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 뜨러 매일 40km 걷던 아이들…‘수도꼭지’가 만든 기적
한국, 유니세프·NGO와 협력
태양광 펌프로 지하수 퍼 올려
마을 6곳 1400명에 ‘물세권’ 선물
학교 출석율 높아지고 질병도 줄어
케냐의 전체 47개 주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메마른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곧 ‘물을 위한 투쟁’이었다.
마실 물을 긷는 일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었다. 여기 아이들은 제 몸통만한 물통을 굴리면서 날마다 길게는 약 40km를 걷고 있었다. 그만큼 학교와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대외개발원조(ODA) 사업을 펼치며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바싹 말라버린 이곳을 한국인의 정(情)으로 적시고 있었다.
지난 7일 취재진이 찾은 투르카나주 칼로피리아 마을에서는 한국과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함께 세운 지하수 관정 시설 덕에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박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케냐 사무소 부소장은 “주민들이 과거에는 물이 생기면 낙타가 가장 먼저 마시고 그 다음엔 염소, 마지막으로 사람이 마셨는데 이제는 낙타와 염소, 사람이 동시에 물을 마실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마을은 가뭄 때문에 인구가 줄었다가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며 인구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이 가뭄으로 사람들이 떠나던 이 지역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물(水)세권’으로 만든 셈이다.
마을 이장인 존 로카위 씨는 “예전에는 먼 곳에서 물을 가져와야 했고 수인성 질병도 많았는데 이젠 깨끗한 물이 있다”면서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이 시설을 만든 단체(한국과 유니세프)에 감사하고 신이 보내준 것 같다, (이 시설이) 우리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마을 초등학교의 에무론 실비아 교장은 “(예전에는) 여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무겁고 힘든 물 긷기를 도와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함께 나섰다가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생긴 ‘수도꼭지’ 하나가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할 시간과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다.
이 학교의 7학년 여학생인 이레네 에모이 양은 “학교를 마치면 의사가 되고 싶다, 물이 풍족해져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전날(6일) 취재진이 방문한 투르카나주 소펠 마을에서도 한국과 유니세프가 함께 설치한 태양광 펌프가 맑은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 마을에 마지막을 비다운 비가 내린 것은 4년 전이었지만, 한국이 선사한 맑은 물이 이곳 주민들의 삶을 이어준 것이다.
수도 시설이 생기면서 이곳 초등학교 옆에는 작은 텃밭도 생겼다. 텃밭에서 나온 채소들은 아이들의 급식 식자재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마을 사회봉사자인 에칼 에라투스 씨는 “급수시설이 들어온 전후로 아이들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물을 긷기 위해 매일 20㎞를 걸어 다니곤 했는데 이제 물을 집 바로 옆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사는 13살 도르카스 로카펫 양도 “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10여km를 걸어가서 물을 가져와야 했는데, 이제 (집 근처에도) 물이 있으니 수저도 씻을 수 있어 좋다”며 고마워했다.
마을 보건지소의 다니엘 이렝 간호사는 급수 시설이 마을 주민들의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이 들어온 다음에는 5세 이하 아동들의 설사병 발병률이 기존 20~25%에서 5%이하로 확 줄었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때에도 손을 씻는 게 중요했는데 물이 충분하게 들어와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니세프 현지 사무소의 식수위생 전문가인 잭슨 무티아 씨는 “(투르카나주에서) 지금까지 19개 초등학교와 유치원, 중학교 2곳이 물 공급 시스템과 연계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이 지역에서 70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도움을 받고 있고, 등교율과 수업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대략 12명 정도의 여자 아이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안전장치도 없이 20m 깊이의 가파르고 위태로운 구덩이 속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떠온 것은 뿌옇고 먼지가 둥둥 떠 있는 흙탕물이었다. 이런 물이라도 구하려고 아이들은 매일 왕복 40km를 걷고 있었다.
현지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신영 월드비전 간사는 현지인 직원 7명과 함께 9개월째 케냐 사람들과 함께 가뭄과 싸우고 있었다.
김 간사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칼로베예이 지역의 기후회복력 강화를 위해 수자원 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적은 물로도 난민 및 지역주민들이 식량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후적응 농목축업 기술 확대와 목초지 조성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역시 코이카와 협력해 시민사회 협력사업을 추진 중인 팀앤팀의 크리스틴 위칼리 활동가는 “여성들의 사회적 자신감을 위해 생리위생 교육뿐만 아니라 재생 가능한 위생 패드 제작기술, 재봉틀을 활용한 소득증대 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 스스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의 ODA 기관인 코이카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투르카나주에서 내후년부터 함께 신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JICA는 이 지역에서 지난 5년간 영양사업을 추진했고, 올해부터 2차 사업을 진행 중이다.
JICA는 이 지역에서 협력사업을 진행하며 지하수 관정을 중심으로 한 지리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해당 정보를 코이카에 공유한 상태다. 양국 정부에서 긍정적인 검토가 이뤄지면 상호 연관성이 높은 영양·식수위생 협력 분야에서 한일 간 협업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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