주세요” 초등학교 마비시킨 상상초월 민원 정체

초등학생 때 가장 기다리던 날을 꼽으라면 바로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는 날. 전날 밤 괜히 잠도 안 와서 뒤척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챙기던 기억들이 많은데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소풍이란 게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추억으로 가득해야 할 초등학교에서 왜 추억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한 건지 취재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행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온갖 간섭에다 행여 사고가 나면 교사가 책임지는 구조가 굳어져서 그런 거다.

정말 우리가 기억하던 풍경들이 사라지고 있는 건지 초등학교 교사·학부모·학생들을 직접 만나봤는데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도 올해 현장체험학습이 없다고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고 부담’이다. 2022년 강원도 현장체험학습에서 초등학생 사망 사고로 교사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이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설명

[초등학교 교사 A씨](음성변조):

“사고라는 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사실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잖아요. 특히 체험학습을 가면 아이들이 굉장히 신나 있는 상태고 변수가 많은 상태고. 물론 최선을 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나는데 그거를 교사 책임을 저버리면 교사 입장에서는 갈 수가 없는 거죠.”

교권 침해와 아동학대 신고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교사는 학부모 민원 때문에 교육활동이 방어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작은 일도 곧바로 고소·고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 A씨](음성변조): “체험학습을 한 번 갔다 오면 별의별 민원이 다 들어와요. 사실은 가기 전부터 짝꿍을 누구를 해줘라 마라부터 시작을 해서… 갔다 와서도 밥이 부실했네, 체험 프로그램이 어쨌네, 돈이 비쌌네 하면서 사실은 교사들이 엄청 시달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안 가는 추세가 되는 거죠. 점점.”

최근 개그우먼 이수지 님 유치원 교사 이민지를 연기한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악성 민원 문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상 속에서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눈치를 보는 교사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한국에 대한 연구만 수십 년간 해왔던 사회학자 샘 리처드 교수님은 이걸 보고 최근 본 한국 영상 중 가장 충격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실제로는 더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학교 현장체험학습은 2023년 598건에서 2025년 309건으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운동회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체육대회를 2시간만 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애들은 밖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생활을 배우는 건데 그런 경험이 줄어드는 건 아쉽다고 말했다.

[학부모 A씨]: “운동회도 이제는 그냥 소박하게 애들만 (하는) 소형 체육대회 (느낌이에요) 부모 올 필요 없다. 이제 이런 식으로.”
[학부모 B씨]: “애들이 밖에서 활동하고 이렇게 하면서 이런 외부 환경도 자극을 받아야만이 거기에 접하는 방법이라든가 밖에서 사회생활이 있죠.”

배움의 기회를 지켜달라며 청원 24에 직접 글을 남긴 학생도 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갈 수 있도록 선생님을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댓글로 ‘적극 동의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교사들 역시 체험학습의 교육적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특히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체험학습 필요성이 크다고 한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진행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도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책임 구조를 잘 설계하는 것일 텐데 초등교사노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안전하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도입하거나 확대돼야 할 지원으로 92.5%가 사고발생 시 교사의 면책권을 보장하는 법적 안전장치라고 응답했다.

안전 요원이 있어도 결국 사고 시 최종 책임은 교사에게 집중된다며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 초등학생들을 둔 부모들은 사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놀며 문화적 사회적 경험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내 생각에 이건 위험해 이건 불편할 거 같아’라며 제한되고 인공적인 환경에서만 자녀를 가두려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