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같았던 지역주택조합 피해자들 투자금 찾아준 검찰 수사관들 [법조 Zoom In : 사건의 재구성]
‘수사, 기소, 재판 등 사법 작용의 대상이 되는 일’. ‘사건’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사건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 기자들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 이야기들에 대해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기 일 처럼 도와준 검찰 수사관님들 덕분이에요. 총장님께서 이 분들을 격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올 8월,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과 정유미 창원지검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집 없는 서민 280명 조합원들의 평생 꿈이었던 내 집 마련. 그 꿈이 전 업무용역사와 조합장의 만행으로 날라갈 뻔했습니다. 그런 저희(피해자)들의 피해액을 보전하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해주신 창원지검의 집행과 관계자님들 (정영호 집행과장, 권성규 사무관, 박혜진 계장, 주지아 수사관)께 감사드립니다. 주말에도 출근하시며 조합 상황을 살펴주시는 모습에 저희는 검찰이 국민의 편이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임을 알게 됐습니다.”(OOO 조합 피해자 일동)
창원 지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택조합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어보이는 검찰은 어쩌다 조합원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前 조합장 등의 배임에 발목잡힌 아파트 공사
2020년, 경남 창원 의창구 일대에 아파트 515세대 등을 신축하는 주택건설사업이 진행되던 때였다. 2015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뒤 5년이 지나도록 도통 속도가 붙지 않던 해당 사업은 사실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업무대행사를 운영했던 최모 씨와, 주택조합설립 추진위원장이자 전 조합장을 맡았던 박모 씨가 결탁해 각종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
최 씨는 지역 은행으로부터 20억 원 대출받고 조합으로 하여금 업무대행사 명의의 대출에 18억 원 상당의 연대보증을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부당 연대보증 배임,중도금 대출 사기 등을 저질렀다. 조합으로 하여금 98억 원 상당의 토지를 255억 원에 매입하도록 한 부당 고가 매수 배임도 저질렀다. 최 씨가 받는 혐의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중 배임, 사기, 횡령 등 세 가지다. 박 씨는 최 씨로부터 18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를 받았다.
이들은 결국 구속됐다. 문제는 덜미가 잡힌 공사였다. 공사비 부족 등의 문제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할뿐더러 매달 6억여 원의 대출이자를 지급하는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총 피해액은 약 165억 원(훗날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은 117억 원). 관련된 조합원은 280명으로 단순 나눗셈을 해봐도, 조합원들은 각각 매달 210여만 원의 목돈을 진행되지도 않는 공사 추가 이자비로 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지연되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었다.
● 117억 돌려받은 檢
검찰이 나섰다. 창원지검은 이 사건의 추징금이 아파트주택조합 배임사건의 ‘범죄수익’이자 부패재산몰수법에서 정한 ‘범죄피해재산’으로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심히 곤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해자 환부(피해자에게 돌려줄)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관련 절차를 서둘렀다. 창원지검은 피해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검 범죄수익환수과에서 전담 수사관을 파견받았다. 목표는 올해 5월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 117억 원을 전부 받아오는 것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채권자가 검찰 하나가 아니었다. 법원은 채권자가 여럿일 경우 통상 추징금을 안분배당(적정한 비율대로 채권자에게 나눠줌)한다. 각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받아야한다고 일정 금액을 주장하기 마련인데, 법원이 이를 확정된 추징금액(117억 원)에서 몇대 몇의 비율로 나눌지 정하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렇다보니 피해자들부터가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였다. 피해자들은 “차라리 돈을 조금 받아도 좋으니, 빨리만 받아달라”고 했다.
● 檢 내부에서도 “뭘 그렇게까지..”
하지만 창원지검 집행과는 ‘어쩌면 피해자들이 117억 원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판례를 검색하고 유사사건의 진행 사례를 들여다봤다. 어린 자녀를 둔 계장은 자녀들이 잠자는 주말 아침 5시에 출근했고, 결혼을 앞뒀던 수사관도 결혼식이 코앞에 닥칠때까지 일에 매진했다. 피해자들이 ‘대충 마무리해달라’는 와중에도 창원지검 집행과 관계자들이 만전을 기울이다보니 심지어 검찰 내부에서도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하냐”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고민과 공부 끝에 창원지검 집행과는 추징금 117억 원을 전액 배당받을 방법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례법과 유사사례 등을 통해 ‘국가(검찰)가 우선적으로 배당을 요청한 채권 추징금은 다른 채권에 우선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것. 창원지검은 확보한 특례법 해석 논리와 유사사례 등을 첨부해 법원에 ‘전액 배당 요청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법원은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창원지검은 8월 26일 117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 같은 달 30일에 피해자들에게 이 돈을 전부 돌려줬다. 피해자 측이 검찰에 올 5월 환부 문의를 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통상 범죄수익 추징부터 배당, 환수까지 과정이 수년 씩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은 그야말로 발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피해자들의 감사 편지 역시 그렇게 도착한 것이었다.
검찰총장의 감사도 뒤따랐다. 이원석 당시 총장은 창원지검에 “치밀하게 집행업무를 수행한 여러분께 감사하다. 덕분에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많이 풀렸을 것”이라며 “다른 일선청에도 경험을 공유해달라. 이렇게 하나하나 축적의 시간을 쌓아야 검찰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이같은 창원지검 집행과의 성과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릴 예정인 범죄수익환수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소개될 계획이다.
창원지검 집행과 식구들에게는 모두 뿌듯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은 직원들과 함께 이 사건 환부절차를 진두지휘한 정영호 창원지검 집행과장의 말이다. “검찰이 사실 수사 기능 말고도 여러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피해자들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기능이 있다것도 알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피해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쁘더군요. 저는 사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검찰은 앞으로도 피해사례가 발생하면 적극 대처해 피해회복을 돕겠습니다.”
창원=송유근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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